▲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2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남소연
대의를 위해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위'해야하며, 따라서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조직 밖으로 알려선 안된다는 조직보위론. 여기에서 대체 대의는 무엇이며, 내부의 '우리'는 누구인지 되묻게 된다. 미투운동을 만난 조직보위론은 피해자에 대한 가해행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인정하더라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운운하며 과거를 부정하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다가오는 2024년 총선, 정치판에 누구를 플레이어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거대 양당의 공천 과정만 봐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당대의 문제의식을 받아안겠다고 말한 양당은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 같다.
정당은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결사체이기에 당이 뜻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며, 공천이라는 방법을 통해 후보자를 정하는 중요한 과정을 거친다. 이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를 구성하고, 공천 기준으로 각각 '신4대악'과 '5대혐오범죄'를 발표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신4대악'으로 성폭력 2차 가해,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마약 범죄를 규정하였다. 더불어민주당 공관위 또한 '5대 혐오 범죄'로 성범죄, 음주 운전, 직장 갑질, 학교 폭력, 증오 발언을 내걸었다. 하지만 각 당의 공천위원도, 검증 통과된 후보자들의 면면은 앞서 정한 규정과 기준이 무색할 뿐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정영환 공관위원장은 판사 시절인 1991년,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흉기 협박, 강간 시도, 피해자 상해 등을 한 이유로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사실이 한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에 당시 한국 사회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문제적인 선고였음을 지적받자, 정영환 위원장은 해당 판결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성인지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공관위원장 조차 성인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가운데 '신4대악'으로 규정한 성폭력 2차 가해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원수연 공관위원은
2024 총선 여성주권자 행동 '어퍼' 논평에 따르면 2018년 만화계 미투 운동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고,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에게 2차 피해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는 게 여성단체의 입장이다.
공천 심사를 요청한 이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광주 서구갑 출마를 준비했던 강위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특보는 과거 성추행 전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았다. 이에 강위원 특보는 불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입장문을 통해 "저로 인해 이 대표와 민주당의 총선 승리 전략이 흔들리게 둘 수는 없다"고 밝히며 '선당후사'를 밝히는데 급급했다.
경기 성남중원 출마를 준비했던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된 후 더불어민주당 공관위가 "일련의 문제에 단호하고 엄격히 대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자, "당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저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춥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당원과 지지자분들의 지지와 격려 덕분이었습니다"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아닌 당에 대한 충의를 밝힌 셈이다.
"지금 당직도 맡고 있다"는 말의 현실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남소연
한편 당 안팎의 문제 제기에도 꿋꿋하게 본인의 출마 의지를 꺾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봉주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은 2018년 불거진 '기자 지망생 성추행 의혹'으로 2020년 총선에서는 후보 부적격 판정을 받았으나, 2024년 총선 예비후보의 검증 심사를 통과했다. 정봉주는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지금 당직도 맡고 있다"고 말하며 2020년 부적격 판정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정무적 판단으로 컷오프가 됐다"고 전했다. 만약 정봉주 원장에게 정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자기 당 후보와 공천관리위원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전후 사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추가 입장은 현재까지 없는 상황이다.
그의 말처럼 논란이 되는 인물들에게도 이미 당의 특보, 원장 등 당직이 맡겨진 상태였다. 이전에는 총선 공천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을 뿐, 정무직으로서 거리낌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셈이었다.
한편 피해자의 곁에 선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편에 섰던 충남도지사 비서실 주무관이었던 신용우의 경우, 후보 검증이 무기한 보류되고 있다. 신용우 후보는 "여러 차례 중앙당에 질의했지만 '계속 심사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묵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몰락의 시간> 저자가 피해자를 조력한 후, 마주했던 상황과 닮아있었다.
(p.209) "실력있고, 좋은 분인건 알겠지만, 아시다시피 사실 저희도 좀 부담스러워서요. 죄송합니다." 6개월 간 스무 곳 정도에 지원했지만 대부분 최종에서 떨어졌다. 이게 딱 나의 위치값이었다. 정치권에서 10여 년간 쌓은 경력과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안타까워하는 몇 명의 선배들이 나서주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가 정치권에서 발 붙일 수 있는 곳은 이제 없었다.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여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고 외친 결과, '성폭력 2차 가해', '성범죄가 지금까지 총선의 공천 기준으로 남아있게 됐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으며, 오히려 문제 제기한 이들을 당 바깥으로 고립시키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그렇게 '몰락의 시간'이 이어져오고 있는 가운데 2024년 총선이 다가왔다.
과거에도 존재했으나 외면되어왔던 '정치폭력 사태'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부터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까지 정치인을 향한 폭력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정치인 대상 폭력에는 여야가 없다는데 모든 정당이 공감하며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 역시 "정치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도전이다. 폭력 행위는 어떤 경우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괴한이 유명 정치인을 테러하는 것만 '정치폭력 사태'라고 할 수는 없다. 가해자인 유명 정치인을 지키겠다며, 피해자와 피해자 편에 섰던 정치적 동료를 부당하게 매장하는 것도 '정치폭력 사태'이다.
모든 정치인들은 정당 안에서 함께 활동하던 일원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했는지, 성찰하길 바란다. 이는 정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동료들을 위함이기도 하며, 나아가 혐오와 갈등, 폭력의 경계를 넘어 더불어 살아가려는 시민들을 위함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정치폭력 사태'가 아니다. 언제나 있었으나, 무시받고, 외면당했던 피해자들이 있었다. 지나쳐 왔던 '몰락의 시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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