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7 18:49최종 업데이트 24.03.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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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월(121.83)보다 0.3% 높은 122.21(2015년 수준 100)로 집계돼 3개월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서울 시내의 한 전통시장 점포에서 가게 관계자가 상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먹고'에 해당하는 경제 이야기를 좀 해보자. 먹고사니즘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종교인이든 도덕군자든, 자신이 잘 먹고 편안히 사는 것에 큰 욕심이 없는 것과 경제가 중요한 것은 다른 이야기다.

모든 시대에 경제가 중요했지만, 지금이야말로 경제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시대다. 그런데 경제라고 다 같은 경제가 아니다. 경제에도 질이 있고 격이 있다. 그런 것을 놓치면 경제는 '다 필요 없고, 그저 부자 되는 기술'로 전락해 버린다.


먼저 경제를 정의해 보자. 사전적으로 경제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물적 기초가 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과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사회관계의 총체'(포털 다음 대백과사전)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경제가 단지 '돈벌이'나 '재테크론'이 아니라 '사회관계의 총체'라는 점이다. 즉, 경제는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경제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경제는 우리 모두의 큰 관심사이다 보니 거품과 신화가 너무 많이 끼어 있다. 그것만 거둬내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경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가장 큰 착각은 '모두가 다 부자 되는', '모두가 잘사는' 경제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전보다 물질 수준이 더 향상되어 다 부자가 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조선 시대 임금의 수라상보다 더 기름지고 귀한 음식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 서울역 노숙인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고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문명이 더 발전한 것이지, 모두가 다 부자 된 게 아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세상이 물리적(물질) 세계와 비물리적(비물질) 세계로 나눠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물리적 세계는 정신적, 영적 가치의 영역이라 누구나 얼마든지 동시에 성장하고, 골고루 혜택을 얻는 '윈윈'(win-win)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게 허구의 세계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물리적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진짜 힘(파워, 에너지)이 만들어지는 실제 세계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에(비물리적), 직장 상사 눈치를 보며 힘겹게 일해 돈을 벌거나, 집안일을 마다치 않고 가족을 돌보는 '물리적 행동'을 한다. 아이를 맡기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친절과 성실함에 신뢰가 생긴 학부모는 감사의 마음으로'(비물리적) 선물을 사 보내는 '물리적 행동'을 한다. 무엇보다 비물리적 세계는 누군가 사랑하고, 기뻐하고, 신뢰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윈윈'의 세계다.

경제는 그런 게 아니다
 

2023년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재계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 튀김 빈대떡을 맛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물리적 세계는 이와 다르다.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한정된 자원을 나누는 일이기에 원하는 만큼 모두가 다 가질 수 없고, 누군가 가지면 누군가 부족하다. 경제에서 다루는 재화나 서비스가 가장 대표적이다. 공장에서 만든 물건이든 농산물이든, 모두가 원하는 만큼 공급할 수 없고 그래서 가격 때문이라도 누군가는 아무리 절실해도 포기해야만 한다.

예를 들자. 누구나 물리적 공간에서 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집(거주지)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공급을 늘려도 한 사람이 10채, 100채씩 갖고서 움켜쥐고 가격만 올리면 많은 이들이 무주택자로 떠돌게 된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부르려고 벨을 눌러도 혼자서 20명의 손님을 응대(서비스)할 수 없어서 여러 테이블을 돌다 보면 손님은 화가 나고, 종업원은 지치고 만다. 그러므로 물리적 세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경제 영역에는 윈윈이 불가능하다.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 반드시 손해를 본다. 누군가 대박이 나면, 누군가 쪽박을 찬다.

2000년대 초 유명 연예인이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응원한 광고가 큰 인기를 얻었지만, 실제 경제에서 모두 부자가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국가는, 사회는, 기업은 모두가 이득을 얻고, 다 부자가 되는 경제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선전이며, 속임수다. 의도가 있다.

곧 총선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광역급행철도를 전국에 확대하고, 그린벨트를 풀고, 광주~영암 사이 초고속도로를 약속했다. 선거 승리에 조급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도 부산에 가서는 이런 약속을 하고, 광주에 가서는 저런 약속을 하며, 대전에 가서는 또 다른 약속을 한다. 이런저런 약속들에는 서로 상충되는 문제도 발생하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모두에게 다 이득이 되는 개발 공약은 없다.

공약에는 모두 엄청난 예산(돈)이 들어가고, 국가 예산(2024년 656.6조 원)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다. 정치인은 모든 국민(시민, 주민)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윈윈) 해줄 것처럼 약속을 쏟아내지만, 경제는 그런 게 아니다.

한 곳(분야)에 과도하게 예산을 쓴다면 다른 어딘가에는 분명히 돈줄이 마를 것이다. 서울에 집중된 개발은 분명히 지역에 돌아갈 몫을 빼앗아 온 것이다. 연말이 되면 남은 예산을 쓰겠다고, 멀쩡한 도로 곳곳을 파헤치고 새롭게 포장을 까는 지자체 관급공사도 그저 통행에 불편만 주는 게 아니라 내게 돌아올 정당한 몫을 빼앗는 예산 절도인지도 모른다.

또,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 회장을 비롯한 재벌 총수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서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재벌과 시장 상인이 함께 공생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허구다. 삼성 일가인 신세계 푸드를 비롯한 재벌의 외식산업은 이미 재래시장을 비롯한 골목상권과 충돌하고 있는 시소게임의 장본인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권을 지켜준다며 중소기업 및 골목상권을 보호하던 여러 규제를 없애는 데 힘을 쏟아왔다. 이 모두, 정치와 행정이 마치 모두를 다 잘살게 하는(윈윈) 경제가 있는 것처럼 속이는 대표적인 거짓말들이다.

인간다운 경제
 

2023년 6월 14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학교비정규직, 마트, 요양, 콜센터 노동자들이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우리는 다시 한번 앞서 살펴본 경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참고해야 한다. 핵심 뼈대만 살펴보자. 경제란 '~위한 ~재화와 용역(서비스)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과 ~사회관계의 총체'다. 즉, 경제의 매개물인 재화와 서비스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윈윈 불가능), 생산과 소비 외에 '분배'의 메커니즘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누가,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재화와 서비스가 돌아가도록 할 것인지의 분배가 경제 문제의 핵심이라는 말과 같다. 이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이 아니라 모든 경제학의 기초다. 그러면 누가 이처럼 중요한 분배를 실행하는 것인가?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아무도 의도하지도, 구상하지도 않지만, 수요와 공급, 생산과 소비, 그리고 적정한 가격(노동의 가격인 노동자 임금까지 포함)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결정한다고 했다. 이 말은 대체적으로 맞다. 그러나 사실 경제과 시장의 움직임에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개인적, 집단적 힘들이 이미 많이 개입된다.

대개 사람들은 대기업 총수의 경영 능력, 스타 선수의 실력을 건물 청소원의 노동보다 훨씬 높게 평가해 준다. 일단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그 격차는 말할 수 없이 크다. 2022년 연봉 순위 1위인 이재현 CJ 회장이 221억 원을 받고,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 연봉은 716억 원(2023년)인데 반해, 청소원의 경우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00만 원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현 회장은 청소원보다 약 736배를 더 받는다. 과연 이게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만든 공정한 시장 가격일까? 더구나 전자의 유명인은 공식 연봉보다 각종 배당금, 부동산 수익, 금융소득, 강연료, 출연료 등 기타 수입이 훨씬 더 클 것이다. 반면, 일반 노동자는 기타 수입이 거의 없거나 미미하므로 격차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커진다.

어차피 우리는 개인의 능력과 수고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획일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등적 요소를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노동 가격(임금)이 이토록 큰 차이가 나는 게 그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연스럽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은 더 합리적이지 않다.

자본과 기업주는 나쁘고 노동만이 옳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국 사회와 경제의 게임 규칙은 아직도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심지어 그 기울기가 심해진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장의 기울기를 줄여 모든 사람이 좀 더 평평한 운동장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경제 주체들(국가, 기업, 개인)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모든 짐승도 먹고사니즘이 있지만 그걸 경제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만이 경제다. 좀 더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서로의 품격을 존중할 수 있는 인간다운 경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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