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30 20:32최종 업데이트 24.01.3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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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합니다.[편집자말]

변호사 시절 후세 다쓰지 ⓒ 오이시 스스무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 이 문구는 2004년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변호사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1879~1953)의 묘비명에 새겨져 있다. 이 건국훈장 애족장은 일본 제국의 식민통치에 목숨 걸고 저항하며 한국 독립과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공로가 크기 때문에 추서되었다. - 2023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후세다쓰지, 공훈전사자료관

2023년 5월 윤석열 정부가 후세 다쓰지와 가네코 후미코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지정했을 때, 나는 꽤나 놀랐다. 대일외교에서 일본에 너무 숙인다는 비판을 받는 정부에서, 일본인 독립운동가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지정하다니. 혹시 정부의 외교 기조가 바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 등 독립투사들의 흉상이 철거된다는 결정이 나왔고 나는 일말의 희망을 접은 동시에 혼란스러워졌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자신들이 무슨 모순을 저지르는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모순의 이유

후세 다쓰지는 위에 언급된 소개와 같이 한국 독립운동에 기여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의 활동을 독립운동으로만 좁혀 보기는 어렵다. 그가 한 활동은 당대 가장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헌신하는 것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보통선거 운동, 농민 운동, 관동대학살 진상 규명 운동 등 후세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영화 '박열' 등을 통해 알려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와의 인연도 이러한 활동 중 생겨났다. 당연히 당시 일본 당국에게 있어 후세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그의 별명 중 하나는 '극좌 변호사'였다.
 

영화 <박열>에서 박열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야마노우치 타스쿠 분)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활동을 이어간다. 조선공산당과 일본공산당을 변호하는 일도 있었다. 더욱이 본인 자신도 좌익정당 중 하나였던 노동농민당 후보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한 적 있다.

이런 식이라면 윤석열 정부의 기준에 따르면 후세 다쓰지도 좌익 계열에 가담한 이력이 있으므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올라가야 할 일이 없어야 맞지 않은가. 그러나 후세 다쓰지는 이달의 독립운동가가 되었다. 이 모순을 정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검사였던 후세 다쓰지

후세 다쓰지가 변호사 이전에 '검사'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검사였던 그는 사회환경과 법의 괴리로 고민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다. 좀 더 실천적인 법조 활동을 위해 검사의 길을 버린 것이다.


그 평가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실천이라는 면에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선택한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길은 달랐다. 한 사람은 자기 신념 그대로 '살아야 한다면 민중을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를 실천한반면 다른 사람은 그 행보에 대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후세 다쓰지는 보통 선거를 호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이상적인 정치를 깨달으십시오! 양심이 이끄는 대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정부와 사회에 보통선거를 요구하십시오." - 후세 간지 저, 황선희 역, <나는 양심을 믿는다>, 현암사, 2011, p.81

그는 대중에게 자기의 양심을 실현시킬 방법에 대해 호소했다. 본인도 그 현장에 서서 끊임없이 투쟁했다.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믿는 동시에, 일관되게 탄압자들에게 '양심'을 외쳐왔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좌익 경력에도 불구하고 건국훈장을 수여한 것은 이러한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후세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1.16 ⓒ 연합뉴스

 
물론 윤석열 정부는 독립운동 경력만 보고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세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이상, 그의 행적을 다시 되돌아보는 게 맞지 않을까?

후세의 행동과 반대되는 윤석열 정부의 이념 솎아내기는 일관성도 없고, 그렇다고 그 주장들이 민생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다. 어느 사람이 받아야 할 정당한 평가를 깎아먹고 있거나 상처를 줄 뿐이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충돌하고, 약자에 대한 권리법안은 거부권 행사 대상이 되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삶은 힘들어지고 있다. 후세의 외침대로 정부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정치를, 시민들의 양심을 실현시키는 정치에 골몰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비로소 윤석열 정부가 후세 다쓰지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것에 대한 의문도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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