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9 10:49최종 업데이트 23.12.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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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28일 입장문을 내고 "기술된 내용 중 독도영토 분쟁 문제, 독도 미표기 등 중요한 표현 상의 문제점이 식별되어 이를 전량 회수하고, 집필 과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조치 등을 통해 신속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표지. ⓒ 연합뉴스

 
최근 국방부가 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독도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기술함으로써 독도 분쟁의 존재를 명시했다. 게다가 한반도 지도에 독도를 표기하지도 않았다.

28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크게 질책하고 즉각 시정 등 엄중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브리핑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현실에도 국제법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 얘기"라며 "독도는 그냥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고 발언했다.


그렇지만 일본이 희망하는 문구가 담긴 유력한 자료는 남게 됐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그런 자료를 '이미' 발간했기 때문에 회수한다 해도 한국 정부가 독도 분쟁의 존재를 거론한 사실만큼은 문서상의 증거로 남게 됐다. 일본 정부는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가져가려 한다. 그런 일본에 '연말 선물'을 보내준 셈이다.

상대방이 내 물건을 가리키며 '내 것이니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스스로 '분쟁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분쟁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상대방은 분쟁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조장해 공권력을 개입시키려 할 수 있지만, 주인이 '분쟁 중인 물건'이라고 말해 제3자의 개입을 자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윤 정권의 이번 행동이 그렇다.

분쟁이 있느냐 없느냐는 국제법적으로 중요하다. 국제연합(유엔)이 수행하는 일이 다름 아닌 세계 분쟁의 해결이다. 유엔 헌장 제1조 제1항은 유엔의 존립 목적 중 하나를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해결"이라고 선언했다. 그렇기 때문에, 분쟁의 존재가 인정되면 경우에 따라 국제연합의 개입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런 분쟁이 있다고 인정되면 안전보장이사회가 총회를 사실상 배제한 채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제12조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어떠한 분쟁 또는 사태와 관련하여 이 헌장에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총회는 이 분쟁 또는 사태에 관하여 안전보장이사회가 요청하지 아니하는 한 어떠한 권고도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아닌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독도 영유권의 소재를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분쟁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해 가며 이에 관한 문건을 남겼다.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본의 수고를 덜어준 셈이 된다.

독도 영유권에 적신호 켜지고 있다
 

1964년 2월 8일 자 <동아일보> 기사 '일본 트러블 (8) 독도'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한일협정 문제가 국민적 관심을 끌었을 때 발행된 1964년 2월 8일 자 <동아일보> '일본 트러블 (8) 독도'는 오노 반보쿠(大野伴睦) 자민당 총재를 거명하면서 "62년 12월 한국을 방문,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회담했던 대야반목 씨는 독도 문제가 한·일 교섭의 중요한 난관이니 독도를 한·일 양국이 공동점유하자고 말했다", "63년 12월 오노 씨는 박 대통령에게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데 동의해달라고 했다"라고 보도했다.

박정희 정권의 1인자와 2인자에게 독도에 관한 청탁을 넣은 사실에서도 확인되듯이, 일본은 틈만 보이면 한국 정부를 움직여 독도 영유권을 흔들려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도에 관한 한은 일본에 대해 엄정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도 윤석열 정권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크게 질책"했다, "엄중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지만, 일본 측이 볼 때는 그렇게 비치지 않는 게 문제다.

일본이 독도와 관련해 가장 민감해지는 날이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을 기념하는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이다.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대해 한국인들이 분노하고 한국 외교부도 항의 성명을 발표하기 때문에 이날이 되면 일본인들이 예민해진다.

그런데 그런 날에도 일본 언론은 윤 정권에 대해서만큼은 호의적 평가를 보냈다.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인 <산케이뉴스>의 지난 2월 22일 자 기사 '다케시마의 날에 한국 외교부가 공사 불러 항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대해 윤 정권 외교부가 나타낸 반응을 다룬 기사에서 "대일관계 개선을 진행하는 윤석열 정권이 억제적으로 대응"했다고 우호적으로 평했다.

<산케이뉴스>는 한국 외교부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즉각 중단"할 것 등을 촉구한 일을 두고 그런 평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 외교부가 2022년 2월 22일에 "독도에 대한 부당한 억지 주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 것과 달리 윤 정부는 '억지' 같은 일부 표현을 없앤 것이 그런 호평을 낳는 원인이 됐다.

<산케이뉴스>는 독도에 대한 윤 정권의 태도가 역대 정권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독도 방어훈련인 동해영토 수호훈련이 축소된 사실을 예시했다. "작년 5월에 발족한 윤 정권에서는 정례 군사훈련의 규모를 축소했다"라며 "작년 7월과 12월의 훈련은 모두 비공개 속에서 상륙 훈련도 하지 않는 등, 대일 배려를 보였다"라고 평가했다.

독도와 관련해 일본 언론이 가장 민감해지는 그날, '일본을 배려한다'며 한국 정부를 좋게 평가하는 기사가 일본 언론에서 나왔다. 그것도 가장 극우적인 매체에서 그런 보도가 나왔다. 한국인들이 우려하는 것 이상으로 독도 영유권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점이 이런 데서도 감지된다.

<산케이뉴스>는 윤 정권이 일본을 배려하고 있다고 했지만, 배려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현상이 독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2월 22일에도 자위대가 독도 주변에서 한국군과 연합군사훈련을 시행하도록 윤 정권이 허용하는 현실을 '대일 배려'라는 말로 온전히 담기는 힘들 것이다.

일본의 전략에 휘말려 들지 말아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6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해 구사하는 접근법은 전쟁 전략도 아니고 평화 전략도 아닌 애매모호한 회색지대 전략을 연상케 한다. 회색지대 전략은 침략성의 본질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상대방의 방심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런 일본을 제지하지는 못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있으니, 지금 상황은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2020년 6월에 <한국군사> 제7호에 실린 반길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논문 '동북아 국가의 한국에 대한 회색지대전략과 한국의 대응 방안'은 "일본은 한국의 주권에 영향을 미치고 국익을 확장하는 데 회색지대 갈등을 점진적·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 주권침해 성격의 회색지대 갈등으로 일본의 독도 분쟁화를 둘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 논문은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방위백서나 외교청서 등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한국 주권을 침해하기 위한 점전직·전략적 회색지대전략으로 평했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이나 방위백서·외교청서 표기 등은 직접적인 침략행위가 아니므로 한국인들의 경계심을 덜 일으키면서 일본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접근법이다. 이를 통해 국제 여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법이 좀 더 발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회색지대전략이다. 지난 8월에 <아시아리뷰> 제13권 제2호에 수록된 정치학자 마월과 구본윤의 '중국의 회색지대전략: 남중국해 분쟁 사례를 중심으로'는 "2010년대 들어 미국이 아시아 회귀와 재균형정책을 발표하며 남중국해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분쟁은 재점화되었고 중국은 대응으로 회색지대전략을 수행하였다"라며 이런 예시를 든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은 살라미 전술과 기정사실화 전술이 순차적으로 수행되는데, 우선 살라미 전술의 일환으로 실효 지배력이 느슨한 도서 또는 암초에 많은 숫자의 민간 선박을 투입하는 벌떼전술을 수행한 후 이들의 보호를 명목으로 해안경비대와 해군 함정이 둘러싸는 양배추 전략을 전개해 해당 지역을 점령한다. 이후 기정사실화 전술이 수행되는데, 대표적으로 점령 지역에 인공섬을 건설하거나 어선 등의 민간 조직 또는 해안경비대와 같은 공공조직을 동원한 법·제도적 집행을 전개한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회색지대전략은 아직 이 단계까지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윤 정권처럼 '대일 배려' 그 이상의 행동을 자주 하면 이런 사태가 도래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중국이 남중국해를 상대로 구사하는 회색지대전략보다 더 위험한 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회색지대전략이다. 러시아 역시 그런 전략을 구사하다가 결국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다.

지금 우크라이나나 남중국해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독도에서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일본이 구사하는 독도 전략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일본의 전략에 휘말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윤 정권은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의도를 견제하기는커녕, 도리어 일본이 희망하는 문구를 국방부 교재에 공식적으로 넣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일본이 유력한 자료 하나를 확보하게 됐으니, '윤 대통령이 크게 질책했다'느니 '교재를 회수하겠다'느니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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