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6 13:40최종 업데이트 23.12.2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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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2023년, 무탈하셨나요? 독자 여러분? 그렇지 못하셨을 겁니다. 치솟는 물가에 연말 외식 한 번 하기 겁이 납니다. 억지로 연장근로라도 더 해야 하나 고민되는 답답한 연말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 올 한 해 여러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는 '주 69시간제' 논란일 것입니다. 현장에서 노동 상담을 하다보면 "회사에서 공짜야근을 너무 많이 시킨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달라"거나 "나라에서 연장근로를 하지 못하게 해서 월급이 줄었다"라고 하소연 하는 노동자들이 공존합니다(관련기사 : 전경련 건의서 내용과 일치... 기묘한 윤 정부의 제안 https://omn.kr/21zds).


현재는 1주에 최대로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이 52시간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에 현행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상한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정책을 내놨습니다. 경직된 근로시간 상한으로 원하는 시기에 효과적으로 일을 시키기 어렵다는 기업의 요구와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푹 쉬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조화시켰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안에 따르면 물리적으로 1주에 69시간까지도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때문에 노동계를 비롯해 MZ세대 직장인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69시간제로 일하다 죽으라는 말이냐"는 비판과 "경제 위기에 먹고 살기 어려운 최저시급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것이냐"는 비난이 확산됐습니다. 결국 주 69시간이 가능한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개편 시도는 좌절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근로시간 개편을 기획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올해의 문제적 인물로 정해 봤습니다.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을 결정하는 노동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우리들의 노동환경을 정비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 고용노동부입니다. 고용노동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근로시간을 비롯한 일터에서의 환경이 달라지는 만큼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주 69시간제' 원조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장 수여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고용노동부가 기획했지만 주 69간제의 영감 제공자는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지난 2021년 7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1주 52시간을 상한으로 정한 현행 근로시간 제도를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대로 쉴 수 있어야 한다"라는 어느 게임 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당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발언으로 노동계로부터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개발 직전 장시간 일하는 일명 '크런치 모드'를 옹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게임업계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노동계에서는 한 주에 90시간 일했던 넷마블 노동자의 과로사 이후 이를 없애야 할 '나쁜 관행'으로 꼽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던진 이런 '영감'이 재계의 전폭적 지지 속에서 정부 출범 1년 만에 진짜 정책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평소 "노동운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점을 강조했던 이정식 장관은 한국노총 사무처장 시절 장시간 노동 관행을 국제기준에 맞춘 주 40시간제로 전환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한 그가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장시간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려운 경제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여가를 위해 근로시간을 제한한 것을 두고 자유시장경제하에서 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라고 인식했습니다.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과 일-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초과수당이 깎인 노동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자극해 주52시간제 재검토를 주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노총 출신 이 장관이 노동계를 설득해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기업 친화적 노동시장을 구축해 줄 것으로 믿고 그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동계는 이 장관이 노동자들의 권리와 건강을 보호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는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살려 기업 친화적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을 제고 시키고 제 역할을 하리라 기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신념이 고무줄도 아닌데,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운동의 역사라 외치던 그가 어떻게 주 최대 69시간 노동이 가능한 극단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는 노동계의 주장이 과거 공장제 노동을 전제로 한 노동법의 근로시간제가 변화하는 경제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세련되게 이야기합니다.

산업화 이후 노동자의 희생에 기반을 둔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의 맹점을 짚어 내는 것을 평생 업으로 삼아 온 사람인 이 장관이 시간 주권 없이 사업장의 편의에 따라 잔업에 내몰리고 공짜야근을 강요받는 현실에서 이런 정책이 장시간 노동체제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부작용을 과연 인식하지 못했을까요?

장시간 근로의 영감 제공자인 윤 대통령은 주 69시간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마치 자기는 모르는 일인 것처럼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개편안의 재검토를 지시했습니다. 동업자 의식도 없이 자신이 시켜서 주 69시간제 정책을 마련한 이정식 장관을 재빠르게 '손절'한 것입니다.

근로시간 정책을 기업의 생산성과 경제발전의 하위요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다 대통령으로부터 손절당한 이 장관은 이후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지만 전임 정부에서 행한 노조에 대한 국가보조금 중단과 노동조합에 대해 회계공시를 카드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노조 길들이기에 앞장섭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한 노동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동조합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 발표 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그는 과거 노조에 대한 국가보조금 지급 중단을 무기로한 노조탄압의 피해자였습니다. 2016년 1월 당시 한국노총 사무처장이던 그는 박근혜 정부 비판에 앞장섭니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쉽게 개정할 수 있도록 정부 지침을 발표하는 등 반노동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박근혜 정부는 한국노총이 수십 년간 정부를 대신해 수행하던 취약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법률상담사업 국고보조금 지원을 중단시킵니다. 박근혜 정부는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체불과 부당해고와 같은 상담은 물론 노무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영세 사업주들의 상담을 통해 노사분쟁을 예방하는데 중요한 사업예산을 미끼로 노조 길들이기를 한 것입니다.

훗날 고용노동부 산하의 고용노동개혁위원회는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행정권을 남용한 문제적 정책이라 평가합니다. 정책 시행을 주도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직권남용 행위로 검찰에 수사의뢰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 정부의 노조 길들이기 최대 피해자인 이정식 장관이 이번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노동계에 국고보조금 중단을 시행한 겁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노동계에서는 이정식 장관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내년 총선에서 여당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 받기 위해서일 것이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어느 고용노동부 소속 공무원은 "빨리 나가서 내년 총선이나 준비하지 왜 계속 장관 자리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불만을 토로 하더군요. 최대한 총선출마 전까지 장관 자리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려고 한다며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비판했는데요. 내년 총선에서 이 장관이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면 노동전문가로 아마도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국회에서 입법으로 뒷받침 하겠지요. 걱정입니다.

저는 지난해 여름, 이정식 장관이 저임금에 살인적 노동으로 고통받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달려간 것을 기억합니다. 당시는 장기간의 파업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공권력 투입을 시사한 직후였습니다. 제2의 쌍용차 사태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날까 걱정해 현장으로 달려가 농성중인 노동자의 건강을 걱정하며 사태 해결에 나름의 노력을 했던 것으로 평가하는데요. 저는 이정식 장관이 기존의 신념을 다시 되새겨 노조를 배제한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 노동정책에 제동을 걸어 주길 기대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에서 일합니다. 기사 중 일부 내용은 이동철의 상담노트 칼럼(매일노동뉴스)의 일부를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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