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손고사리 같은 손을 잡으면 기분이 좋다
윤용정
봉사를 하면서 가장 슬프면서도 기쁜 일은 아이가 입양 부모를 만나 이곳을 떠날때이다. 입양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부모와 아이가 연결되면 일정 시간 동안 만남을 갖다가 부모가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매주 보던 아이가 어느 날 입양 가정으로 떠나고 없으면 남은 아이들이 더 쓸쓸해 보이곤 한다. 아이들이 모두 좋은 부모를 만나 이곳을 떠나기를, 우리가 헤어질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지난 봄에 OO꿈터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려 봉사활동이 몇 주간 중단된 적이 있다. 일요일 오전에 봉사활동 가지 말고, 자기랑 놀아주면 안 되냐고 가끔 삐지는 초등학교 3학년 막내딸이랑 놀아주려고 마음먹었다.
"딸, 우리 오늘 영화 보러 갈까?"
"엄마, 오늘 아기들 보러 안 가? 나 오늘은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어."
이렇게 어이 없게(?) 딸이 집을 나가고, 다른 가족들을 보니 다들 각자 휴대폰을 붙들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나 혼자 멍하니 식탁에 앉아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봉사를 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아이들을 돌보러 다닌 게 아니고, 아이들이 나랑 놀아준 거였어!'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물었다.
"거기 가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이 뭐야?"
"기저귀 갈아주고, 밥 먹이고... 아, 제일 많이 하는 건 웃는 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웃는다. 그런 웃음은 전염된다. 아무리 걱정이 많은 날도 거기 있는 두 시간 동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주일 중 가장 게으르고 의미 없이 보내던 일요일 오전이, 꿈터 아이들을 만나면서 가장 밝게 웃으며 노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버럭버럭 화 많던 내가 화가 줄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단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내가 1년 넘게 꾸준히 자원봉사를 한 건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얻는 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후에 느낀 가장 큰 변화는 화가 줄어든 것이다.
"이게 방이냐, 쓰레기장이냐?"
"양말 좀 뒤집어 벗어놓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들을 향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화를 내는 대신 이런 생각을 한다.
'방을 이렇게 어지를 정도로 건강해서 고맙네.'
'양말 좀 뒤집어 벗어놓으면 어때.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도 아닌데.'
가족이 함께 사는 건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새삼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아이들이 방을 어지르거나 남편이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는 것쯤은 화낼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아이들을 보러 가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래도 가끔 가기 어려운 날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혹한의 추운 날에 그렇다. 그럴 땐 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들은 한 가지 조언을 생각한다. '일단 집 밖으로 딱 한 걸음만 나간다. 체육관으로 간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 OO꿈터로 가 보면? 먼저는 웃음이 나오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몸에 근육이 늘고 피부가 좋아지는 것처럼, 꾸준한 자원봉사는 마음에 단단한 근육을 붙여주는가 보다. 하도 자주 웃으니 인상마저 밝아지고 예뻐졌는지, 요즘 피부 관리 받느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건 일종의 보너스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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