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9 13:25최종 업데이트 23.12.1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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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났던 날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울었고, 분노했고, 행동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날 뒤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기억의 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도 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기억 속의 그 장소들을 가보고, 그곳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견뎌온 이야기들도 풀어냅니다. 이 이야기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기자말]
제주도에는 43번 버스가 있다. 4.3 항쟁을 기억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이름처럼 4.3 기념관을 지난다. 제주시의 산간지방인 봉개동, 4.3 기념관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세월호 제주기억관이 있다. 10월, 선선한 바람과 노랑 바람개비들이 반겨주는 세월호 제주기억관에서 박은영·김원님을 만났다.

박은영님은 세월호 제주기억관 운영위원이자, 평화쉼터(제주기억관과 함께 운영되는 숙소 활동가들에게 쉼을 제공하기 위한 공간-기자 말)지기다. 기억관을 찾는 이들에게 세월호참사를 안내하고, 기억관을 관리한다. 눈물짓는 이들에게 손수건을 건네고 따뜻한 차를 내오며, 평화쉼터를 찾는 활동가들을 돌본다.

김원님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아래 세제모)'의 '총대장'을 맡아 제주 곳곳을 누빈다. 청소년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들을 찾아 리본을 나누고, 세월호 제주 추모행사를 주도해 기획하고 있다. 나이도, 경험도 각기 다른 두 사람이지만 세월호에 대해서는 서로의 활동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동료이자 친구처럼 보였다. 

제주에 마련한 기억관
 

제주기억관 입구의 노랑 바람개비 ⓒ 장태린

 
나는 '세월호 세대'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의 수학여행을 일주일 앞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그렇기에 그날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학여행은 연기됐고, 학교에서 성금과 구호 물품을 모아 진도 체육관으로 보냈다. 참사가 정말 '나의 일'이 됐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박은영·김원님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달랐다. 10대 후반의 청소년인 김원님은 2014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너무 어렸던 탓이다. 박은영님은 참사 직후 일부러 세월호 소식을 외면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희생자들의 얼굴을 마주 보는 일을 했기에,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들이 2023년 현재, 어떤 마음으로 기억관을 지키고 있는지 궁금했다.


"2014년에는 너무 어려서, 사실 기억이 별로 없어요.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다음 해에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제주 보물섬학교)에 입학했어요. 학교에서 세월호참사에 대해 배웠고, 그때부터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고요. 2022년, 8주기 때 '세제모'를 결성해서 제주기억관과 함께 행사 기획을 시작했어요.

세제모에서는 35명 정도의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저희 또래 학생들에게 세월호를 알리기 위해서 등하굣길에 학교를 찾아 리본을 나눠주는 활동을 해요. 돌문화공원이라는 관광지에서도 리본 나눔을 하고 있어요. 격월로 리본 공방을 열어서 직접 리본을 만들기도 해요." (김원)


″저는 지금도 전원 구조 보도가 생각이 나요. 당시 일하던 회사 사무실에서 직원들하고 같이 세월호 뉴스를 봤거든요.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안심하고 다시 업무를 봤는데, 저녁이 되어서야 그게 전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 어떤 문제들이 쌓여 있었는지도 알게 되고요.

개인적으로 1주기 때까지 광화문에 가 보질 못했어요. 아이들이 배 안에서 찍은 영상들을 계속 틀어줬거든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곳을 지나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제주에 온 건 이제 8년됐어요. 제주기억관은 연 지 4년이 됐고요. 공간이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가고, 기억하기가 좋잖아요.″ (박은영)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에서 활동하는 김원님 ⓒ 장태린

 

부천지역아동센터의 초등학생들과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박은영님 ⓒ 박은영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삶의 반경을 확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며 제주에서 세월호 기억 활동을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기억관에 오시는 분들이 '왜 제주에서 기억관을 하냐'고 물어요. 그런데 제주도는 관광지잖아요. 안산이나 광화문은 의미가 큰 곳이라서, 제가 그랬듯 많은 분이 그곳을 찾는 걸 힘들어하세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죠. 마음을 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이에요. 하지만 여기는 지나가다 들렀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죠. 경찰과 그 가족들이 오셨던 게 기억이 나요. 광화문 기억공간은 도저히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제주로 발령이 나서 가족들과 다 같이 왔다고. 잠수사, 심리치료사들이 오신 적도 있었어요. 그때 당시 봉사활동 하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다는 이야길 하고. 최근에는 기억관을 들어오면서부터 펑펑 울던 20대 남성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좀 진정된 후에, '제가 그 친구들이랑 동갑이에요'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미안한 마음에 참사 관련 장소를 못 찾던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점에서 제주기억관에서의 활동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박은영) 


"10년이 지난 지금, 단원고 언니 오빠들이랑 또래인 나이가 됐어요. 여기가 수학여행의 종착지였다는 생각에 좀 더 열심히 활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주도 수학여행 코스를 저희는 다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저 같은 대안학교 학생들은 세월호참사에 대해 잘 알지만, 일반학교 학생들은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활동하려고 해요.

현재 두 달에 한 번씩 직접 배를 타서 배가 세월호 이후에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확인하는 안전 모니터링 활동을 해요. 배를 타면 1인당 제공되는 공간이 0.25평 정도예요. 엄청 좁아요. 그 외에도 배의 문제점을 많이 찾았거든요. 복도나 계단이 너무 좁아서 두 사람 이상이 같이 설 수가 없다는 것 등이요. 만약에 배가 갑자기 기울거나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나가야 할 때, 못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탈출할 때 쓰라고 망치를 둬야 하는데, 망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거예요.

여러 문제점들을 고쳐 보려고 해양수산부에 전화도 했는데, 자꾸 전화를 다른 데로 돌리시더라고요. 저희 학교는 배를 타고 여행을 많이 다녀요. 그런데 배를 심하게 무서워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세월호 영향도 있죠.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많이 고민해요." (김원) 


비상구를 확인하는 세대
 

봉사자들과 유가족들의 작품으로 꾸며진 세월호 제주기억관 ⓒ 장태린

 
비슷한 시기를 보낸 또래 친구들에게 한 가지 같은 습관이 있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익숙한 공간에 갈 때도 가장 먼저 비상구를 확인한다. 불이 나거나, 물이 들이차거나, 건물이 붕괴되는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2023년 현재 배를 타는 청소년들도 두려움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세월호 이후에도 수많은 참사들이 있었다. 배가 침몰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던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은 '무기력'이 아닐까. 제주의 활동가들도 그 세월을 지나며 지치지 않았을 리 없다. 그 무기력 사이에서, 세월호 10주기를 준비하는 마음에 대해 물었다. 

"5.18 때도 10주기를 기점으로 '할 만큼 했잖아'라는 반응이 나왔었다고 해요. 해결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추모가 끝날 수 있겠어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주기를 맞이하고 싶어요.

10월에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활동가가 평화쉼터에 와 계셨어요. 어머님은 '세월호가 부럽다'고 하세요.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죽는 청소년·청년들은 기억 공간을 만들지 않아 쉽게 잊혀져 버린다는 거예요. 공간이 주는 의미는 '잊지 않겠다'는 것에 있잖아요. 사고·참사가 반복되는 건 잊혀져서라고 생각해요. 삼풍백화점 붕괴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 추모비가 공원 구석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다잖아요. 너무 충격적이죠. 그나마 있는 기억 공간들도 없애 버리고, 지워 버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래서 공간을 더 열심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은영) 



"세월호참사 이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사회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느껴요. 제가 생각하는 안전한 나라는 걱정하지 않는 나라예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회, 놀러 다닐 수 있는 사회. 밤늦게 다녀도 무섭지 않은 사회가 안전 사회인 것 같아요. 1년 내내는 아니더라도, 4월 한 주라도 함께 추모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초등학생 때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이 엄청 큰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세월호참사 당시 영상을 보면, 지금 제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이랑 똑같거든요. 여기서 10년이 더 지나면, 2014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친구들이 제 나이가 되겠죠? 만약에 우리 사회가 좋게 바뀌었다면, 이를 기점으로 이렇게 바뀌었다고 기쁘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로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김원) 

"처음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서 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기억을 되살리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세월호가 벌써 9년이 됐어요?' 라고 되묻는 분들이 많으세요. 하지만 사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잊혀져 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리본 나눔 같은 활동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아주 좋았던 기억, 아주 슬펐던 기억은 잘 잊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세월호를 소개하려 해요. 잠수사분들이 어떤 과정으로 구조를 했는지, 미수습자 가족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생일인 아이들을 꼭 소개해요. 오래 기억하시라는 마음으로요."  (박은영) 



 
오랫동안 기억하려는 마음을 담아 직접 짓고 가꿔온 공간이자, '세제모'라는 단체가 탄생한 공간인 한 세월호 제주기억관. 이들은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떤 곳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을까.

"사람들이 더 많이 기억관에 왔으면 좋겠어요. 아, 10주기 행사에 높은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저희가 9주기 행사를 하면서 세제모 친구들이랑 평가 회의를 하는데, '이런 일들을 우리 같은 청소년이 아니라 정부에서 해야 하는 것 아냐'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교육감이나 도지사가 추모 행사를 기획하고, 우리가 손님으로 가 봤으면 좋겠어요. 도지사님 오시라고 전화도 했는데 안 오셨어요. 

우리 기억관 많이 오시는 분들이 도지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대통령 되면 더 좋겠는데요, 저희가 직접 나갈까요? 당 만들려고 이름도 정했어요.(웃음) 전국구가 되어야겠어요. 지난번에 광주 청소년, 경기도 청소년들도 만났거든요. 세월호를 함께 기억할 새로운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김원)


"앞으로도 그냥 해왔던 것처럼 계속해야죠. 새롭게 뭔가를 더 하는 것보다는 꾸준하게요.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줄어 들고 있어서... 무엇보다 꾸준히 계속 활동하려고 해요." (박은영) 

대학에서 '4.16을 기억하는 학생 모임'을 운영한 적이 있다. 지난 2020년, 6주기 추모 행사의 제목을 '다시 묶는 리본'으로 붙였었다. 5주기가 지나며 "이제 그만 할 때 되지 않았냐"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기억하자, 잊지 않겠다 라는 이야기 말고 또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서도 느슨해져 버린 노란 리본을 다시 묶자는 의미를 담아 6주기 행사를 기획했다.

그로부터도 3년이 더 지났다. 세월호 학생들이 닿고자 했던 곳 제주에서 더더욱 바래고 느슨해진 리본을 다시 묶는 이들이 있다. 43번 버스를 타고 세월호 제주기억관을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 마음들이 모인 힘으로, 기억관 앞 노랑 바람개비들은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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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세월호 세대 청년으로 ‘싸우는여자들기록팀’의 멤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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