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가족나눔봉사단 단장인 박정화씨는 참사 당시 봉사자들에게서 받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봉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신정임
박정화씨는 4.16봉사단 외에도 많은 일을 해왔다. 봉사단장 전에는 4.16공방의 공방장을 맡았고, 9반 '윤희 엄마' 김순길씨와 함께 진행하는 단원FM 라디오방송 중 '끝나지 않은 세월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삶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다. 강의하고 라디오방송을 진행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강의 연습을 하다가 생각이 안 나 머리가 하얘지기도 했다. 방송 진행을 하다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다. 남 앞에 서면 눈도 잘 못 맞추고 얼굴부터 빨개지던 사람이었기에 앞에 나서는 일이 부끄럽고 진짜 힘들지만 용기를 낸다.
"남은 가족들 생각해서 일상생활로 돌아간 엄마, 아빠들도 많은데 나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우리 딸 억울한 걸 풀어야죠. 옛날에는 자식들 위해서 돈을 벌고 생활을 했다면 자식이 없으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의 딸 은정이는 별명이 '성격 미인'일 정도로 친구들과 두루 잘 지냈다. 집에서도 효녀였다. 일하는 엄마가 힘들까 봐 어깨도 주물러주고 부엌에서 음식하고 있으면 뒤에 와서 "사랑해" 하며 안아주는 딸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게 많이 했어요. 평생 못할 말을 다 하고 가려고 했는지 평소에 '사랑해'라는 말을 엄청 많이 했어요."
사랑이 많은 아이는 엄마 일도 열심히 도왔다. 미용실을 할 때는 한 살 위인 오빠와 함께 학교 끝나고 와서 파마를 말 때 쓰는 종이들을 펴는 일을 도맡았다. 은정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식당을 시작하자 두 아이는 주말에 홀 서빙 알바를 했다. 점심 한 끼만 하면 1만 원, 저녁까지 하면 2만 원씩 줬는데 점심만 하고 사라지던 첫째와 달리 은정이는 저녁까지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 돈을 모아서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 되면 필요한 걸 사라고 봉투를 건네곤 했다.
가족 이벤트도 은정이가 다 챙겼다. 생일이면 집안 불을 다 꺼놓고 있다가 저녁 늦게 퇴근하는 엄마를 촛불 켠 케이크로 맞이하던 딸이었다. 은정이 얘기할 때가 제일 행복한데 그렇게 예뻤던 딸이 지금은 곁에 없다. 딸이 세상을 떠난 뒤론 집에서 이벤트가 사라졌다. 가족들 생일도 안 챙긴다. 은정이 생일에 케이크만 사다 놓고 조용히 밥을 먹는 걸로 온 가족 생일 기념을 대신한다. 미역국도 끓이지 않는다.
이렇게 10년을 지내오면서 아들한테 많이 미안하다. 참사가 일어나고 한동안은 보이는 게 없었다. 집에 와도 울기만 하다가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당시 고3이던 아들이 어느 날 "엄마, 나는 엄마 자식이 아니야? 왜 나는 안 봐줘"라고 말했다.
그때야 아들이 보였다. '아, 네가 있었구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엄마가 은정이 그렇게 보낸 게 너무너무 억울해서 그래. 은정이 억울한 거는 풀어줘야 하잖아.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줘. 엄마는 아들도 정말로 사랑한단다."
그렇게 울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야 아들이 조금씩 좋아졌다. 여전히 명절이나 가족들 생일 등 기념일이 돌아올 때가 제일 힘들다. 그런 날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세월호참사가 난 뒤로 명절 때 시댁이나 친정에 간 적이 없다. 서로 어색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힘들고, 팽목항과 목포 신항에서 명절상을 차리기 때문이다.
"딸 보내놓고 지금까지 우리 아들하고 명절을 같이 보낸 적이 없더라고요. 이번 추석 때에야 그 생각이 든 거예요. 추석날 팽목에서 음식을 하다가 아들한테 전화했어요.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냥 원룸 방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들, 엄마가 그동안 못 챙겨서 미안해"라고 사과하자 아들은 "괜찮아, 엄마. 은정이 일인데 뭘"이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말끝에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다음날 불러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 명절은 같이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은정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외쳐온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진 게 없다.
진짜 마음이 통하기까지

▲4.16가족나눔봉사단은 매달 화랑유원지에서 줍깅 봉사를 하며 4.16생명안전공원의 필요성을 안산시민들에게 전하고 있다.
4·16재단
4.16봉사단은 최근엔 매달 줍깅 활동도 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단원고 희생자 250명을 추모하고, 생명과 안전에 대한 교육과 소통의 공간으로 건립 추진 중인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예정지인 화랑유원지를 가꾸면서 생명안전공원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4.16생명안전공원에 대한 여론도 차츰 좋아졌다. 처음엔 안산시 곳곳에 4.16생명안전공원에 대한 반대 현수막이 붙고, 시위도 계속 열렸지만 지금은 그러한 여론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안산 시민들과 만나던 초창기가 생각난다. 봉사활동이나 주민간담회를 가면 세월호 엄마들이 여길 왜 왔느냐는 눈치를 받곤 했다. 사람들이 곁으로 오지도 않았다. 왜 우리가 여기에 와서 눈칫밥을 먹어야 하나.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계속 그 상태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슬픔을 감추는 법을 익혔다.
"엄마들끼리 다짐했어요. 간담회 가면 울지 말자고요.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굉장히 어렵게 만든 자리인데 울다 보면 하고 싶은 얘기도 못 하고 나중에 후회하거든요. 넉살이 좋아야 한다고 되새기면서 울음이 나오려고 해도 꾹 참아요."
행사에 가면 "우리 세월호 엄마들이지만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같이 어울리고 싶어서 왔어요"라며 다가갔더니 사람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관공서나 다른 단체와 함께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자선행사든 알뜰시장이든 시민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더 신경을 썼다. 음식을 해도 푸짐하게, 선물을 해도 예쁘고 좋은 걸 준비하려고 애썼다.
진짜 마음은 통하는 법. 이제는 지역에서 '언니, 동생'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행사를 가면 "여기 세월호 엄마들이에요. 세월호 잊으면 안 돼요"라고 먼저 소개하는 엄마들도 생겼다.
2024년 완공 예정이던 4.16생명안전공원이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2021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22년쯤 준공할 계획이었지만 안산시와 기재부 등 관계기관의 행정처리가 지연된 탓에 예정보다 늦어졌다. 2026년 상반기 준공만큼은 지켜져 별이 된 아이들에게 4.16생명안전공원을 선물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아이들이 떠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추모 공원을 이루어놓지 못한 미안함에 더 자주 화랑유원지에 나가 쓰레기를 줍고, 간담회에 나가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저도 우리 아이가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곳으로 오는 걸 바라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 아이로 인해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된다면 욕을 먹더라도 4.16생명안전공원에 우리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 이름이나 사진이라도 한번 봐야 기억할 수 있잖아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도 먹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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