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8 11:01최종 업데이트 23.12.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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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났던 날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울었고, 분노했고, 행동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날 뒤로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10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기억의 장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도 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기억 속의 그 장소들을 가보고, 그곳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견뎌온 이야기들도 풀어냅니다. 이 이야기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랍니다.[기자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 변정정희


지난 10월 노란 리본 같은 은행잎이 가득한 날, 인천가족공원 내 위치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갔다. 인천가족공원은 인천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묘역이자 추모시설로, 인천지하철 부평삼거리역 인근에 있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하 일반인 추모관)은 지난 2016년 4월 16일에 개관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빠른 시기에 문을 열었고, 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월호 기억 공간이다.

리본 두 개 맞닿은 형상의 일반인 추모관

일반인 추모관은 하늘에서 보면 리본 두 개가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 한쪽 리본 공간에 당시 인천가족공원 봉안당에 임시 안치된 20명의 일반인 희생자와 경기 안산, 광명 등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나머지 일반인 희생자의 유해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 다른 한쪽 리본 공간에는 참사 당시 현장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희생자의 유품, 세월호를 축소한 배 모형과 노란 리본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자전거 동호회,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승무원, 선사 아르바이트 노동자, 제주 이주 가족, 제주 출발 직장인, 제주 여행객을 비롯한 42명의 희생자(1명은 개인 사정으로 제외)와 세월호참사 이후 구조작업을 하던 중 사망한 민간 잠수사 2명을 포함해 총 44명의 일반인 희생자가 있다.

자전거 동호회원들은 건강하고 즐거운 노년을 준비하며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던 우리 부모님들이었다.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생들은 긴 시간 동안 우정을 돈독히 쌓고 환갑 여행을 함께 떠난 친구들이었다. 승무원과 선사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당시 단원고 학생들과 몇 살 차이 안 나는 20대로 자신이 입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주고 끝까지 선내에 남아 구조를 돕던 늠름한 청춘들이었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제주에 집과 감귤 농장을 마련해 이사하던 가족들과 제주로 출발하는 직장인, 제주 여행 생각에 설레던 여행객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웃들이었다. 희생자 중에는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과 귀화 시험 합격을 앞둔 재중동포도 있었다. 민간 잠수사 이광욱·이민섭님은 참사 이후 스스로 바다로 들어가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의인들이었다.

일반인 추모관 건물 바깥으로 나가면 6.5미터 높이의 화강암으로 제작된 추모탑이 우뚝 서 있다. 정면에는 탑비명과 세월호참사에 대한 유족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대신해 소설가 이외수가 친필로 쓴 글이 있다. 그 아래에는 절대 잊어서 안 되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오롯이 남아있다.

세월호참사 8주기를 앞둔 지난해 초, 인천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반인 추모관에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세월호참사 8주기 인천추모위원회'를 결성했고, 이후 매년 함께하는 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

인천의 더 많은 곳에 기억의 노랑 드레 언덕('드레'는 사람 사이의 점잖은 무게를 뜻하는 것으로 시민들이 함께 만든 노랑 바람개비 언덕을 부르는 이름 - 기자말)을 만들고 있다.

지난 9주기 때는 인천시청부터 일반인 추모관까지 4.16km를 행진하는 '시민 함께 걷기'를 진행하며, 좀 더 많은 지역과 연대하기로 했다. 일반인 추모관에서는 제주 생존자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또 시민사회단체(정평위)의 신자 등 인천 시민들은 일반인 추모관의 도움(동행 및 안내)으로 목포 선체에도 다녀왔다.

소외당하는 이들과 손잡는 사람들
 

일반인 추모관 앞에 걸린 노란 리본 메시지 ⓒ 변정정희

 
2년째 인천추모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과 연대하는 천주교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양성일 신부를 지난 10월 17일 만났다.

천주교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이하 인천 정평위)는 인천 지역 안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방지와 정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 기구다. 1980년대에는 광주 항쟁 때 희생된 이들과 연대했고 이후 환경,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이들과 손잡았다. 이런 인천 정평위가 세월호참사 앞에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함께한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참사 초기 빠르게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열었고, 이어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개최했다. 참사 1주기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할 때 힘을 모으기 위해 함께 단식했다. 천주교인천교구 관할지역 내 성당을 돌며 참사를 알리는 본당순회미사도 했다. 이후 매년 4월이면 세월호 유가족을 초대해 추모미사를 한다.

2018년 인천 정평위 위원장이 된 양성일 신부는 기존 세월호 활동을 이어가던 중 지난해 일반인 추모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때부터 일반인 유가족과 함께했다.

"세월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학생들이거든요. 저희는 우선 안산을 찾아갔죠. 기억저장소에 갔다가 마침 기억교실이 만들어지고 옮겼다 개관하는 과정을 다 봤어요. 주로 기억저장소 어머니들과 연대했죠. 그러다 인천 지역에서 세월호참사 추모 인천추진위원회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초대해 주셨어요. 그때 일반인 유가족들과 처음 만나게 됐어요. 사실 지역 사회에 일반인 추모관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왜 인천에 일반인 희생자를 위한 기억 공간이 있다는 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시민들은 세월호참사 후 단원고의 어린 생명들이 삶을 마저 끝내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다수 관심 역시 여기에 쏠렸다. 정치권과 언론도 사람들이 관심 있는 곳만 찾았다. 안산에 기억 공간이 여러 곳이 생기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단원고 유가족과 연대할 때, 일반인 희생자들은 무관심 속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전에는 저희도 '희생자'라고 말하기보다, '학생들'이나 '어린 영혼들'이라고 표현했거든요. 의식이 없었는데 이제 알게 된 거죠. 지금도 일반인 유가족에 대해 알리면 다 깜짝 놀라요. 지역에 추모관이 있냐고 되물어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뒤늦게 일반인 추모관을 찾았지만, 유가족들은 이미 사회에 두 번 상처 입은 상태라 함께 하기에 어려움이 상당했다.

"처음에 인터뷰하러 추모관에 갔는데, 단원고 유가족을 만났을 때와 분위기가 너무 달랐어요. 낯설었죠. 한편으로는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걱정되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저희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셨어요. 활동을 같이 해보니까 진심으로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신 거 같아요."

지난 2022년 2월, '세월호참사 8주기 인천준비위 구성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일반인 추모관 운영위원들이 함께 모였고, 빠르게 '세월호참사 8주기 인천추모위원회'가 결성됐다.

인천 정평위는 위원회 활동을 함께하는 일반인 희생자 추모를 위해 여러 행동을 한다. 일반인 희생자와 유가족, 추모관에 대한 이야기를 인천 정평위 소식지(정의평화157호)에 실어 알리기도 하고 추모 미사를 드리기도 한다. 또 가톨릭대학교 신학생들과 함께 목포에 다녀오는 등 인천교구 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일반인 추모관으로 안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쉬움 남는 일반인 추모관
 

천주교인천교구 정의평화의원회 위원장 양성일 신부 ⓒ 변정정희

 
하지만 현재 일반인 추모관은 기억 공간으로서 아쉬운 점이 많다. 유가족의 요청으로 국가에서 최초로 지어준 건물 형태의 재난 기억 공간이지만, 참사 초기 급하게 지어진 모습으로 보완이 필요한 상태다. 시민들의 힘을 모아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서울과 안산의 기억 공간에 비하면 역사와 이야기, 그것을 담을 기억 물품과 공간이 부족하고, 그에 따라 전해지는 공감의 온도도 현저히 다르다.

"보통 안산 기억교실을 가면, 출발하기 전 모여서 한 시간 정도 같이 <416단원고약전 - 짧은, 그리고 영원한>을 읽어요. 전집인데 다 못 읽으니, 그 중에 각자 한 반 것을 꺼내서 한 명 것만 읽고 가요. 그렇게 가서 학생 책상을 보면 어떤 이의 꿈이 하나도 실현되지 않은 채 사장된 느낌을 생생하게 받아요. 그런데 일반인 추모관을 그렇게 운영하자니 기록이 너무 없죠. 양이 적어서 기억교실과 확실히 차이가 나거든요. 일반인 추모관도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건물만 있어서 저희도 참 어려워요. 일반인 추모관을 어떻게 알릴지가 과제입니다."

올해 초 세월호참사 9주기 인천추모위원회 기획단은 지역의 재난 기억 순례길을 만들기 위해 함께 모여 시내를 반나절 걸었다. 인천은 세월호가 출발한 연안부두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인현동 화재 참사(1999년 10월 30일 중구 인현동 상가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 56명, 부상 78명이 희생됐으며, 대다수가 학생이었다)가 일어난 지역이기도 하다.

계속되는 사회적 참사 앞에서 인천의 재난 지역을 기억 순례길로 이어 기억을 보존하고 안전의식을 세우고자 한 행보였다. 아쉽게도 연안부두에는 러일전쟁 전사자 추모비는 있어도 세월호에 대한 작은 흔적조차 없었고, 순례길은 중간에 위험한 차도가 많아 결국 기획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전한 지역,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천 시민사회단체들의 마음만은 계속 진행형이다.

"이제 일반인 추모관만의 사업이 아니라 인천 지역 전체가 같이 추모하는 사업으로 안정화된 것 같아요. 그동안 일반인 유가족들만 어렵게 헤쳐가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런 추모관이 고맙게도 우리를 모이게 하는 구심이 되고 있어요. 보통 단체들이 주제별, 친분별 몇 개 블록으로 나뉘게 되는데, 세월호는 그렇지 않아요.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여요. 세월호참사는 우리가 책임져야겠다는 마음이죠. 그래서 다들 애쓰고 노력하고 다시 정비하며 함께 가고 있어요."

정평위는 어려운 사람을 당장 돕는 일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보다 구조적인 정의와 평화를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는 단체다. 이는 세월호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나라를 생명안전사회로 만드는 일을 뜻한다.

"민주시민의식을 끌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죠. '아픔을 기억해 주세요'를 넘어서 국가적인 재난 사태 앞에서 우리가 민주시민으로 어떤 시선을 갖고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의식을 만들어 가야죠. 낮은 단계에서부터 시작해 각 단체의 활동이 연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엄청난 힘을 가져서 빅뱅과 같은 이벤트는 줄 수 없지만 성냥불 정도는 더해야겠죠."

세월호에 일반인 희생자도 있었다. 바로 이들이다.

구춘미 권재근 권혁규 김기웅 김문익 김순금 김연혁 이상호(리샹하오) 문인자 박성미 박지영 방현수 백평권 서규석 서순자 신경순 심숙자 안현영 양대홍 우점달 윤춘연 이광욱 이광진 이도남 이묘희 이민섭 이세영 이영숙 이은창 이제창 이현우 인옥자 전종현 정명숙 정원재 정중훈 정현선 조지훈 조충환 지혜진 최순복 최승호 최창복 한금희 한윤지(판응옥타인)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내부 합동 헌화대 ⓒ 변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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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주로 TV 다큐멘터리,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에서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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