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2 12:41최종 업데이트 23.10.0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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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8월 24일 오후 1시 30분께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모습. ⓒ 교도통신=연합뉴스

 
"<돈 룩 업>이 따로 없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던 날, SNS에 누군가 올린 탄식이다. 방류 당일까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는데 우려하던 일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사실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별도의 사전지식이 없는 입장에서 이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물론 원자력 발전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고 미래의 안전과 환경을 생각한다면 점진적으로 줄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오염수 방류는 달랐다. 아무리 간단하게 설명해도 오염수 처리과정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고 그 와중에 등장하는 전문용어들까지 이 이슈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쫓아다녔는데 이 감정이 무엇인지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정말로 안전한 건가? 안전하지 않은 건가? 사실 별 문제가 없는데 내가 과민반응 하는 건가? 아니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가? 다른 나라에서도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한 물들을 바다에 방류한다던데 그렇다면 괜찮은 건가? 하지만 발전소가 파괴되어서 그로 인해 오염된 물이 방류되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사례라는데 그게 맞나?

여러 언론을 통해 나오는 분석과 주장들은 상충되었고 하나의 주장이 제기되면 곧바로 반박이 이어졌다. 질문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정작 입장을 정하기는 어려운 이유였다. 그런데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는 그 순간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막연한 불안감의 원인. 인터넷을 통해 후쿠시마 현장 생중계를 지켜보던 나는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이대로 가면 돌이킬 수가 없겠구나."
 

영화 <돈 룩 업> 포스터 ⓒ 넷플릭스

 
<돈 룩 업>이 그리는 사회가 가능한 이유

영화 <돈 룩 업>은 SNL 작가 출신으로 이미 <빅 쇼트>와 <바이스>를 통해 풍자극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아담 맥케이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지구를 박살내기에 충분한 혜성이 돌진해오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을 최대한 건조하게 설명하면 그렇고 사실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각자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느라 혈안이 된 사람들이 펼치는 아수라장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대통령·막강한 부를 지닌 기업인·언론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는 상황을 불리한 정치적 입지를 뒤집기 위해 이용할 생각이나 하고 기업인은 이 혜성을 부수지 않고 광물을 캐내서 이윤을 남길 위험천만한 궁리를 한다. 언론인들은 이 이슈를 심각하게 다루기는커녕 시청률을 올릴 소재로나 써먹는다.

물론 현실의 모든 정치인·언론인·기업인들이 영화가 그리는 것처럼 답이 없는 상태인 건 아니다. 실제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포함하여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여러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슬픈 점은 지금의 사회 환경에서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권한을 얻거나 충분한 주목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점차 길고 진지한 이야기를 듣기를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그건 나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아끼고 모아도 미래는 암울하고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기 바쁜 와중에 암울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피곤한 일이다. 이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또한 이제는 사람들의 필수재가 되어버린 소셜 미디어에도 불편한 진실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진열해주는 시스템은 편리하긴 하지만 그 속에는 사용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게 되는 부작용도 숨어 있다.
 

영화 <돈 룩 업>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왜 이상한 사람이 권력을 잡는 일이 반복되는가

요약하자면 누구의 삶도 책임져주지 않는 사회에서 생존만으로 피로해진 사람들은 점차 무겁고 장황한 이야기를 듣는데 지쳐버렸는데, 이와중에 언뜻 가볍고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가득해 보이는 소셜 미디어는 의도치 않게 사람들의 편향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런 환경은 진지하게 자신의 지향과 소명을 추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자극적인 방식으로 반복하는 사람들이 더욱 권력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런 이들을 선호하고 욕망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설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쩌다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와 같은 일은 그래서 발생한다. <돈 룩 업>처럼 되는 것이다.

<돈 룩 업>은 주로 미국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풍자를 통해 들추는 사회문제는 한국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글로벌한 경제 체제 속에서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버렸고 인류는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 생활방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는 각각의 국가들이 여전히 고유의 문제와 씨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문제 또한 마주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중하게 마주해야 할 사회문제를 서커스처럼 다루며 주목 경쟁에 뛰어드는 언론, 그저 권력을 쫓아 진영을 만들고 이에 따라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정치인은 당연히 한국에도 존재한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를 놓고 벌어진 거대한 갑론을박은 언급한 현실을 아주 극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힘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다른 정쟁과 다를 바 없이 다룰 때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돈 룩 업>이 보내는 엄중한 경고

영화 <돈 룩 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암울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이 영화의 단점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어쩔 수 있겠는가. 아무리 봐도 우연과 기적이 개입하지 않는 한 영화 속 상황에서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나는 오히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한국사회에도 아주 잘 적용되는 경고이다. 무책임한 이들이 힘을 가지고 우리가 이를 방조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또 다른 상황 앞에서 "이대로 가면 돌이킬 수 없겠구나"라고 무기력하게 되뇔지 모른다. 이미 주어진 사회 구조상 그런 결과에 아무리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고 한들 말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사족. 언급한 것처럼 <돈 룩 업>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한국의 상황에도 잘 연결된다. 무책임한 언론인과 기업인 그리고 너무나 지친 나머지 판단하기를 멈춰버리고 듣고 싶은 말에만 동조하는 평범한 사람들까지.
 

영화 <돈 룩 업> 속 대통령 재니 올린 (메릴 스트립 분) ⓒ 넷플릭스

 
그런데 딱 한 사람, 연결이 불가능한 인물이 있다. 바로 대통령이다. <돈 룩 업> 속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동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해하는 건 가능하다. 그 캐릭터가 원하는 것은 권력과 이를 얻을 수 있는 치적이기에 지구 공동체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아주 철저하게 그것을 쫓는다.

반면 대통령실 이름으로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홍보 영상까지 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동의 여부를 떠나 일단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오염수 방류가 한국 대통령의 치적이 될 수 있나? 어떻게? 그렇다면 대통령의 행보는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사익추구의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해봐도 대통령과 일본의 오염수 방류 사이에 별다른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매우 단순하게 보이는 대로 이해하자면 '일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길 바래서'가 유일한 이유인데 이건 아득할 정도로 해괴하다. 윤석열은 한국의 대통령인데?
 

윤석열 대통령 ⓒ EPA=연합뉴스

 
어쩌면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풍자하는 한국만의 <돈 룩 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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