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7 15:52최종 업데이트 23.09.0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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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차세대 외교관과의 대화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큰 틀에서 볼 때 위기라고 볼 상황은 절대로 아니다. 9월 위기설은 없다."

지난 1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일각에서 불거진 9월 위기설을 극구 부인했다. 또한 부동산 PF 대출에 대해선 "시스템 위기는 아니다"라며 "여러 소문과 우려가 있지만 관리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맞다. 시중에 나도는 흉흉한 소문은 부풀려지고 과도하게 공포를 부각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대기업들이 줄도산으로 가는 경제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에 보이는 집착, 기업들이 보유한 달러 등 유동자산의 규모로만 본다면 '9월 위기설'은 분명 기우다.

그런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존망이 달린 내수 경기와 국민의 살림살이는 이야기가 다르다. 

가구 실질 소득이 17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하고 7월 소매 판매가 전월 대비 3.2% 감소하면서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소득 감소, 소비 위축, 내수 침체가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은행과 대기업과 국가 재정이 안전하다고 위기가 아니라고 하니, 이게 맞는지 의문이다.

4월 위기설, 9월 위기설, 연말 위기설... 계절병처럼 찾아오는 위기설에도 국가와 기업은 안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을 떠받치는 국민 살림살이는 날마다 위기를 맞고 어느 곳에서는 소리도 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9월 위기설, 정말일까?
 

산업통상자원부는 8월 통관기준 수출이 전년 동월보다 8.4% 줄어든 518억7천만달러, 수입은 22.8% 감소한 510억달러였고 무역수지는 8억7천만달러 흑자를 기록하여 3개월 연속 흑자세를 이어갔다고 1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 하는 모습. ⓒ 연합뉴스


9월 위기설의 단초가 된 건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보고서 공개였다. "시중 금리가 높고 거시경제 위험성도 커지고 있어 9월 말 상환 유예가 종료되면 자영업자, 중소기업 위주로 시중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계속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4대 은행 부동산PF 위험 노출액이 30.9조 원, 코로나대출 만기연장으로 상환 유예된 금액이 76.2조 원에 달하는데, 9월로 상환기간이 만료되면 상환을 할 수 없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폭증하고 이는 곧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국내 언론들이 이 보고서 내용을 '9월 위기설'이라며 큰 비중으로 실었다.

불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보고서의 위험성은 현실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잔액이 최근 9개월 새 24조 원 가량 줄어들었으며, 부실 가능성이 큰 대출 규모는 0.07% 정도로 은행 부실로 이어질 정도가 아니고, 만기도 금융권과 협의에 따라 2025년 9월까지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9월 위기설은 과장되었다는 것이 금융당국과 정부의 설명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나 정부의 해명은 말 그대로 '큰 틀'의 예측이고 해명이다. 은행의 부실을 막기 위해 만기를 연장하고 값싼 이자의 대환대출 정책을 시행해도, 수입이 늘어나지 않으면 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는 위기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유예될 뿐이다.

"점포가 자꾸 비어요. 매달 임대료. 관리비. 공공요금은 어김없이 돌아오는데 매출까지 줄어드니 차라리 '노는 게 돈 버는 것'이란 소리, 빈말이 아니네요. 찬바람 불면 좀 나아질까요? 올 여름 같으면 죽을 맛이네요."

같은 골목에 살고 있는, 시장에서 그릇 장사한다는 아저씨의 아침 인사는 듣기에도 버겁다. 시장이 빈 가게가 늘어나고 손님은 점점 더 줄고 물가는 자꾸 오른다는 게 아저씨의 하소연이다. 어디를 가나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은 똑같다. 코로나 시국보다 못하다는 소리. 돈이 씨가 말랐다는 푸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자영업자가 느끼는 불황은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우리 경제가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실물 경제나 각종 경기지표, 경제 연구소의 예측 모두 우울한 전망이 우세하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 정책이 있기나 하냐'는 볼멘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얼어붙은 내수 경기, 막힌 수출길, 그 사이에 최근 청년 백수가 12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합계 출산율 0.78명에 '대한민국은 완전히 망했다'라는 반응을 보인 한 미국 교수의 반응도 최근의 일이다. 은행이 망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안정적이더라도 이런 게 위기다. 내수, 수출, 청년 실업, 인구 정책, 어느 것 하나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정부. "성장과 복지 선순환을 목표로 행복경제를 만들겠다"는 대선 후보 시절의 약속을, 윤 대통령이 기억이라도 하고 있나 의심이 들 정도다.

'상저하고', 무슨 근거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9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9차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열렸다.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성수품 공급을 확대하는 등 내수활성화 대책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임시공휴일 지정, 추석 연휴 통행료 면제 등 관광 활성화 방안은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의례적 정책이고, 크게 눈에 들어오는 대책도 거의 없었다.

하반기 국정운영의 중심을 경제에 두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그러나 숱한 난제들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자영업자의 소득을 키우려는 정책은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국민의 주머니를 채우지 않고 가계 부채 해결과 '행복경제'가 가능하기나 한 건지,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 같다.

'상저하고'. 상반기는 부진했지만 하반기는 반등할 것이라는 정부의 경제 예측이다. 근거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지난 7월 국내 산업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줄었다. 일명 '트리플 감소'다. 올 1월 이후 6개월 만에 나타난 좋지 않은 징조다. 수출 부진도 걱정이다. 8월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5%가 줄었다. 11개월 연속 감소다. 그런데도 경제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상반기에는 0.9% 성장했는데 하반기에는 2배 성장할 것 같다"는 예측을 자랑처럼 말한다. 'L자형 장기 침체' '일본형 경제 하강 국면'이라는 국내외 쏟아지는 우려와 지적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으로 상환 유예된 금액이 76.2조다. 만기연장을 한 경우라도 상환이 끝날 때까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은행으로 불똥이 안 튀었다고, 국가 경제는 여전히 건전하다고 호언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랑이 아니다. 이중 이자조차 갚지 못해 파산을 앞둔 800여 명뿐만 아니라, 76.2조원의 빚을 이고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에게 벌어서 갚을 길을 열어 주지 못하는 정부의 경제정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9월 위기설, 정부와 기업은 체감 못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에겐 삶을 망가뜨리는 공포다.

'상저하고' 예측을 뒷받침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수산물 먹방에 진심인 대통령과 고위공직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잘 차려진 식당으로 들어서기 전에 '임대 문의'를 적어놓고 불 꺼진 점포 사연도 귀 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은행과 국가 경제로 불똥만 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안일한 위기론 인식, 그것 때문에 자영업자와 빚진 국민들이 더 허리띠를 졸라매며 산다는 현실을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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