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1 07:11최종 업데이트 23.08.11 07:11
  • 본문듣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일 오후 전북 부안 새만금 부지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서 스카우트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문례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3 세계잼버리 새만금 유치가 확정된 것은 2017년 8월 문재인 정권 시절입니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처음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만금 잼버리를 언급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고, 새만금 사업을 100대 국정과제로 삼았을 정도로 준비에 집중했다고 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영상까지 찍어서 홍보에 열중했으며 관련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준비 종합 계획의 수립 등과 같은 영역이 이루어진 것도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주도했던 일임을 민주당 자신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 8월 7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김기현 대표 발언 일부

베트남에서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복귀 인사는 잼버리 파행에 대한 여당 대표로서의 사과였다. 그러나 사과는 짧았고 발언 대부분은 민주당 비판으로 채웠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2017년부터 준비했으니 문재인 정부의 실정은 거론하지 않고 윤석열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다', '대규모 국제행사 중에 해결을 돕기는커녕 문제를 확대시켜 정쟁의 도구로 삼는 민주당이 한심하다'라는 비난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좀 의아했다. 비난은 길었지만, 잼버리 대회가 왜 문재인 정부의 실정인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애정을 쏟았고, 직접 영상까지 찍어 홍보하고 100대 국정과제로 삼을 정도로 집중했다고 하는데, 이건 칭찬처럼 들린다.

야당인 민주당이 무책임하게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비난도 틀렸다.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전 세계가 떠들썩할 정도로 여론이 들끓는데 파행을 나무라고 대책을 요구하는 것을 무책임하다 할 수 있을까.

더 날 선 반응은 김 대표의 발언 이틀 전부터 쏟아졌다. 영국팀과 미국팀의 철수가 결정된 지난 5일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와 전북도의 외화내빈(外華內貧)식 부실 준비로 위기에 처했다"라는 논평을 내서 직격했다. 심지어 위기에 처한 새만금 잼버리 대회를 바로잡고, (그 후)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엄포까지 놓았다.

이번에도 '문재인 탓', 고질병 또 도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이것은 한쪽에는 민주당을 향해 국제행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문재인 탓'이라는 책임을 묻겠다는 이율배반적 태도다. 국민의힘의 다급함과 답답함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게 문재인 탓, 이번에도 문재인 탓', 구태의연한 '남 탓하기' 고질병이 또 도졌다는 생각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국제행사를 조롱거리로 만든 무능도 밉지만, 번번이 남 탓하며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조차 없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그 오만함이 더 밉고 국민의 화를 돋운다.

자고 일어났더니 후진국, 그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비난도 넘쳐난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는 엉망이 됐다. 환경, 위생, 음식, 의료 어느 것도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국격은 여지없이 주저앉았고 국민의 자긍심은 회복이 쉽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유치 후 인프라 구축에 부실했던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게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폭염 대비, 우천 시 배수, 감염병, 식중독, 안전, 시설 문제는 2022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영국팀의 퇴소 사유로 꼽힌 것도 비위생적인 화장실, 현저히 떨어지는 음식의 질과 양, 폭염에 대한 미흡한 대응, 불충분한 의료지원 문제 등이었다.

안일한 인식만 없었다면 임기를 시작하고 14개월 동안 충분히 준비해 성공할 수 있는 대회였다. 그 성과가 윤석열 정부의 치적이 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대회는 파행됐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책임 전가로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안일로 인한 책임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금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책임을 추궁할 위치가 아니라 국민의 따가운 질책을 받아야 할 때다.

여야가 지금 정치 공방을 할 때냐며 나무라는 보수 언론들이 있다. 동의할 수 없는 논조다.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하겠다며 대통령 부부가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를 한 개영식 도중, 150여 명의 참가자들이 병원에 이송되었다. 여자 샤워실에 남자가 드나들 정도로 시설과 안전은 허술했고 성범죄에 대응하는 잼버리 조직위의 태도 또한 안일했다. 지적해야 할 건 정치 공방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남 탓하는 위기 타개책이다. 과거 정권과 현재 정권에 책임의 무게를 똑같이 지우려고 한다면, 그건 공정도 바른 보도도 아니다.

남 탓 말고 잼버리가 끝나기 전에 사과하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간척지에서 열리는 2023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들이 주최측의 준비소홀과 태풍 ‘카눈’의 북상 등으로 인해 지난 8일 야영지에서 전면 철수하는 가운데, 스위스 스카우트 대표단이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글로벌센터에 마련된 숙소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잼버리 대회 파행은 문재인 탓(?)' 주장은 별로 새로운 것도 없는 낡은 프레임이다. 앞서 말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남 탓은 유별나다. 과거 '모두가 노무현 탓'이라는 억지 주장의 변종일 수밖에 없는 '문재인 탓'의 진원지는 대부분이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이다. 

이러한 프레임이 언론과 SNS를 통해 확대되고, 보수 논객은 지난 정부 인사에 대한 수사를 주장하고 사정당국은 수사와 조사에 들어간다. 별 게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잘못은 덮이고, 남은 건 과거 정부에 덧씌워진 실정이다. 외교, 민생, 남북 관계, 안보, 심지어는 물난리에서도 자랑할 건 윤석열 정부의 몫이었고 잘못된 건 문재인 정부의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지난해 이태원참사 당시 정미경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112 시스템'을 고치지 않은 이유를 들어 문재인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3일 이태원참사 국정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재난대응체계를 4단계로 구성하는 바람에 대응이 늦어졌다'는 내용의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문재인 정부 책임론'에 가세했다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커진 건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된 수자원 관리와 치수 계획 때문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성토한 것도 국민의힘이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잼버리 대회 파행 등, 안전 불감증과 정부의 무능을 바로잡지 않으면 매번 사건은 반복될 뿐이다. '문재인 탓' 위기 타개책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여당을 보면, 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두렵기까지 하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에게 선서한다. 과거 정부가 어떻든, 어떤 나라를 이어받았든 '대통령 선서'를 하고 나면 국가 모든 일에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건 대통령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잘하겠다고 약속하며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이다. '남 탓' '문재인 탓' 그만했으면 한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보다 딱히 나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제 성장률이 이렇게 곤두박질치고 수출이 10개월 내내 내리막으로 치달은 적은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서민들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호언도 지켜지지 않았다. 불통의 이미지를 씻기 위해 청와대를 나왔다고 하지만 대통령 주변의 '인의 장막'과 못된 소문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잼버리 대회 파행의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4만 3천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진솔한 사과부터 했으면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그 사과조차 대신하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