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7 11:24최종 업데이트 23.05.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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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대통령 ⓒ 연합뉴스


차기 대권을 겨냥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두 전·현직 대통령들이 바빠지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내년 11월 5일 치러진다. 따라서 이들 둘은 늦어도 올여름 이전에는 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다른 잠룡들이 가시화되기 전에 대세를 확정 짓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미국 헌법상, 연임에 관계 없이 모든 피선거권자는 두 차례 대통령직을 수행할 권리가 있다. 현재 생존한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은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등 총 6명이다. 이들 가운데 클린턴, W. 부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미 두 차례 임기를 마쳐 입후보 권한이 없다. 카터 전 대통령은 고령으로 사실상 출마가 불가능하다.


결국 실질적으로 출마가 가능한 모든 전·현직 대통령이 출전 채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드문 일이지만 만약 둘의 출마가 성사된다면 이미 한 번 맞붙은 두 후보가 다시 '리턴 매치'를 하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사례에 해당한다. 첫 번째는 1952년과 1956년 대선 당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가 민주당의 애들레이 스티븐슨 후보를 상대로 연승했던 사례다. 

바이든-트럼프 대결을 가정했을 때 재미있을 법한 기록은 그뿐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내민 경우 역시 미국대선 역사상 단 한 번뿐이다. 1904년 공화당적으로 당선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후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1908년 당선)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신당을 창당해 1912년 다시 도전했다.  

한때 한솥밥을 먹은 전·현직이 동시에 출마한 당시 대선에서 어부지리 승자는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에게 돌아갔다. 따라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한다면 앞의 선례와 또 다른 경우에 해당한다. 패배한 대통령이 패배를 안긴 차기 대통령에게  재도전하는 미국 대선 역사상 첫 사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만 놓고 본다면 내년 대선은 미국 정치사상 보기 드문 명승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트럼프 재대결을 상상하는 미국 국민 가운데 기대에 찬 눈으로 대선을 기다리는 이들은 소수에 그친다. 대체 불가능한 최선 후보들 간의 한판 승부라기보다 (여러 이유로) 대체 불가능한 최악 후보들 간의 지겨운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직이라는 강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예가 미국 대선 역사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물다. 20세기 이후 초임을 마친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경선에서 탈락하거나 불출마를 선언한 예는 21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하다. ▲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공) ▲ 30대 캘빈 쿨리지(공) ▲ 33대 해리 트루먼(민) ▲ 37대 린든 존슨(민).

미 민주당 유권자들의 답답함
 

4월 1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애코킥에서 자신의 경제 구상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생으로 올해 나이 80세. 이미 2020년 당선 때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령을 기록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만약 차기 민주당 후보로 최종 결정되고 재선에 성공한다면 역시 자신이 세운 최고령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게 된다. 그리고 4년 임기를 마칠 때 나이는 84세가 된다.  

기대수명이 과거와 다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살얼음 위의 국제관계를 볼 때,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나이로 보기는 어렵다. 여느 대통령의 건강도 최고 수준의 안보 사항이지만 러시아를 상대로 간접 전쟁을 치르고 있고, 국제 공급망 재편을 주도적으로 꾀하는 미국 대통령의 정신건강은 비단 미국인들만의 관심 대상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행한 한 연설 중 숫자 8의 영어 철자(eight)를 'eigh'로 잘못 짚는가 하면 한국(South Korea)을 남미(South America)로 잘못 말해 정정하기도 했다. 이 정도는 단순한 실수일 수 있으나 지난해 9월 한 백악관 행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연방 하원의원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물론 잦은 말실수를 반드시 인지능력 저하로 연결시키는 것이 무리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정책 판단의 오류는 말실수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임기 초,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시키는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철군 결정 자체는 앞선 트럼프 정권에서 이뤄졌지만 아프간 정부와의 꼼꼼한 공조 없이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미군의 모습은 베트남 악몽까지 떠올리게 했다.  

미국을 인플레이션에서 구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야심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역시 대통령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IRA의 효과를 지금 말하는 것이 섣부른 일일까?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이 동반된 IRA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미국의 물가를 묶기보다 동맹국들의 사지를 묶는 결과를 초래했고, 기후변화를 막아서기보다 한국산 전기차를 막아서고 있다. 어디를 봐서 인플레이션 감축이고 어디를 봐서 기후변화 대응인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미국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을 봐도 그들의 답답함이 묻어난다. 지난 7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 ABC 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범민주당 지지층 유권자들의 36%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재출마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민주당 성향 무당층 유권자 경우 17%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차기 대선후보 지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때릴수록 지지층은 더 결집
 

지난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스코틀랜드 애버딘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화당의 사정도 결코 낫지 않다. 하지만 이유는 많이 다르다. 위에 언급한 같은 여론조사에서 범공화당 지지층 유권자들의 경우 무려 51%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화당 후보로 지명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아직 출마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잠재적 주자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경우 공화당 지지층의 35%만이 그의 출마에 지지 의사를 보였다. 

민주당은 낮은 지지율에도 현직 어드밴티지를 얻은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지도부의 말 못 할 고민이 거기 있다면 공화당은 반대다. 공화당 지지층의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확고하다. 반면 공화당 핵심 지도부에서는 본선 경쟁력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서게 될 리스크를 고민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최초로 형사 기소된 인물이다. 소위 '성추문 입막음' 사건이라 불리지만 기소 이유는 문서조작이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과거 성매매 대상이었던 포르노 여배우에게 침묵을 대가로 총 42만 달러(5억 5000만 원)를 지불한 뒤, 그 가운데 기업 돈에 대한 장부 내용을 '법률 자문 비용'으로 허위 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서조작이 결과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중범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뉴욕 검찰은 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는 최근 다른 건에 대한 민사소송 패소까지 이어졌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한 여성 작가에 대해 뉴욕의 맨해튼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성추행 사실을 만장일치로 인정했다. 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욕적 대응이 명예훼손이라 판단한 법원은 500만 달러(67억 원)의 피해보상과 징벌적 배상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 10여 명의 트럼프 전 대통령 성폭력 주장에 대해 법원이 인정한 첫 사례에 해당한다. 앞으로도 유사한 사법 판단이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리스크는 이뿐만이 아니다. 2021년 1월 6일 발생한 이른바 '의회 난입 사건', 기밀문서 반출 사건, 2020년 대선 당시 조지아주 개표에 개입한 정황, 소유한 부동산 가격 조작 의혹 등 그를 대상으로 수많은 사법 조사가 기다리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고민은 트럼프 사법 리스크가 앞으로 본격적 대선 국면으로 들어설 때 과연 어느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그가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격차를 벌리기 시작한 시점은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된 시점과 일치한다. 한마디로 트럼프를 때릴수록 지지층은 더 결집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적, 도덕적 논란은 그 역시 고령이라는 약점을 오히려 감춰주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도, 도덕적 기준도, 법적 테두리도 모조리 바람에 날려버리는 이른바 '트럼프 효과'가 4년 만에 또다시 미국 정가를 휘돌고 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밀어낼 참신한 후보를 민주당에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 대선까지 아직 17개월 반이 남았다. 바이든-트럼프 재대결이 분명히 성사될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그사이 새로운 어떤 후보가 돌풍을 일으킬지도 알 수 없다. 예상을 뛰어넘는 돌풍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예측 가능한 미래가 보장된 사회가 안정적 사회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예측 가능한 가까운 미래는 그다지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판을 흔들 돌풍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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