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3일 자 <타임>에 실린 기사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조국을 치유하려는 마지막 노력을 하다"
타임
2021년 6월 23일 자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에 실린 기사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조국을 치유하려는 마지막 노력을 하다"를 놓고 국내에서 벌어진 논쟁이 대표적이다. "많은 북한 감시자들에게는 김정은에 대한 문 대통령의 확고한 옹호가 망상에 가깝다"는 문구를 당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데도 청와대는 자랑만…"이라고 옮겨 놓았다.
이것을 국내 언론은 "윤희숙 '타임지는 망상 빠졌다는데, 文 표지 등장 자랑… 얼굴 화끈'"(<조선일보>), "타임 '김정은 향한 文 옹호는 망상' 윤희숙 '얼굴 화끈거린다'"(<중앙일보>) 등으로 옮겼다. 해당 기사를 청와대가 홍보자료로 사용한 것을 윤 의원과 국내 언론이 비꼰 것이다.
기사의 전체 맥락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화해를 위한 마지막 도전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그 배경과 상황, 전개, 한계, 그리고 비판자들의 입장 등을 소개하는 글에서 그들은 비판자들의 말을 기자의 말로 둔갑시켰다. 자신이 필요한 문장을 기사의 전체 논조로 탈바꿈시킨 대표적 사례다.
슬기로운 외신 활용법
분명한 것은 한국을 보는 외신의 시각, 또는 분석이 늘 정확하거나 참신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주요 수교국과 그 외의 극히 일부분을 제외한 국가의 언론 대부분은 한국에 상주 특파원을 두고 있지 않다. 이들 언론이 전하는 한국발 이슈의 다수는 따라서 기자들의 취재가 아닌 통신사나 한국 언론의 보도를 받아 전하는 내용들이다.
결국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것을 외신이 인용하고, 외신이 보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세계의 시각으로 둔갑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마치 '~카더라' 통신이 언론을 통해 '그런 말들이 돈다' 식으로 보도되고, 그러면 그것이 사실인 양 둔갑하는 것과 같은 구조인 셈이다.
이 모든 현상이 국내 언론에 대한 근본적 불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그리고 언론에 대한 불신의 큰 부분은 그 사회의 심각한 분열로부터 나오고, 그 분열의 큰 부분은 권력에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착잡하게 만든다. 정치권의 책임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분열상은 외신들을 통해 전 세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는 1월 29일 자 기사
"'디올 스캔들': 2000유로짜리 핸드백이 한국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에서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분열상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관례처럼 야당에 다가가기보다, 선거의 패배자를 검찰이 기소하게 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국가의 양극화로 정치인에 대한 폭력도 증가했다. 이재명 대표는 부산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흉기를 휘두른 괴한에게 중상을 입었는데 이는 살인미수로 추정된다."
▲프랑스의 국제뉴스 전문지 <꾸리에 앵테르나시오날>
꾸리에 앵테르나시오날
우리가 외신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우리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우리가 가지지 못했던 시각에서 사물을 보기 위함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프랑스의 언론 <꾸리에 앵테르나시오날>(Courrier international)이다. 1990년 11월 8일 첫 발간을 시작한 이 시사 주간지는 전 세계 900여 언론의 기사를 발췌 번역해 꾸려지는, 말 그대로 외신 보도 주간지라고 할 수 있다. 언론학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사례에 해당하는 이 언론은 현재 일간지 <르몽드>를 보유한 르몽드 그룹에 속해 있다.
외신들이 전하는 자국 관련 보도가 다수를 이루지만 중요한 국제 이슈를 외신들의 시각으로 전하기도 한다. 자국 언론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국제뉴스가 중요해지기 시작한 1990년대의 흐름에 발맞춰 프랑스를 보는, 그리고 세계를 보는 전 세계의 시각을 전하기 위한 기획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꾸리에 앵테르나시오날>이 창간될 당시 창립 멤버들은 다음과 같은 비전을 제시했다. "전 세계의 언론을 읽음으로써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기 이전의 여러 동향들을 미리 관측할 수 있다."
150여 년 전 조선은 국제 동향에 어두워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수모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국제동향에 민감해야 할 우리 아닐까? 외신은 다름 아닌 그런 활용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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