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4 21:13최종 업데이트 23.04.25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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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쏟아지는 경제 이슈 보도들을 진보경제학자가 날카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제시합니다.[편집자말]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화면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연설 장면이 떠 있는 모습. ⓒ EPA=연합뉴스

 
세계 경제가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경제에서는 은행이 파산하는 등 금융위기의 가능성마저 언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부동산 개발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이 위험하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 위기나 한국의 부동산 가격 하락과 그에 따른 금융기관의 어려움은 모두 공통의 원인을 갖고 있다. 바로 금리 상승이다. 

이 칼럼에서는 경제(금융)위기를 무릅쓰면서까지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이 나온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려고 한다. 미리 경고하지만,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경제와 경제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복잡하게 느껴질 것이다. 경제와 경제학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들어온 '통념'과는 다른 이야기이니, 반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금리를 인상하기로 한 결정이 옳았는지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절차라 믿는다. 사안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없다. 통념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작금의 금리 상승은 정책적 결정의 결과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하게 올리자, 일반 시민이 경험하는 시장 금리도 급하게 올랐다. 저금리 환경에 최적화돼 있던 모든 것이 고금리로 전환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2.5%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던 사람은 이제 두 배 이상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대출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금융기관들도 내용은 다르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이것이 작금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유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기로 한 배경에는 물가 급등이 있다. 지난 40년 동안 세계의 물가는 하향 안정화됐다. 2021년에 들어서자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해, 40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급등하는 물가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금리 인상이었다.

금리 인상이 물가 급등의 유일한 대응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과 세금을 활용하는 재정정책이나, 행정적 규제 등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잊힌 사실이지만, 이는 비교적 최근의 정책 기조이다. 지배적인 경제 이론(이데올로기)에 거대한 변화(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지배)가 있었던 탓이다.
     
중앙은행의 독박 물가관리
     
이 새로운 경제 사조는 두 가지 믿음에 기초한다. 하나는, 물가의 변화는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는 관념이다. 두 번째는 실업률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관념이다.

첫 번째 관념에 따르면, 물가가 상승했다는 건 '반드시' 통화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생산과 공급의 갑작스러운 단절, 원유와 곡물 등에 대한 금융자본의 투기 등은 물가상승의 원인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통화량이 변화할 때만 물가가 변하는 것이라면, 물가를 관리할 책임은 오로지 중앙은행에 주어진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관리하는 기구라 믿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는 방식도 변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중앙은행들은 자신이 발생하는 돈(본원통화)을 통제하고자 했다. 이론적으로 이는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 본원통화의 양에 비례한다는 믿음을 반영한다.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량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믿음이 사실이라면, 통화공급이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외생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본원통화를 통제해서 시중의 통화량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게 점점 명확해졌다. 양자 사이의 양적 관계가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준금리 조절이 새로운 정책 대안으로 채택됐다.
 

미 연방 조폐인쇄국에서 미국 1달러 지폐를 검사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본원통화와 시중 통화량 사이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한 점은 큰 발전이었다. 하지만 시중 통화량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통화량과 별 상관이 없었던 이유를 더 심각하게 생각해 봤어야 했다. 이는 시중 통화량이 (중앙은행의 정책이 아니라) 경제적 상태를 반영해 변화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시중 통화량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경제 주체들이 필요에 따라 정해진다는 말이다.

이를 통화정책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물가의 변화가 화폐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틀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령 경기가 좋아지면 활발해진 경제활동을 뒷받침할 통화량도 증가해야 한다. 거꾸로, 경제는 침체해 있는데 시중 통화량만 홀로 증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통화량만 홀로 증가해 물가를 높인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을 잃는다. 다른 말로, 물가상승이 화폐적 현상이란 주장이 현실과 맞지 않는 말일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20년부터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특히나) 급등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부동산 가격의 비상식적 급등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설명은 '재난지원금 지급과 양적완화 정책으로 유동성(통화량)이 증가해서'이다. 재난지원금을 대량으로 지급하고 양적완화 정책을 실행한 서구 국가에 대해서라면 이는 부분적으로라도 설득력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전혀 맞지 않는 설명이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우리나라 유동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전폭적으로 지급하지도, 양적완화 정책을 실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통화량(유동성)이 증가했을까? 부동산 매입을 위한 대출(유동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즉, 대출이 원인이고 유동성 증가가 결과였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 부동산을 투기적으로 사재기하기 위해 대출이 늘어나자, 유동성과 부동산 가격(물가)이 동시에 올랐던 것이다. 유동성 증가가 원인이고 집값 상승이 결과라는 주장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빚을 지게 해서 집값이 상승했다는 주장과 같다.

이 사례가 전달하는 교훈은, 통화 당국이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통화량만 억지로 늘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공급 관리를 통해 시중의 통화량을 통제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실물 경제와 무관한 유동성 증가란 없으니, '물가 변화는 화폐적 현상'이라는 물가 이론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통화정책 수단을 본원통화에서 기준금리로 변경하면서도, 이 교훈과 통찰은 수용하지 않았다. 통화정책 수단 변경의 이유에 관해 더 깊이 성찰했더라면, 물가 관리를 중앙은행에만 맡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예컨대 이 관념만 아니라면, 물가상승의 원인을 직접 통제하는 행정적 규제나 재정정책의 가능성을 배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울 한 부동산의 모습. ⓒ 연합뉴스

 
기준금리 인상은 물가 관리에 효과적일까

물가 관리는 중앙은행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에 더해, 기준금리에만 배타적으로 의존하려는 경향이 물가 관리에 새로 도입된 두 번째 경제 관념이다.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수단으로 본원통화량과 기준금리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는 점부터 시작하자. 기준금리란 은행들 사이에 본원통화를 서로 빌려주고 빌려올 때 적용하는 초단기 금리를 말한다. 본원통화의 과부족에 따라 이 금리가 정해진다. 1980년대 이전처럼 정부가 본원통화량을 통제하고자 한다면, 기준금리의 자유로운 변화를 용인해야 한다. 반대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래온 것처럼 기준금리를 일정 수준으로 묶어두고자 한다면, 본원통화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둘 모두를 통제할 수는 없다. 만약, 기준금리를 5%로 고정하고 싶은데 시장에 본원통화가 부족하다면 중앙은행은 그 부족분을 메워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족한 본원통화로 인해 기준금리가 상승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 중앙은행은 본원통화를 시장으로부터 거둬들여야 한다. 본원통화량을 조절하는 중앙은행의 이런 활동을 '공개시장운용'이라 부른다.

정책적으로 기준금리를 변경하면 기타 시장에서 사용하는 금리들도 따라서 변한다. 3개월 이하 금리는 거의 기준금리와 유사하다. 장기 금리도 '추세적으로' 기준금리를 따라 변한다. 단, 만기가 길수록 불확실성이 증가하므로, 이를 반영해 기준금리와 장기금리 사이에 차이 폭이 상황에 따라 변동한다.

설명 ① : 금리 인상 → 통화량 감소 → 물가 하락

그렇다면, 기준금리를 높이면 어떻게 물가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일까? 흔히 두 가지 설명이 제시된다. 첫 번째는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통화량(유동성)이 감소한다는 설명이다. 물가상승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는 위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설명이다. 각종 경제 매체도 이를 습관적으로 언급해 왔던지라, 대중에 가장 친숙한 설명이다. 그런데, 금리가 상승하면 왜 유동성이 감소한다는 것인지에 관한 설명은 화폐적 현상으로서의 물가상승 주장과 다르다.

이에 따르면,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 감소해 유동성이 감소한다. 이는 물가상승을 통화량 변화로 설명하는 이론이 주장하는 '외생적 통화공급' 논리와 정반대의 논리다.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감소란 대출 수요가 유동성을 결정한다는 말이기도 하니, 정책적 결정 등 외생적으로 결정되는 유동성(통화량) 개념을 부정하는 논리이다.

여기서 진위를 따지려는 의도가 아니다.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측은 앞의 '외생적 통화공급' 주장에 친화적이다. 가령 이들은 습관적으로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금리가 통화량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할 때는 그 반대를 말한다.

이들은 이런 자기모순을 인지하고나 있을까? 기준금리가 통화량을 줄여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비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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