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국민연금 개혁방안 공청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재정계산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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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쟁의 진의를 엿볼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에 관한 논쟁은 가입자들의 소득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 전제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을 민간의 보험처럼 다룬다. 보장성강화론은 이 전제가 부당하다는 비판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현세대의 보험료율 인상을 반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여기서 사회복지와 공적연금에 관한 오래된 사회철학이나 당위성을 논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이 논쟁에서 간과하고 있는 쟁점을 드러내어 토론 테이블에 올리고 싶을 뿐이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다. 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 노인인구 비중은 40%를 넘어 최대 50% 가까이 증가한다. 노인이 된다는 말은 근로 능력이 현저히 쇠퇴한다는 의미이다. 경제적 이유로 노인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아동노동만큼이나 인간의 존엄한 삶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누구나 늙고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후소득보장 제도는 모두의 문제이다. 노인이 절반 가까운 인구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란 현실, 그리고 누구나 그 일원이 된다는 사실. 이 두 가지만 인정한다면, 노후소득보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점도 인정할 수 있다.
현재의 추세가 지속한다면 노후소득보장 제도는 치안이나 국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상이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다수이고,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정해진 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할 때,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은 치안이나 국방을 공공이 아니라 각자가 해결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노후소득보장이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보면, 국민연금 지급액이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재정계산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기금이 소진된다는 2055년 경 국민연금 지급액은 GDP의 7%에 지나지 않는다. 이 비중은 최고 9%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보험료 수입을 제외한 적자액만 보면, 2055년 경 GDP의 4.6%, 2080년 경 최대 7%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한다고 할 때,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노인인구에게 국민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GDP의 최대 7%를 '사회 전체가 분담'하면 세대 간 형평성을 어기는 일일까?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현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에 책임을 분담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가입자의 소득만 나눌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소득을 나눌 것인가. 이것이 국민연금의 윤리 논쟁을 제대로 보는 프레임이다.
참고로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각종 세금과 모든 사회보험료를 합한 국민부담율은 28%였다. 이것이 높은 나라로는 덴마크(46.5%), 프랑스(45.4%), 이탈리아(42.9%), 독일(38.3%) 등이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약 33.5%였다. 다른 나라를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정부가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40% 이상 거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민연금 기금만 충분히 쌓아놓으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주장이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할 만한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재정안정론자들처럼 국민연금을 돈(재정)으로만 보면, 현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만 더 내면 된다. 현세대 모두가 동의하여 그렇게 한다면 미래 세대에 불리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첫째,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경제는 저생산성의 경제가 될 것이다. 현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해야 할 돈이 국민연금 기금으로 쌓일 뿐이다. 현세대 소득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면 그만큼 소비 여력이 감소하고 유효수요는 감소할 테니, 기업은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래 세대는 저생산성의 경제를 물려받을 것이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비윤리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둘째, 미래 생산물 중 압도적으로 큰 부분을 노인인구가 소비하게 된다. 국민연금 기금을 쌓느라 생산성을 희생하였고 생산인구조차 감소할 것이므로, 미래의 생산량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노인인구 비중은 증가하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충분히 납부해 온 미래 노인은 국민연금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그 결과, 미래 세대는 스스로 생산한 생산물 중 더 적게 소비할 것이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비윤리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요컨대 노후소득보장이 사회 전체의 문제란 인식 없이 국민연금 재정에만 집착하면, 미래 젊은 세대와 노인 모두가 불행해진다. 재정안정론이 현세대의 책임을 강조하며 '윤리적 수사'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세대 간 연대를 파괴하는 주장일 뿐이다.
내가 이해하는 보장성강화론의 주장은 이렇다. 현재의 노후소득보장 체계는 존엄한 노후 생활에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연금은 노후소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추가로 필요한 연금 재원은 사회 전체가 분담해야 한다. 구체적 방안은 아무도 모른다.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장성강화론자는 '사회공동체파'라 불러야 적당하다.
반면 내가 이해하는 재정안정화론의 주장은 이렇다.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책임은 (사회 전체가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있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면, 현세대 가입자들이 더 부담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 사회나 정부의 책임은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노후소득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에 기초한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각자도생파'라 불려야 마땅하다.
재정안정론자들이 국고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사회 전체의 책임과 정부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국고 지원을 연금 취약계층만으로 한정하자고 주장하여 그 의미를 퇴색시킨다. 여기서 또 한 번 케케묵은 '선별복지'의 논리가 등장한다. 선별복지 논리의 핵심은 '재정이 제한되어 있으니, 취약층에 몰아줘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선별복지와 보편복지의 장단점을 가리기 전에, 재정적 제약을 따져보는 일이 먼저이다. 복지제도는 사회 전체의 생산물을 재분배하는 제도이다. 없는 것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소득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나누는 제도란 뜻이다. 따라서 정의상 재정은 제한될 수 없다. 다만, 더 크고 보편적인 복지제도를 운영하려면 소득이 많은 측이 더 부담해야 할 뿐이다. 그러니 재정이 제한된 것이 아니라, 기여보다 더 받는 사람과 그 반대인 사람 사이의 경쟁이 존재한다. 재정 제약은 필연적 자연법칙이 아니라 임의로 정한 제도의 문제이고, 따라서 사회적 논의와 타협의 대상일 뿐이다.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할 노인인구를 방치하면 '공멸'한다. 즉 부자와 대기업도 노후소득보장에 참여하지 않으면 같이 망한다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가 지속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자들만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홀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탈퇴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 9일 오전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 한 시민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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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논쟁이 지속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만 쌓였다.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거나, '미래 세대는 월급의 30%를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등 자극적으로 보도한 언론 탓도 크다.
국민연금을 불신하여 해지하고 떠나고 싶다는 국민에게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구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그것이 본인을 위한 최선을 선택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처럼 국민연금 재원을 오로지 소수의 미래 가입자에만 떠넘기고 정부는 나 몰라라 뒷짐 지고 있다면, 약속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노후 준비를 포기할 수도 없다. 공적연금 대신 민간 연금에 가입하는 길이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는 돈 대비 받는 돈(수익비)으로 치면 국민연금에 필적할 민간 보험은 단연코 없다. 강남 부유층을 중심으로 '국민연금테크'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유리한 제도이다.
유일한 문제는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지급될 것이란 확약만 얻으면 된다. 이는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개인이 연금 재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정치와 정치인이 있는 것이다. 노후에 약속한 국민연금만 받아내면 된다. 즉 국민연금 개악에 정치적으로 저항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노후소득보장, 더 넓게는 노인복지 문제에 관한 사회 전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를 정치에 요구해야 한다. 누가 얼마나 더 부담하고 얼마나 더 큰 혜택을 누릴 것인지는 차차 정해질 일이지만, 사회 전체의 책임을 강화하면 평범한 국민 다수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분명하다. 구차하게 재정안정에 목메지 말고, 과감하게 재정을 확대하는 상상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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