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4 15:34최종 업데이트 23.03.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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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이 13일 오전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23.3.13 ⓒ 연합뉴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전후와 권위주의 통치 시기 일어난 다양한 인권침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등에 대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설립된 독립적인 조사기관이자 국가기관이다. 그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상하게 바뀌고 있다. 위원장의 입에서 극우적 발언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

편향된 역사관으로 근현대사를 왜곡한 전력들로 인해 물의를 빚고 있는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이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그런 인식을 드러냈다. 가능성이란 표현을 써가며 5·18 북한 개입설에 또다시 힘을 실어줬다.

아무 증거도 없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형석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북한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본인들의 의도대로 개입하고자 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라는 질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그렇다"라고 답하면서 "북한군이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고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까지 제가 배제할 수 없다는 말씀"이라고 발언했다. 잘못된 발언을 철회하기는커녕, 과거 발언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종전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런 경우에 진실화해위원장이 '개입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아니고 '개입했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진실화해위원장이라는 직분을 봐도 그렇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절실한 상황에서 진실화해위원장이 아무 증거도 없이 가해자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진실화해위원장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1980년 5월 18일에 궐기한 광주 시민들은 21일부터 27일까지 도청을 점거했다. 이 엿새간 광주는 전두환 신군부가 아닌 시민들의 수중에 놓여 있었다.

만약 이것이 북한의 지령이나 조종에 의한 결과였다면, 당시 주석인 김일성의 역량과 지도력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북한 정권에 의해 홍보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민중의 자발적 봉기를 유도할 만큼의 역량을 가진 정치집단은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5·18에 대한 김광동 위원장의 왜곡된 역사 인식은 '2020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가을 정책 심포지엄' 때도 노출됐다. 지금은 시장경제학회로 개칭된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가 2020년 10월 16일 주최한 이 심포지엄에서 김광동 당시 나라정책연구원장은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국가의 파시즘적 통제'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해 6월 1일 양향자·홍익표·한정애·윤호중·김남국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31명이 발의한 역사왜곡금지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제강점기, 제주 4·3, 5·18, 4·16 세월호 등에 대한 왜곡행위를 처벌하자는 이 법안을 두고 그는 "국민의 사상 감별과 사상 통제가 목표"인 법안이라고 폄하했다. 또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법안의 형평성을 비판하면서 북한 개입설에 은근히 힘을 실어줬다.
 
예를 들면 광주 사건에서 2천 명이 학살되었다는 허위 주장은 용납되고, 광주 사건에 북한이 개입되었다는 가능성이 있는 의혹에 대해서는 역사왜곡이거나 관련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의혹'이 되려면 최소한의 근거가 필요하다. 아무 근거도 없다면 가능성을 운운할 수도, 의혹을 운운할 수도 없다. 신뢰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는 가능성 있는 의혹을 운운하며 북한 개입설을 넌지시 지지했다.

더 황당한 내용도 있다. 5·18에 관한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발언한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누차에 걸쳐 5·18 광주민주화 시기 헬리콥터로 기관총을 사격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대통령이 명백히 허위사실을 공표한 행위이다. 헬리콥터로 기관총을 사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문재인 대통령부터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보다 더한 허위사실 유포는 없기 때문이다.
 
'5·18 때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5·18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말과 달리 고도의 신뢰를 받고 있다. 위 심포지엄 다음 달인 11월 30일에는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한 전두환이 광주지방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아무 증거도 없이 북한 개입 가능성을 지지하는 김광동 원장은 이 심포지엄에서 헬기 사격에 대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헬리콥터로 기관총을 사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문재인 대통령부터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빙성이 없는 진술에 대해서는 증거를 요구하지 않고, 신빙성이 높은 진술에 대해서는 증거를 요구한 것이다. 

진실화해위원장에게 요구되는 덕목

5·18에 관한 그의 어처구니없는 인식은 발표문의 또 다른 부분에서도 튀어나온다. 5·18을 민주화운동 정도로 규정하지 않고 무장봉기나 계급투쟁 등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북한 개입설을 문제 삼으려면 그런 인식도 문제 삼아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역사왜곡금지법안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왜곡금지법은 동일 사건이라 하더라도 다른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과 왜곡은 처벌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5·18에 대한 축소는 처벌 대상이지만, 특정 내용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왜곡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면 광주 5·18 사건을 민주주의 확립 과정에서 펼쳐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과 다르게, 5·18을 무장봉기라고 하거나 부르주아에 대한 계급투쟁과 혁명투쟁 혹은 미국제국주의에 대한 반제투쟁 등으로 보는 입장도 많이 있지만, 그런 차원의 왜곡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제주 4·3 사건을 통일운동이거나 무장봉기로 보는 것도 문제시되지 않는다.
 
'5·18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적 평판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피해자들의 아픔을 가중하고 사회통합도 저해한다.

반면, 5·18을 무장봉기·계급투쟁·혁명투쟁·반제투쟁 등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국가가 인정한 피해자 지위에 문제가 생길 여지도 거의 없다. 또 이런 해석이 사회통합을 방해할 만큼, 그런 주장자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하지도 않다.

김광동 원장이 비판한 역사왜곡금지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도 그런 취지에서 법안을 제출했다. 국회에 제출한 제안이유서에서 그들은 역사왜곡행위를 겨냥해 "이는 단순한 역사 해석이나 평가, 학술 활동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왜곡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유공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전쟁범죄와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5·18 등에 대한 역사왜곡을 금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상처를 입고 추가 피해를 당하기 때문에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김광동 원장은 사상 감별과 사상 통제를 위해 발의됐다고 주장했지만, 실제의 취지는 피해자 보호에 있었다.

이런 데서 드러나는 것은 김광동 위원장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연민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연민을 품고 있다면, 역사왜곡금지법의 기본 취지가 약자 보호에 있다는 점에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극우적 인식을 가진 그가 약자의 편이어야 할 진실화해위원장직에 과연 어울리는지 거듭거듭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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