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서울역버스종합환승센터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월 공공서비스 물가는 1년 전보다 2.2% 올랐다. 2021년 10월 6.1% 오른 뒤 2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물가 상승 기여도(전년동월비)를 보면 시내 버스료가 가장 컸고 택시요금, 외래진료비, 도시철도료, 치과 진료비, 입원진료비, 하수도료 등 순이었다.
연합뉴스
사과 하나에 1만 원을 넘나드는 고물가 시대다. 채소와 과일값이 물가를 부추기고 있다는 통계도 있고 이상기온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당장의 가격 하락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고물가에 국민들의 신음이 깊어지는 것을 모두 날씨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부터 전기요금, 교통요금,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수차례에 걸쳐 대폭 인상했다.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의 적자폭을 줄여야 하고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인상되어 어쩔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이 물가 인상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한전의 적자만 보더라도 산업용과 주택용 요금 체계의 형평에 맞지 않고, 한전에 전기를 파는 민간 발전사의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왔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구조를 손볼 생각도 없이 지난 2년 동안 40%가량 주택용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농사용 전기요금도 2023년 5월 기준 55%가 인상됐다. 가스요금과 교통요금도 인상을 거듭했다. 전기와 가스를 이용하는 생산에서 원가가 오르고 물류비가 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계획 백지화를 공약했던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 공약이 곧이곧대로 지켜지리라 믿지는 않았지만 적자의 원인과 해결의 책임 모두를 너무 쉽게 국민들에게 떠넘긴다는 생각이 든다.
21일 한전은 올해 2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국제가스 가격 인하 등으로 내릴 수 있는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적자를 이유를 산업통상자원부가 현행 수준 유지를 결정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총선 이후인 3분기부터 요금 인상이 본격화되리란 주장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거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국민 부담과 환율, 국제 에너지 가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단계별로 요금을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는 안덕근 산업통산자원부 장관의 과거 발언이 그 근거다.
서울시는 7월 1일부터 지하철 요금 150원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지자체마다 수도요금, 시내버스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대파 한 단 가격 875원이 합리적이라고 하더라고, 사과와 배 담당 공무원을 둔다고 하더라도, 공공요금이 들썩이는 현실에서 물가 안정이 말처럼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역대 정부에서 공공요금 인상을 주저했던 이유를 윤석열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고심했는지 의문이다.
사과 하나 1만 원이 고물가를 상징하는 표현처럼 됐다. 9860원. 법에서 정한 2024년 시간당 최저임금이다. 놀라야 할 건 사과 하나에 1만 원이나 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한 시간을 일해도 사과 하나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끔찍한 현실이다.
스무 번 넘는 민생토론회에서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국가 존망이 달린 저출산 위기에 아이 낳으면 얼마 준다는 약속은 쏟아내면서도 청년들이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임금 인상을 하자는 호소도 없다. 그래서 과일은 부자들이나 사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 됐고, 최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고물가는 발가벗고 내쫓기는 엄동설한의 추위와 같다.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부 성적표
고물가, 저임금, 내수 침체, 수출 부진, 가계도 내수도 기업도 어렵다. 대체 윤석열 정부는 경제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와닿지 않는다. 날이 새면 물가는 오르고, 총선이 끝나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먹구름처럼 떠돈다.
대파 한 단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사과 하나 1만 원이라고 해도 일시적이라면, 작황 부진 때문이라는 정부 말에 신뢰가 간다면, 참고 견디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대파 한 단 875원이 합리적이라는 세상 물정 모르는 대통령의 민생 살리기만 쳐다보고 있기에는 불안하다. 저임금, 고물가,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끊어낼 대책도 수출을 견인할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총선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승리를 장담하던 국민의힘에 빨간불이 켜졌다. 직접적인 요인은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도피 의혹과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기자 회칼 테러' 언급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물가와 체감 경기도 그에 못잖은 여당의 위험 요인이다. 대통령이 뒤늦게 물가를 점검한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지만, 묵은 숙제하듯 할 수 없는 게 민생 살리기다.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박수도 받기 힘들다. 대파 발언은 보여주기식 민생 행보에 드러난 대통령의 민망한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