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역의 발진 ⓒ 위키미디어 공용
홍역이 다시 유행이다. 한국은 지난 2006년 홍역 퇴치 선언 후, 간혹 해외에서 유입되어 지역 감염이 발생하는 수준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으로 발생건수가 높아지면서 해외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 감염 시 신고·격리 등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유럽-북미에서 다시 시작된 홍역
지난 몇 년간 홍역 백신 접종률이 세계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면서 홍역 유행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지는 동안 개발도상국에서는 홍역 백신 접종 캠페인이 지연됐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행하던 백신 불신 바람이 더 거세지면서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홍역 감염자 수는 2022년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2021년 대비 감염자 18%, 사망자 43%가 증가했다. 2023년 홍역 감염자 수는 2022년 대비 79% 증가했다.
홍역은 특히 영유아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세계보건기구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12만 8천여 명의 홍역 사망자 중 대부분이 5세 미만의 영아들이었다. 감염자수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 사망자수도 점차 늘 것으로 예측된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위험에 놓여있다는 이야기다.
홍역은 감염성은 물론 중증도도 높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감염에 노출될 경우, 10명 당 9명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이 감염되는 경우 5명당 1명꼴로 입원으로 이어지고, 어린이들의 경우 20명당 1명꼴로 폐렴으로 악화되다가 1000명당 1-3명꼴로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통계에 나타나있다.
▲ 1980년-2021년 사이 세계 홍역 감염자수 1980년-2021년 사이 매해 세계 홍역 감염자수가 나타나있는 그래프. 지역별 수치가 각 색으로 따로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회색으로 표시된 유럽의 수치는 줄어들다가 2018년과 2020년 눈에 띄게 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줄어들던 것이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소식이다. ⓒ Statistica
올해 들어 여러 매체들이 세계 홍역 유행을 다뤘는데, 많은 기사가 특히 유럽과 북미등 선진국에서의 홍역 유행 증가에 집중했다. 1월 31일 <네이처> 기사 '홍역 유행이 주의보를 울린다: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Measles outbreaks cause alarm: what the data say)'은 2017년 홍역을 퇴치했던 영국에 다시 홍역이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월 사이 감염자수가 300명 이상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전문가들은 5세 이전에 MMR(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을 2회 접종하도록 권고하는데, 영국에서 2회를 모두 접종한 아이들은 전체의 85% 정도에 그쳤다. 홍역 집단면역에 필요한 수치는 95%다. 한국의 경우, 질병관리청 2022 통계를 보면, 2세, 3세, 6세 아이들의 MMR 2회 접종을 완료한 비율은 각각 97.3%, 97.5%, 95.6% 수준이다. 우리나라에 홍역 발생 건이 낮게 유지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감염자가 계속 증가하면, 해외유입으로 들어오는 감염자가 증가하게 되고, 홍역 유행이 생길 때마다 백신 접종자들도 감염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23년 1월과 10월 사이 유럽에서는 3만 건 이상의 홍역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는 2022년 대비 30배 증가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일으킨다. 이중 2만 1천 건이 입원으로, 5건이 사망으로 이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현재 유럽에서의 홍역 유행이 가장 심한 수준이다. 올해 1월과 3월 초 사이, 2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249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2023년 한 해 오스트리아 홍역 감염자 수가 189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준의 증가다. 특히, 그중 50명 이상이 입원을 했고 세 명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일단 감염이 되면 별다른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의료 기술이 좋아진 지금도, 백신으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영유아 사망률 높은 홍역, 감염 시 치료법 없어
특히, 홍역 백신은 다른 백신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접종률이 낮아져서 대유행으로 회귀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백신 부작용과 관련한 것으로는 1982년과 1996년 사이 핀란드에서 MMR 1회 혹은 2회 접종 한 180만여 명의 사람들을 추적한 2000년의 조사 보고가 있다. 이에 따르면 총 173건의 중증 반응이 있었다. 이중 77건이 신경계 관련, 73건이 알레르기 반응 관련, 22건이 기타, 1건이 사망이었다.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은 물론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공적으로 면역체계를 자극시켜 방어기작을 갖추게 하는 과정에서 낮은 확률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 수치는 지난해 3만여 건의 유럽 감염자 중 50여 명이 입원, 5명이 사망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2017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예측치에 따르면 지금도 백신 접종이 없으면 세계적으로 매년 백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길 수 있다.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추산한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연도별로 나타나있다. 점선은 백신 접종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직선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경우로, 매년 세계적으로 백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길 수 있다는 추산이다.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1963년 백신이 도입되기 전까지 홍역은 인류를 꾸준히 괴롭혀 온 주요 질병 중 하나였다. 세계적으로 2-3년마다 홍역 대유행이 있었고 연간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역사적으로도 홍역에 대한 여러 기록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시기에 안토니우스 역병과 키프로스 역병으로 기록된 큰 전염병의 유행이나 조선 시대에 기록된 여러 번의 전염병 중 다수가 홍역이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당시에는 감염원을 특정하지 못한 채 증상으로만 진단을 했기 때문에 천연두나 풍진, 성홍열과 같이 홍역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전염병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개발되어 보급된 홍역 백신은 곧 전 세계 홍역 발생 수와 사망률을 크게 낮추었다. 세계보건기구 통계를 보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말 사이 세계 영아의 홍역 백신 1차 접종률이 50%대에서 80%대로 오르면서 연간 홍역 발생건수가 2백만 가까이에서 1백만 미만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후 최근까지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홍역은 왜 안 사라지나?
홍역은 소들의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우역(Rinderpest)의 먼 조상에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역은 이름 그대로 소나 물소들 사이에 엄청난 전파력과 치사율로 악명을 떨쳤던 질병인데, 폐사율이 80-100%에 달했다. 유행을 하면 가축을 대량 도살하는 것으로 통제해 오다가 1950년대 백신이 개발되고 1990년대 세계 우역 근절을 위한 대대적인 우역백신 접종 캠페인을 하면서 크게 줄어들었다. 2001년 마지막 유행 후 2011년 세계동물보건기구는 우역 근절을 선포했다.
우역은 사람에게는 전파되지 않는 바이러스였다. 코로나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 에볼라 바이러스에서 보듯 동물 사이에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되는 일은 가끔 일어난다. 홍역이 세계 여러 인류 집단에 퍼질 정도로 전파력을 갖기 시작한 건 대략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근거리에 모여 살고 교류가 빈번한 '도시'가 출현한 뒤에 가능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3-10세기 사이 여러 역사 기록에 세계적으로 홍역과 우역의 대유행이 여러 차례 반복된 것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이 시기 우역과 홍역이 사람과 가축 모두에게 공통 전염이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했다.
오랜 역사 인류와 함께해 온 홍역의 유행은 언제부터 시작했고 어디에서 왔을까?
이 같은 의문에 일부 답을 줄 수 있는 유전학적 연구들이 이루어졌는데, 가장 최근의 것은 2020년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논문 '홍역 바이러스와 우역 바이러스는 대도시가 생겨나던 무렵 분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Measles virus and rinderpest virus divergence dated to the rise of large cities)'이다.
▲ 2020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의 결과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사람이 감염되는 홍역(MeV)과 우역(RPV)의 분기점의 계산 결과 값이 대략 기원전 6세기 즈음에 분포되어 있다. ⓒ Dux et al. 2020
연구진은 3백 년 역사의 독일 최대 규모 '샤리테 병원 (Charité Hospital)'에 수집되어 있는 사람의 폐 중에서 홍역 백신 개발 이전인 1912년에 홍역으로 인해 폐렴으로 발전했던 환자의 폐를 특정해 검체를 채취하고 홍역 바이러스 게놈을 시퀀싱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이미 연구되어 있던 백신 이후의 홍역 바이러스 게놈과 우역 바이러스 게놈과 함께 비교분석했다.
바이러스 게놈을 비교 분석해 이들이 어느 시점에 분기했는지를 계산하려면, 돌연변이가 같은 유전좌위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나, 음성선택이 되어 돌연변이가 관찰되지 않는 유전좌위를 고려하는 등 복잡한 모델링이 필요하다. 연구진이 분석에 사용한 모델링에 따른 결과는 우역과 홍역 바이러스의 분기가 빠르게는 대략 기원전 6세기경, 그러니까 큰 도시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류가 밀집해 살기 시작하면서 감염병이 증가했다는 것을 새삼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하고, 홍역과 우역 바이러스가 분기 이후 각자 종특이적으로 감염을 하면서 진화해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만약, 이 바이러스들이 서로 교차감염을 하며 진화해 왔다면 이들의 분기점이 훨씬 최근으로 나타났을 것이니 말이다.
가축을 대량으로 키워오면서 대유행이 반복되던 우역은 효과적인 백신 캠페인으로 절멸했는데, 홍역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퇴치선언을 했던 지역에도 새로운 유행을 시작하고 있고, 매년 십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낼 뿐 아니라, 이것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보다. 빈곤국은 자원 부족으로, 일부 선진국에서는 백신에 대한 거부감으로 말이다. 우리가 홍역과의 오랜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