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9 09:38최종 업데이트 24.02.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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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부유한 환경에서 가장 불안한 미래를 전망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가? 그 뿌리는 바로 고비용을 요구하는 삶의 장소인 주거이다. 고비용 주거는 불평등의 산실이다. 대도시일수록 거주 비용은 증가하고, 불평등의 격차는 커진다. 특히 대한민국 서울의 거주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불안 사회 속에서 서민과 청년은 미래 희망을 찾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주거, 고용, 양육과 높은 경쟁압력을 해소하지 못하고 도시민에게 희망보다 절망과 좌절만 안겨주며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고비용과 불평등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고 선순환 구조를 세울 수 있을까?


필자는 '저비용 사회'를 제안한다. 사교육비를 낮추고 모두가 평생교육을 누리는 교육 도시, 생명권이 보장되고 의료 차별을 받지 않는 건강 도시, 부담가능한 주거가 공급되는 안심 주거 도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대중교통 도시가 그 구체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로 향하는 길목마다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 이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넘어 국민의 수용성을 높이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한국의 대도시는 상당히 큰 비용을 치러야만 거주 또는 정주를 허락하는 진입장벽이 높은 성(城)이다. 거액의 요금을 내야 입장할 수 있는 디즈니월드 같은 곳이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려면 더욱 큰 비용이 든다. 월세를 살든 전세를 살든 자기 집을 소유하든, 큰 금액의 주거비를 요구한다.

또 의료비는 어떠한가? 전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국가의료보장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암 보험, 실손 보험 등 개인들은 보장성 보험 한두 개 정도는 대부분 가입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서 병원에 가도 돈이 없으면 치료를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병들어 약해지면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우리 사회는 노동 소득을 상실한 시민에게 잔혹한 불평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경제적, 문화적 수준에 맞게 산다. 이를 계층 혹은 계급이라고 한다. 이 질서는 자본주의 발달로 고착되었으며, 자신이 유지하는 경제·문화적 계층(계급)을 세습하기 위해 막대한 소득을 자녀 교육비에 쏟아붓는다.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조부모의 경제력이 잘 조화된다면 계급의 세습은 순조로울 것이다.

경제력도, 정보력도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래서 출발부터 불평등하다. 이 불평등한 출발은 더욱 심화한다. 돈 먹는 하마인 사교육 시스템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가 아이들의 학력과 학벌을 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동 수단인 모빌리티와 에너지 영역은 과연 평등한가?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사람'은 탄소배출을 적게 한다. 겨울에는 도시가스 요금을 아껴야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면서 전기 요금을 아끼며 산다. 출퇴근은 BMW(Bus 버스, Metro 지하철, Walking 도보)를 주로 이용한다.

반면 너도나도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탄소중립을 외칠 때, 부유한 사람들은 수십 킬로그램 정도의 몸무게를 이동시키기 위해 연비도 안 좋은 고급 차를 몰고 다니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서민들은 난방비와 냉방비를 아끼기 위해 고군분투를 할 때, 부유한 시민은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러한 고비용 도시는 과연 지속 가능할까? 살인적인 주거비, 경제·문화적 계급을 세습하는 교육비, 빈부격차가 극명해지는 의료비와 에너지 비용. 문제는 도시에 거주하려면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에너지비용 등의 비싼 요금을 치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비용 도시와 적정 주거를 위한 네 가지 조건

지금부터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보장해 주는 저비용 도시를 만들어 가기 위한 네 가지의 큰 줄기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사교육비를 낮추고 모두가 평생교육을 받는 도시가 저비용 도시이다. 사교육 위주의 현 교육 시스템은 고비용 도시의 주범이다. 초, 중, 고를 아무리 개혁하고 변화시켜도 '대학 서열화'가 해체되지 않는 한 사교육 혁파는 불가능하다. 고비용 교육비 문제의 핵심이 '대학 서열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서열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한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인해 수많은 직업이 과거의 유물이 되어 역사책에나 남을 것이다. 변호사, 교사, 판사, 회계사, 버스와 택시 기사 등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소멸 대상이 될 직업들이다. 이제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배운 얕은 지식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곧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기술혁명의 파도를 넘어서야 한다. 평생 배우는 도시를 그래서 만들어 가야 한다.

둘째, 안전할 권리가 보장되고 의료 차별을 받지 않는 안전 건강 도시가 저비용 도시이다. 병들고 아파도 생존을 보장하고 노동 소득이 상실되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도시, 안전을 철저히 관리하여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는 도시 말이다.

셋째, 탄소중립 도시와 대중교통 도시가 저비용 도시이다. 지구단위계획, 주거지정비계획 등 도시관리계획의 수립 단계부터 탄소 발생 총량제를 적용해야 건물 부문에서 에너지 전환을 만들 수 있고, 불평등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최소한 도심의 핵심 지역에서만이라도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을 높여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사대문 안, 영등포 일대, 삼성역 일대, 신촌과 홍대 일대 등 핵심 지역의 도로 다이어트를 통하여 자전거 도로를 확보함으로써 자전거의 수송 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넷째, 적정한 비용으로 살 수 있는 주택이 제공되는 안심 주거 도시가 저비용 도시이다. 사회주택 등의 저렴한 임대주택은 물론이거니와 협동조합주택, 공동체주택 등 소유 및 자산형 주택도 적극 공급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절대로 주택(부동산)은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도시 정책에서 주택 시장 개입은 꼭 필요한 정책이며, 그중에서도 사회주택, 협동조합주택, 공동체주택과 같이 시장 변동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주택 공급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은 평생 교육 도시, 안전 건강 도시, 탄소중립 및 대중교통 도시, 안심 주거 도시는 지구에 회복력을 주는 터전이며, 도시인들에게 불안함을 벗고 미래를 다시 그릴 수 있는 희망을 여는 길이다. 우리는 이러한 저비용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이나 물러섬 없이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저비용 기본사회'를 위한 주거 정치

교육, 안전과 건강, 탄소중립과 안심 주거, 이 네 가지는 저비용 도시의 기본조건이자 선진국 대한민국이 구축할 기본복지이며 자산불평등 완화의 토대이다. 한마디로 저비용 기본사회를 위한 최소조건이다. 저비용 도시를 위한 주거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주거정책은 TOP(Target Oriented Program) 정책이다. 즉 정책의 수혜층을 목표로 삼아 추진하는 정책이다. 예를 들면 사회주택은 무주택 1인 가구 대상이고, 행복주택은 신혼부부, 대학생 등이 대상이다. 주거 상향 사업은 반지하 등 불량 주거 거주자가 대상이며, 신도시 조성은 수도권 지역 중산화 가능 계층이 대상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주거 약자가 대상이고, 종부세 등 조세 완화는 강남을 중심으로 한 자산가 대상 정책이다.

이런 주거정책은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을 내재하고 있다. 아파트 한 채에 모든 것을 걸어 아파트값 폭락이 악몽인 부모 세대인 586세대와 아파트값 폭등이 악몽인 무주택 청년 자녀 세대인 MZ세대 간의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수도권 도시에 대한 비수도권 도시의 경쟁 심리와 위기의식은 경쟁적 신도시(신시가지) 개발을 추진하게 한다. 강남 등지의 자산가 주도로 종부세와 같은 조세 완화 압력이 커지고,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관련해 님비 현상 등 지역 내 계층 간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래서 주거정책은 공무원의 정책 영역을 넘어 집권 세력의 지지층을 결속시키기도, 붕괴시키기도 하는 주거 정치의 영역이다. 주거 약자인 MZ세대와 서민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주거 정치에 실망해 지지 연합에서 떨어져 나갔다. 노동 소득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자산 격차를 경험한 MZ세대와 서민들의 민심이 민주당을 떠나간 것이다. 이들은 민주당이 무능할뿐더러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례처럼 내로남불의 주거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문재인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당시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을 향해 6개월 내 다주택을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노영민 비서실장 역시도 서울 반포와 충북 청주에 각각 주택을 보유한 2주택자였다. 그러나 그는 서울 반포의 아파트가 아니라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지역구였던 청주시 소재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했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수도권 규제 지역 등의 값비싼 집을 처분하라고 지시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고가의 아파트를 그대로 보유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노영민 비서실장은 결국 반포의 아파트를 처분했다.

청년들은 자산의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가 2023년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청년들은 공공임대주택 확대(73.7%), 부동산 상속세 및 보유세 세율 인상(67.4%) 등 자산 불평등 해소 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주거 정치는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적정 비용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거의 마련이 가능한 기본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주거 정치가 짊어질 몫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저비용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의 장이 열리고, 기본사회의 주거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어 서민과 중산층에서 비전과 희망이 열리길 기원한다.

필자 소개 : 이주원은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학 박사과정 수료를 하고 도시와 주택문제를 화두로 살아온 도시재생과 주택정책 전문가입니다. 국토교통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 사)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과 탄탄주택협동조합 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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