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2 05:06최종 업데이트 24.02.22 09:12
  • 본문듣기
윤석열 정부 3년 차, 대한민국은 괜찮은가? 저출생, 경기침체 등 한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국내외적으로 높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24주년 기획으로 2024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펴보고 오늘의 위기를 진단하며 내일의 해법을 모색한다.[편집자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2023.2.9. ⓒ 연합뉴스

 
궁금합니다. 왜 한국의 보이스피싱범들은 범죄 대상에게 접근할 때 '검사'로 속이기를 좋아할까요?

지난해 말과 올해초에 걸쳐 보이스피싱 범죄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전반적으로는 2021년 이후 매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 사이 발생 건수는 17퍼센트 줄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기관사칭형' 범행 수법은 오히려 늘어, 27퍼센트나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적잖은 시민들이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범죄자의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기관사칭형' 가운데도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검사'나 '검찰수사관'을 자임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사회과학자로서 이 점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에도 보이스피싱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범인들이 '검사'로 접근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검사 사칭'이 지배적인 보이스피싱 범죄는 한국 특유의 사회현상이라는 것이지요.

한국인이 두려워할 만한 국가기관으로는 경찰과 국정원도 있고, (미국에서 사칭 대상으로 선두를 차지하는) 국세청도 있습니다. 물론 이 기관들도 범죄에 악용되고는 있지만, 유독 검사는 보이스피싱범들의 '직업선호도'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습니다.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그리고 이 점은 한국사회에 감춰진 어떤 사실을 말해 줄까요?

범죄자들은 검사로 접근할 때 피해자들이 가장 순순히 따른다는 사실을 범행을 통해 학습했을 것입니다. '검사 피싱' 범죄자들은 대개 비합리적인 요구를 합니다. 예컨대 '대화 도중 전화를 끊으면 수사방해로 지명수배된다'는 식의 주장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속출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실제 수사 과정에 익숙한 것 못지 않게, 검찰 조직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대중들의 무의식을 드러내 줍니다. 즉 검찰이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조직인 반면, 작동 방식은 매우 불투명하고 신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지요. 이 점은 여론조사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023년에 발표된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형사사법기관 중에서도 검찰의 신뢰도는 가장 낮았습니다. 경찰과 법원의 신뢰도는 각기 49.6%와 47.7%로 모두 한해 전에 비해 추락했지만, 검찰은 45.2%를 기록해 그중에서도 최하위였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검찰은 꼴찌였습니다. 검찰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지를 물었을 때 그 비율은 49.8%로, 형사사법기관 중 유일하게 50% 미만을 기록했습니다.

새로운 사실은 아닙니다. 검찰은 공정성 인식에서 7년 연속 꼴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 년 전에 비해 5%포인트 이상 추락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 조사가 이뤄진 시점이 2022년이라는 사실은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좌우명이 '공정' 아니었던가요?

전근대적 조직에 적신호가 켜지다
 

2019년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의 모습. ⓒ 이희훈


물론, 검찰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한다고 해서 보이스피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에서 드러나는 대중들의 인식은 검찰 조직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검찰이 '신뢰를 회복한다'는 말은 수정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검찰은 탄생 이래 시민들의 신뢰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불신에는 검찰이 저질러 온 잔인하고 비겁한 행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 검찰의 수사방식은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객관적 증거 수집보다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은 쉽게 강압수사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혐의를 받던 이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한국 검찰이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들의 수사 방식은 1912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검사들에게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피의자를 일단 체포해 자백을 받아낼 수 있게 된 검찰은 이승만 시대를 거쳐 두 번의 군사독재와 노태우 정부를 거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됩니다.

특이하게도 한국 검찰은 기소권은 물론 수사권까지도 지닌 조직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죄판결을 받아 내기 위해 인권을 무시한 강압 수사는 물론, 증거를 조작하는 기막힌 짓까지 저지를 수 있던 것이지요. 기억해야 할 점은 이런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재심이 결정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대해 들어본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2009년 한 순천시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신 뒤 두 명이 숨지고, 다른 두 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빠진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실마리를 잡지 못하다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큰 충격을 몰고 옵니다. 부정한 관계에 있던 부녀가 어머니를 살해할 목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것이었지요.

재판 결과 남편에게는 무기징역, 딸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되었고, 2012년 형이 확정된 후 두 사람은 올 1월까지 수감 돼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2023년 언론과 박준영 변호사의 노력 덕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의 자백 외에는 어떤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으며, 수사 당시 검사와 조사관이 지어낸 답변을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방식으로 자백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요.

지금이나마 사실이 드러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만, 검찰이 음험한 상상력으로 조작해 낸 시나리오로 인해, 부녀는 15년 동안을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20대에 기소된 딸은 40이 다 돼 세상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기막힌 사태의 장본인인 검사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검찰의 행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하지만, 이미 오래 전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법이란 게 권력자에게는 참 편리합니다. 힘있는 자들의 불법행위에 책임을 묻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소시효가 고작 7년이니까요. 검찰이 시위 참여자를 처벌할 목적으로 흔히 적용하는 교통방해죄의 공소시효가 10년인 데 말이지요.

'92학번'이라 민주화 운동과 상관 없다고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 남소연

 
2021년 7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상태에서 부산 민주공원을 찾았습니다. 그곳 추모비에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동료의 부축을 받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상징이 된, 바로 그 사진입니다.  

장제원 의원은 옆에 있던 윤석열 전 총장에게 "이한열 열사"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때 설명을 듣던 윤 전 총장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건 부마(항쟁)인가요?" 그 자리에 있던 측근들의 답변도 걸작이었습니다. "네", "1979년." 윤 전 총장은 자신이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최근에는 국민의힘 당 비대위원장으로 스타덤에 오른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민주화 항쟁과 관련한 '학번' 발언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그는 자리에 오르자 마자 "운동권 카르텔 청산"을 내세우며 이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 발언을 비판하며 되물었습니다.

"본인의 출세를 위해서 바로 고시공부를 한 게 아닙니까. 동시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선후배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요?"

그에 대한 한 위원장의 답변은 명료했습니다. "임종석 의원께서 저한테 동시대에 있었던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했던데요, 저는 92학번이거든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가 특별히 누구에게 미안함을 가져야 될 이유는 없어요. 우리 세대가. 저는 80년 광주항쟁 당시에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누구에게 미안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 말을 듣고 윤석열 대통령의 '부마' 발언만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92년에 저도 대학생이었기에,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민주화가 성취된 태평성대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1992년은 한동훈 위원장의 꿈이었던 검찰이 치욕적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한 해이기도 하지요.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민주화의 숨통을 죄며 몸집을 불린 검찰

1990년대 초, 대통령 직선제 등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뤄졌지만 대대적인 민간인 사찰과 탄압이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사찰해 온 민간인의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공개하며 양심선언을 하기 이릅니다. 1991년 4월에는 대학생이었던 강경대씨가 전투경찰 '백골단'의 폭행에 숨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하기에 이릅니다.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던 김기춘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고는 사건의 '해결'을 맡깁니다. 이때 검찰은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신 써줬다며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해 내고, 정부는 이를 빌미삼아 민주화 운동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시작합니다.

이전까지는 보안사와 경찰 등의 기관이 고문과 강압을 통해 사건을 조작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혐의를 검찰이 넘겨 받아 죄인을 만들어 내는 하수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분신사건을 기점으로 검찰은 정권 보위의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한국 검찰은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암흑기로 돌려놓으면서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지요. 아이러니라기보다는 비극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고통 받은 후, 강기훈씨는 24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법원은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국가배상 판결을 내립니다. 하지만 법원은 고문 등 가혹수사를 통해 사건을 조작한 검사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합니다. 한 사람의 삶을 처참히 파괴해 놓고도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막힐 뿐입니다.

반성과 공감능력도 없는 정부, 어떻게 상대할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동훈 위원장은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을 보위했던 검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다가, 그 정권을 계승한 당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미안함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없다"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를 그렇게 손쉽게 덮으려 하는 데에는 모종의 '동지의식'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찰 역시 자신의 과오를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의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심각한 공감 능력의 결여입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새해 첫 공식일정으로 대전 현충원을 찾아 호국영령을 추도했습니다. 그는 지지자들과 유튜버들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가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를 듣습니다.

"한동훈 위원장님, 채수근 해병의 생일입니다. 오늘 참배하고 가주십시오."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를 찾다가 사망한 해병대 채 상병이 그곳에 안장돼 있으니 추모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한 위원장은 요구를 무시하고 단체촬영을 위해 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보인 태도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반성이지요. 반성은 변화의 필요조건이자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반성 없는 정부에게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뒤, 전에 보지 못했던 낯선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이 판단에 동의하신다면,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지켜 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낯선 나라'는 총선 이후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여소야대'에서 이런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반대의 상황에서는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희망이 선거날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선거 날에만 작동하는 장치가 아니니까요. 투표날이 아닌 일상의 싸움을 위해 표현의 자유도 있고, 결사의 자유도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이 권리는 권력자가 외면하더라도, 입을 틀어막고 끌어내더라도, '운동권 카르텔'이라 겁박해도 행사돼야 합니다. 그것이 1987년이든, 1992년이든, 2024년이든 변함없이 말이지요.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프리미엄 강인규 리포트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