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2 16:09최종 업데이트 24.02.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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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한 시민이 눈을 맞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엄마는 때로 새벽에 첫차를 타고 출근하곤 했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집을 나섰다. 당연히 날은 춥고 길은 얼어있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도 있었다. 사실 겨울의 출근길은 모두에게 괴롭기 마련이라 엄마에게 딱히 힘든지 질문하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휴가를 내고 부모님의 집에서 머물던 어느 날, 눈을 떴는데 엄마가 이미 출근을 하고 사라진 아침에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겨울이면 나는 일어나기도 특히 버거운데 엄마는 어떻게 늘 출근을 하지? 힘들지 않을까?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는 엄마가 신기함과 동시에, 어떤 마음이어야 그게 가능한지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다. 이 추운 날 해도 없는 아침에 출근하는 일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그러자 엄마는 답했다.


"그런 생각을 왜 해? 어차피 출근 할 거잖아"

인생에 지각이란 없는 엄마에게 딱히 비법은 없었다. 단지 태생부터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그 과정에서 쓸모없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것. 그때야 생각난 게 엄마가 입버릇처럼 내게 하던 말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내준 숙제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앞두고 내가 짜증을 부릴 때 늘 하던 말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웃으면서 하자. 나는 늘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었는데 수십 년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엄마는 원래 그게 가능한 사람이다. 노력을 한다고 저 경지에 이르는 게 가능할까.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

엄마와 내가 다른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닮은 부분이 있다. 나도 지각을 정말 싫어해서 거의 하지 않으며, 때론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 이른 아침일 때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일주일에 3일은 아침 7시에 시작하는 수영 수업을 들으러 간다. 운이 좋게 지역주민체육센터 근처에 살긴 하지만 그래도 아침 6시가 조금 넘으면 눈을 떠야 한다.

지금 사는 동네에 정착하면서 이 생활을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센터가 휴관을 한 시기를 제외해도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한 셈이니 나름 만족스럽다. 하지만 힘든 순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름은 그나마 괜찮은데 겨울이 문제다. 동도 트지 않고 날은 춥고 이불은 따뜻하다. 밖을 돌아다니는 동안 추위로 근육이 수축된 탓인지 몸은 더욱 무겁다. 수영장에 가고 싶지 않게 된다. 더 자고 싶어진다.

실제로 수영을 다니던 첫 1년 정도는 겨울이면 출석률이 급감하기도 했다. 아예 추운 계절에는 수영을 잠시 쉬고 다른 운동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굳이 아침부터 괴로워하며 수영장까지 가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결석도 지각도 싫어하는 성미가 문제였다. 그런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기왕 수영을 다닌다면 한해를 온전히 참석하고 싶었다.

결국 출석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 체육센터에 월마다 곱게 수강료를 납부했다. 하지만 2년차부터는 겨울에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꾸준히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나름의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주 우연히 발견한 방법인데, 역시나 수영에 가기 싫다고 생각하며 눈을 뜬 겨울의 아침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일단 일어나자,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

우연히 든 생각이 태도까지 바꾸게 된 이유
 

'일단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는 마음을 가지니, 저절로 수영장에 가게 됐다. ⓒ pxhere

 
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할 정도로 다른 때보다는 수월하게 눈을 뜨고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영을 하러 갈 때도 나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집 밖을 나서기 싫을 때도 반복해서 생각했다. 일단 일어나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고. 정말 수영을 갈지, 휴가를 쓰고 출근을 안 할지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있을지. 그런데 많은 경우 일단 눈을 뜨고 침대 밖으로 나오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사람이 눈을 뜨고 침대 밖에 있으려면 일단 그게 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또렷해야 했다. 다시 잠들기는 그른 상태라는 것이다. 멀뚱멀뚱 눈을 뜨고 새벽에 멍하니 있어 봐야 집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일단 집밖으로 나가자. 체육센터까지는 가보자. 씻고 수영복부터 입고 다시 생각하자, 너무 힘이 들면 중간에 집으로 돌아와도 누구도 붙잡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하는 대로 순간순간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면 어느 순간 그날의 수업은 끝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때로는 한파가 몰아치는 아침에도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는데 수영을 가야한다는 생각을 안 해버린 것이다. 거기까지 가기에 거쳐야 할 단계가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럼 막막한 생각이 들어버리니까.

그리고 수영을 떠올리면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 눈은 떴으니 다음은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거기까지 가야만 정말 알 수 있기도 했다. 내가 정말 수영을 갈 수 없는 상태인지 아니면 그냥 귀찮은 것인지 말이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나는 매해 음력 설 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걸 좋아한다. 물론 1월 1일이 되면서 연도는 이미 바뀐다. 하지만 대부분 1월에는 시행착오와 방황을 가장 많이 한다. 그러다 2월이 오면 한 해의 시작을 허망하게 날려버린 기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 음력 설날이 다가와 새해가 밝았다는 인사를 하면 두 번째 기회를 얻은 느낌이 든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물론 시작이 그렇게 특별한 순간은 아니다. 중도에라도 통찰을 얻어 방향을 전환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다시 기회를 얻었다는 느낌은 안도감과 의욕이 함께 오는 좋은 기분이다.

그러니 다시 출발선에 선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우리 모두는 올해 추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바람일 수도 있고 혹은 조직이 설정해 준 것일 수도 있다. 목표에 도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일찍부터 괴로운 감정이 드는 건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할 긴 과정과 다사다난에 의한 막막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잠시 이후의 과정과 목표를 생각의 한쪽 구석으로 치워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 과정으로 향하기 위해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단계만 생각해보는 것이다. 일단 그것만 해보는 것이다. 나의 경우 그 방식으로 안정감을 자주 되찾을 수 있었다.

언젠가 새해 정초, 신입이 맡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사업의 실행 직전에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나는 계속해서 '도망치고 싶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그러자 친구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맡은 사업이 맞이할 최악의 결과가 뭔지 알아? 그건 담당자가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가는 거야. 일단 도망치지 않는 것부터 해봐."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가지 않았다. 결국 그해 말에 사업은 무사히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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