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1 13:40최종 업데이트 24.02.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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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행인들이 지진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이시카와현 당국은 새해 첫날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으로 이날 오전 11시까지 최소 6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지난 1월 28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다고 전해지지만, 연초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3년. 일본 정부가 핵 오염수 방류를 당당히 추진할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이번 노토반도 지진은 일본 사회는 물론 인접국인 한국과 중국, 나아가 전 세계에 다시 한번 핵발전소 안전 문제를 상기시켰다.


노토반도 지진 당시 일본 기상청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대형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는 지진보다도 쓰나미가 더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지진으로 외부 전력 공급이 중단된 후 쓰나미로 비상 발전설비마저 침수되면서 냉각 펌프가 정지해 노심용융(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시카와현과 인근 지역에는 다수의 핵발전소가 몰려있다. 진앙지에서 가장 가까운 시카 원전에서는 이번 강진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에서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물이 흘러넘쳤고 냉각 펌프가 일시 정지했다. 호쿠리쿠 전력과 일본 정부는 넘친 물이 외부로는 누출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많은 이들이 우려 섞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 관심은 오로지 원전 산업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반도체관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세 번째,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평범한 시민들의 이러한 걱정과는 달리, 윤석열 대통령의 관심은 오로지 원전 산업, 반도체 산업에 집중돼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민생토론회' 세 번째 주제로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반도체 산업을 위해서는 원전이 필수, 탈원전은 반도체 산업 포기"라는 논리가 등장했다.

대통령의 친원전 행보는 국내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년 한 해 거의 매달 떠났던 해외 순방길마다 윤 대통령은 '원전 협력'을 내세웠다. 12월 네덜란드, 11월 영국, 7월 폴란드 방문 때도 원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며 홍보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좌장을 맡은 '새로운 원자력' 세션에 발언자로 나섰다. 한 총리는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서는 원전이 중요하다"라며 "한국은 원전 선도국으로서 전 세계 탈탄소 실현과 지속가능 발전에 기여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세계 경제에 관한 모든 것을 논의하는 다보스 포럼이지만, 원전 세션이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X(트위터) 계정에 "올해 세계경제포럼이 원자력에 초점을 맞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한 경제지는 "최근 유럽에서 원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이번 세션이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지만, 관심이 커져서 마련된 것인지, 관심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원전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는 한 줌

기후위기 대응, 탄소배출 감축을 핑계로 핵발전을 내세우는 국가가 한국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국보다 더 엄격한 요건을 적용한다고는 하지만, 최근 유럽연합이 핵발전을 녹색분류체계(EU Taxonomy)에 포함한 것도 사실이다.

작년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렸던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8)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를 결의하는 최종 합의문을 채택했지만, 총회 기간 한국을 포함한 22개국은 '2050년까지 원전 3배 확대'를 촉구하는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를 따로 발표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아랍에미리트, 스웨덴 등이 서명국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2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Rove Expo 2020에서 열린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선언식'에서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 산업통상자원부

  
이들 국가의 핵발전 산업과 전력 소비 현황을 보면 그 속내를 알 수 있다. 원전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별 핵 발전량(산업)이다. IAEA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단 13개 국가가 전 세계 핵 발전량의 91%를 차지한다. 1위는 미국(31.5%), 2위는 중국(16.1%), 3위는 프랑스(11.5%), 4위는 러시아(8.6%)다. 한국이 6.8%로 5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국가별 전력 구성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소비)이다. 1위 프랑스(62.6%), 12위 스웨덴(29.4%)을 포함해 유럽 국가들이 상위 15위 중 14곳을 차지한다. 유일한 비유럽 국가는 11위 한국(전체의 30.4%)이다. 미국(18.2%, 16위), 영국(14.2%, 18위), 아랍에미리트(12.4%, 20위)도 소비 전력의 상당량을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연구소(EI)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전력 생산량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9.18%로, 전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전체의 29.55%를 차지한다. 2000년대 이래 핵발전은 내리막길을, 재생에너지는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 전 세계 수백 개 국가 중 원전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는 한 줌이며, 이들이 기후위기를 핑계로 '원전 르네상스'를 노리고 있다.

이들 국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국가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영국의 기후단체 카본브리프는 영국·네덜란드·프랑스 등 과거 제국주의 열강의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에 이들이 과거 지배했던 식민지에서의 배출량을 고려한 수치를 발표했다. 기후정의 관점을 보다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한때 대영제국의 일부였던 46개국(인도, 미얀마, 나이지리아 등)의 배출량을 고려하면 영국의 누적 배출량은 2배 증가하고,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한 네덜란드는 3배,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배한 프랑스는 배출량이 1.5배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국가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순위는 1위 미국(530기가톤), 2위 중국(308기가톤), 3위 러시아(239기가톤), 4위 영국(130기가톤) 순이었고, 1인당 누적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네덜란드가 1위(2014톤), 영국이 2위를 차지했다(1922톤).

핵발전, 기후위기·에너지위기 대안 될 수 없다

이들 국가는 기후위기 대응 가속화 필요성과 더불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위기로 인해 핵발전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와 영국, 스웨덴은 최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발표했다. 프랑스와 스웨덴은 기존의 원전 감축 방향을 뒤집은 것이다. 1986년 소련(현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1990년 세계 최초로 탈원전을 실행한 이탈리아조차 원전 재개를 논의하고 있다. 스웨덴과 이탈리아에서는 극우 정부의 집권이 탈원전 폐기 도화선이 됐다.

사실관계만 본다면, 핵발전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수급 위기의 대응 수단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먼저 탄소배출 감축 잠재력이다. 2023년 3월 발간된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지구온도 1.5℃ 상승 억제'를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 부문에서의 수단별 잠재력은 태양열 > 풍력 > 화석연료에서 메탄 감축 > 바이오 전력 > 지열 및 수력 > 핵발전 > 화석연료 탄소 포집 및 저장(CCS) 순이다.

한국 정부가 집중하는 양대 정책인 핵발전과 탄소 포집·저장은 효과가 가장 낮은 기술이라는 의미다. 기술의 전 주기 순 비용을 고려하면, 태양열이나 풍력에 비해 핵발전과 탄소 포집·저장은 감축량 대비 비용 역시 비쌌다. 효과는 물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에너지 자급 가능성이다. 핵발전 연료는 농축 우라늄이다. 전 세계 농축 우라늄 생산의 40%를 러시아가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러시아산 석탄·석유·가스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도,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은 금지하지 못했다. 핵발전을 위한 농축 우라늄의 23%를 러시아로부터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러시아산 비중이 더욱 높아 33%를 차지한다.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은 달리면서 세계 우라늄 가격 역시 두 배 이상 급등했고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핵발전은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공급망 위기에 취약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선에 있는 유럽 최대규모 자포리자 원전이 처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보더라도 핵발전을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전쟁 직후부터 러시아군 점령하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은 그간 양측 교전 과정에서 8차례나 외부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냉각 펌프에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면 노심용융으로 방사성 물질이 대량 누출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원전 포격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핵발전은 자연재해는 물론 무력 충돌 위험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2023년 6월 15일(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 사절단이 도착하기 전 러시아가 장악한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인근 검문소에서 러시아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 에너지 수급 위기 대응을 위한 대안으로 원전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독일 괴테대 직업·사회·환경의학 연구소팀이 작년 9월 <에너지와 환경 학제 간 리뷰>(Wiley Interdisciplinary Reviews: Energy and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 '건강과 환경 위험이라는 맥락에서 핵발전에 관한 전 세계 연구 현황: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여'는 핵발전에 관한 '과학적' 연구조차 국가별 이해관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핵발전에 관한 연구 발표 건수는 국가별로 가동 중인 핵발전소 수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핵발전을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로 포장하는 것은 재생에너지 사용과 이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지연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대체 효과는 미래 에너지 지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경고한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여러 국가에서 탈원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스웨덴과 이탈리아, 한국의 사례는 극우 정부의 집권이 이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외부의 여러 요인이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지만, 사회적 논의를 조성하고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몫이다.

한국의 정치는 어떤가. 정부의 친원전 행보를 견제해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을 위해서는 원전이 아닌 재생에너지가 필요하다"라며 대선 토론회 당시부터 이어진 RE100(기업이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팩트체크에만 열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을 RE100도 모르는 바보라는 식으로 공격해 봤자 정치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과거 국내 탈원전을 추진하면서도 국외 원전 수출을 놓지 못했던 문재인 정부 과오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깨치지 못한 걸까.

마지막 희망은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
 

지난 1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 방송센터에서 미국 핵과학자회보가 지난해와 같이 자정까지 '90초'를 유지한 '운명의 날 시계'를 공개했다. ⓒ 연합뉴스


지난 1월 23일(현지시간), 미국 핵과학자회보(BAS)가 올해 '운명의 날 시계'를 "자정 90초 전"으로 설정한다고 밝혔다. 자정은 지구 종말을 의미한다. 작년과 같은 수준이지만, 1947년 첫 설정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까운 수준이기도 하다. 작년 '90초 전' 설정의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핵확산 위험 증가, 그리고 기후위기였다. 올해도 변함없는 상황이 같은 수준을 유지하게 된 이유다.

'운명의 날 시계'는 1947년 핵과학자회보가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었다. 핵과학자회보는 미국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자를 비롯한 핵과학자들이 1945년 결성한 단체다. 더 많은 살상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미국 정부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폭탄을 투하한 뒤의 참상을 목격한 이후다. 2007년부터는 핵으로 인한 절멸에 더해 기후위기를 인류의 최대 위협으로 추가했다.

<과학의 민중사: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끈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이자 뉴욕시립대 과학사 연구자 클리퍼드 코너는 작년 말 급진과학운동을 표방하는 <민중을 위한 과학> 잡지에 기고한 글, '또 시작인 원전 르네상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원전 르네상스 선전의 가장 일반적인 결함은 정치경제적 문제를 공학적 문제로 축소한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에는 분명 기술 투입이 포함될 것이지만,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기술적 해결'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화석연료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해결책이며,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석유·석탄·가스 산업은 수조 달러 규모의 산업입니다. 이 산업을 소유한 투자자들은 수조 달러의 재산을 그냥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글로벌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전 세계적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전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현재 정부를 지배하고 있는 기업의 이익보다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정부의 출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시스템이란 우리의 사회 시스템, 경제 시스템, 생산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런 정부는 저절로 출현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핵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가진 자들은 평범한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그저 수단으로 간주한다. 지구 종말, 인류 절멸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결국 기후위기도, 핵발전도 거부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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