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에 환자들이 누워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병원을 표적으로 한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에 많은 이들이 경악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러한 집단학살 행위에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뿌리가 있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의료 아파르트헤이트'다.
'의료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의 국제법상 공식 정의는 없다. 흔히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의료 서비스가 만연하게 분리되는 상황이나 의료 환경에서의 차별적·착취적·학대적 대우를 가리킨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중·저소득 국가가 백신을 구할 수 없었던 불평등한 상황을 가리켜, 초국적 제약사와 고소득 국가에 의한 인위적 차별행위가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 드렉셀대 연구팀이 <Global Public Health (국제공중보건)>지에 2023년 4월 발표한 '팔레스타인에서 의료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스라엘의 차별적 의료 정책과 관행이 팔레스타인인의 건강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의료 아파르트헤이트'로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보건의료 재원조달, 보건의료시설·노동자·교통수단에 대한 공격, 전문 의료 서비스 의뢰에 관한 자료를 종합하여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첫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보건의료 체계 발전을 위한 자금을 체계적으로 박탈했다. 199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합의한 '파리 의정서(1995년 2차 오슬로 협정에 통합)'는 중요한 정치적 맥락이다. 이 의정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모든 국경과 관세를 통제하도록 함으로써 팔레스타인 경제를 이스라엘에 종속시켰다.
이스라엘은 관세를 대리 징수하여 매월 자치정부에 이전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를 남용하여 징수한 세금의 25%를 원천징수한 후 75%만 이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기구나 공여국의 원조 등 국제사회 지원을 받아 부족한 정부 재정을 조달해 왔지만, 최근 수년간 원조액 감소와 공여국의 이행 저조로 극심한 재정난에 처해 있다.
둘째, 의료 인프라가 빈번하게 공격받았다. 비단 이번 '전쟁' 만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의료 시설과 인력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일례로 2020년에는 서안지구에서 일어난 시위기간 이스라엘군이 의료 시설과 구급차를 공격했는데, 부상당한 시위대를 응급 처치하던 구급차에 수류탄을 던지는 식이었다. 매년 발생하는 수백 건 공격에서 수십 수백 명 의료진이 부상을 입고 일부는 사망했다.
셋째, 낙후된 의료 서비스로 인해 팔레스타인 주민은 많은 경우 거주지를 벗어나 전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당국은 이를 위해 허가 신청을 요구하면서도 승인을 거부하거나 지연시켰다. 이는 이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 있다.
코로나19 백신 사례는 더욱 노골적이고 체계적인 분리·차별을 드러낸다. 이스라엘 당국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거주하는 약 500만 명 팔레스타인인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프로그램에서 제외하면서,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66만 6천 명 이스라엘 정착민은 포함시켰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막으려는 시도를 계속하면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논의할 때만큼은 전략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자치국가로 간주했다.
이러한 의료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영향은 팔레스타인인에서 이스라엘인보다 9년 짧은 기대수명, 6배 높은 영아사망률이라는 극심한 건강 불평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불평등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한 의도적 정책의 예측 가능한 효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사이 건강 불평등은 의료 아파르트헤이트를 통한 의료 접근권 박탈뿐 아니라, 일할 권리, 주거권, 재산 소유 및 향유권 등 다른 여러 권리를 침해하는 총체적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통해 작동한다. 그럼에도 의료 아파르트헤이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보다 넓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일부일 뿐 아니라 그 결과라는 점,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인의 건강과 복지를 박탈하여 정복하려는 의도적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배 겪은 한국의 책임

▲지난해 4월 27일 미국을 국빈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매달 한 번씩은 해외 방문에 나설 정도로 외교에 진심이다. 틈만 나면 '자유'와 '반공'을 부르짖으며 안보 걱정도 누구 못지않다. 하지만 지난 세 달 동안 이 중대한 국제안보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은 "무장단체 하마스 규탄" 외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정부는 유엔총회의 '휴전 촉구 결의안'에 기권을 하고, 심지어 한국 청해부대의 홍해 파병을 고려하는 중이다. 홍해를 봉쇄한 예멘 후티 반군의 요구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중단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파병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기여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군사거래 뿐 아니라 여타 물품의 수출입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아파르트헤이트에 기여해 왔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검토를 시작한 한-이스라엘 FTA는 2016년 박근혜 정부가 협상을 개시하고 2021년 문재인 정부가 타결, 서명한 후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발효됐다. 한-이스라엘 FTA는 한국이 중동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FTA이자, 이스라엘로서도 아시아와 맺은 최초의 FTA다.
한국은 올해와 내년 2년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한다. 외교부는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수임을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적극 실현해 나갈 예정"이라며, "북한 문제는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등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에 대해 안보리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해 나가기로 했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정부의 그간 태도로 비추어 볼 때 평화 논의에 어깃장이나 놓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유엔 안보리 논의 참여는 물론 한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겪은 남아공이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했다면,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 역시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병원 폭격으로 사망한 Mahmoud Abu Nujaila 박사가 수술 계획을 적는데 사용되는 병원 화이트보드에 남긴 글귀입니다. 총소리가 잦아들고 참혹한 규모가 드러나면, 위원회와 위원들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요?
(2023년 12월 4일 유엔 안보리에 보낸 국경없는의사회의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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