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빛에 있는 리본들
안미선
뉴스를 처음부터 찾아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글과 말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과 회의하고 궁리했다.
여러 리본을 만들어놓고 시민들이 자주 가져가는 리본이 어떤 모습인지 지켜보고 그 리본을 더 많이 만들기도 했다. 리본을 손에 든 사람들은 무얼 하면 좋은지 물어오기도 했다. 하나씩 하나씩 편들이 늘어가고, 마음들이 모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자리를 더욱더 떠날 수 없었다. 한 손이라도 더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있었다.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는 위태롭고 소중한 자리였다.
"희생자들이 아직 우리 옆에 있다는 걸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전할까 생각했어요. 더 오래 여운이 남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살포시 앉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비가 좋겠다. 살랑살랑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한지가 좋겠다. 바로 생각이 났어요. 노란리본공작소에서 함께하는 분들이 서로 두 번도 안 물어보고 바로 그러자 하고 같이 일해요."
그는 이후에도 노란 리본을 계속 만들었다. 노란리본공작소는 전국적으로 있었다. 용인, 수원 영통 공작소, 전주, 청주, 안양, 군포, 서울 서촌 공작소 등 여러 지역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했다.
노란리본공작소를 통해 리본을 통한 마음이 지역 곳곳에 골고루 전달될 수 있었다. 그의 눈에는 언제나 리본이 들어온다. 노란 리본을 보면 어느 지역에서 만든 리본인지 알 수 있다. 두께와 길이, 끝의 각도, 선의 모습이 눈에 쏙 들어온다. 때로 남의 가방에 매달린 리본 하나가 접착력이 떨어져 흔들거리면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햇수로 10년째 셀 수 없이 많은 리본을 만들었지만 그에게 모든 리본은 하나하나 특별하다.
"나는 노란 리본을 수천 개, 수만 개를 만들지만, 리본을 가져간 사람에게 그 리본은 유일한 하나의 리본이니까요. 자신의 리본을 하나 가지게 되고요.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게 제일 커요. '옛날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지' 하는 게 아니라 리본을 보면 '아, 아직 해결이 안 됐는데 잊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기를 바라요.
리본을 받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고, 기억한다는 걸 표시를 하고 싶어서 받는 거잖아요. 또 사람들마다 보고 느끼는 게 각자 다르고 자신만의 이야깃거리가 있을 테니까. 그 이야기를 같이 떠올리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각자의 기억과 생각이 있을 테니까요. 노란 리본을 받으면 그다음부터는 각자의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거예요. 리본을 보면 '아직도야?' 하지 말고 '아, 이런 일이 있었어' 하는 느낌으로 봐주고 기억을 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의 역할은 다한 거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는 코로나 상황에서 사람들을 대면으로 만나기 어려워질 때 온라인 공간을 통해 노란 리본을 알려 나갔다. 어른들에게 택배비와 포장비 정도만 받고 물품을 발송하고 청소년들에게는 리본을 무료로 나누었다. 노란 봉투에 노란 리본과 스티커, 노란 팔찌를 넣어 보냈다. 청소년 2300여 명이 노란 리본을 받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여러 사람들이 끊임없이 리본을 받겠다고 신청했다.
"어떤 사람은 '저 면허증 따고 새 차 뽑았는데 노란 리본 스티커를 붙일 거예요' 하고 (리본을) 받아가요. 어떤 분은 외국 친구하고 참사를 이야기하고 리본을 나누겠다면서 받아요. 당시엔 어려서 무슨 일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됐다며 노란 리본을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어보겠다며 재료를 받기도 해요. 대부분 그때를 어떻게 기억한다고 정확히 이야기하고 아직 해결이 안 돼서 속상하다고 말하면서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죠."
광화문 노란리본공작소에서 작업할 때는 종일 리본을 만들다가 밤에 늦게 집에 들어왔다. 식사준비를 해놓고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면 바로 광화문으로 나왔다. 농성장에서 공권력으로 인한 싸움이 있을 때는 새벽에야 집에 온 적도 종종 있었다. '내가 여기를 언제까지 다녀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몸이 아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은 아직 리본을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만들자' 하고 생각한다.
"오직 리본만 만들었어요"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
4.16재단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어요. 동네 엄마들이 저를 붙잡고 '네가 하지 않아도 세상은 조금씩 나아가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으니 애쓰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나아지고 있다 해도, 저는 나아갈 거라면 다 같이 잘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거예요. 무엇보다 억울한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 눈시울을 붉히며 이야기를 이었다.
"음... 한강을 건널 때였어요. 조금만 더 가면 광화문인데, 마포대교를 건널 때는 '아,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이 들고 또다시 한강을 건너 돌아올 때면 하루에 쌓인 감정을 하나씩 버리려고 그랬어요. 한강을 기준으로 감정을 하나씩 버려야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얼굴로 우리 애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처음엔 마음이 너무 슬프고 우리 애들은 웃고 하니까 그게 너무 온도 차가 있어서 그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어요. 나중에 한강을 기준으로 감정들을 버리고 엄마로서 역할을 잘 하겠다고 한 거죠. 매일 울면서 다녔어요. 왜 한강을 가면 눈물이 나는지 그게 힘들었어요. 진짜 힘든 날에는 밤에 지하 주차장에서 한동안 마음을 추스려야 집에 올라갈 수 있었어요.
몸이 힘들었던 것보다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거예요.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뭐 하나 나아지는 게 없지? 내가 열심히 한다면 다른 사람도 이만큼 하는 걸 텐데, 시민들이 이렇게 움직이고 유가족들도 열심히 하는데, 왜 뭐 하나 되는 게 없지? 이 생각이 들어 속상하고 복잡한 마음도 생겨서 감정을 조절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노란 리본을 볼 때마다 이건 누가 만들었을까 하고 궁금했다. 이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 굵은 손가락을, 리본을 나누기 위해 애쓰다 얼굴에 생긴 붉은 반점을, 눈가에 차오르다가 이내 감추어지는 눈물을 보았다. 가위질을 오래 해서 엄지와 중지가 휘어지고 관절 통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본 무수한 장면이 지금도 문득문득 생생히 떠올라 감정을 깊이 건드린다고 했다. 그는 되도록 말을 아끼고 '오직 리본만 만들었다'고 거듭 말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는 또 광화문 광장에 있었던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이 그 자리를 떠나야 한 것에 아쉬움이 있다. '기억과 빛'은 해체돼 2021년에 서울시의회 앞에 다시 자리 잡았지만, 서울시의회로부터 불법 시설물로 간주돼 강제 철거 위기에 놓였다.
"시민들이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게 많은데, 광화문 광장에서 잠깐이라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곳이 갑자기 없어져 제일 슬펐어요. 세월호 기억공간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으니 국가에서 그곳을 어떻게 만들지 먼저 제안 해주고 가족들과 같이 협의를 하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요... 광화문 광장은 처음에 유가족이 단식하던 공간이었고, 사람들이 연대하며 많이 다녔고, 새로운 문화의 공간이었고 특별했던 곳이었으니 한 편에 뭔가를 해주면 좋은데 그걸 안 한 거죠. '기억과 빛'을 지키는 건 우리의 권리예요."
광화문 농성장에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힘은 슬픔과 간절한 기다림 때문일 것이다. 노란 리본에 거는 약속처럼 저마다 자신의 다짐을 기억하면서 끝나지 않는 슬픔의 끝을 바라면서 달려가는 것이다. 양승미씨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이에요. 마음이 아파서 온 사람이잖아요. 사실은 슬픔에 나온 거잖아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슬픔에 어찌할지 몰라서 나온 거고, 행동하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다들 흠결이 있는 사람들끼리 기대면서 옆에서 함께하는 거죠. 세월호 참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니 다른 분들도 어떤 형태로든 기억을 해주시길 저는 바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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