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성당과 뢰번 구 시청사를 바라보고 마신 스텔라 아르투아
윤한샘
스텔라 아르투아는 1926년에 아르투아 양조장에서 태어났다. 1366년 이 도시에서 사냥용 뿔피리를 달고 맥주를 팔던 댄 호른 양조장이 아르투아의 기원이다. 실질적인 출발은 세바스찬 아르투아가 댄 호른을 인수하고 아르투아 브루어리로 이름을 바꾼 1717년이다. 작은 지역 양조장에 불과하던 아르투아는 크리스마스 시즌 맥주로 스텔라 아르투아를 출시한 이후 크게 성장했다. 스텔라는 별이라는 뜻으로 크리스마스의 별에서 착안했다.
다채로운 맥주 스타일이 즐비한 벨기에에서 밝은 라거를 선보이는 건 모험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깔끔한 황금색 라거는 벨기에를 넘어 유럽 전체에서 인기를 끌었다. 뢰번은 스텔라 아르투아를 통해 대학 외에 맥주라는 정체성을 추가했다.
1987년 아르투아는 맥주 세계를 뒤흔든 결정을 한다. 1853년 왈로니아 주필리에에 설립된 뾔에드뵈프 양조장과 합병을 발표한 것이다. 1921년 라거를 생산한 뾔에드뵈프는 작은 양조장이었다. 그러나 1966년 출시된 주필러(Jupiler)는 이 회사를 명실상부한 벨기에 최고 맥주 회사로 만들었다. 아르투아와 뾔에드뵈프는 오래 전부터 경쟁사이면서 협력자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벨기에 라거 시장을 양분하고 있던 두 회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맥주 세계는 격변을 맞게 된다.
아르투아와 뾔이드뵈프의 합병으로 태어난 회사가 현재 초거대 맥주 기업 AB인베브의 전신인 인터브루(Interbrew)다. 1991년 벨기에 벨레뷰와 헝가리 보르소디를 인수한 인터브루는 맥주 산업에서 다중 브랜드 전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캐나다 맥주 브랜드를 인수했고 2000년 초반 영국 바스와 독일 벡스를 가족으로 만들며 거대 맥주 회사로 거듭난다.
충격적인 일은 2008년 일어났다. 2004년 브라질 맥주 브랜드 암베브(AmBev)와 합병하며 인베브(InBev)로 사명을 바꾼 인터브루가 세계 1위 맥주 회사 앤하이저부시를 적대적인 방법으로 합병한 것이다. 맥주 시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버드와이저를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 미국 브랜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베브에서 AB인베브(Anheuser-Busch InBev)로 초거대 기업이 된 이 맥주회사는 계속해서 덩치를 불려 갔다. 2013년에는 코로나 맥주를 갖고 있는 멕시코 최대 브랜드 그루포 모델로를, 2014년에는 한국 최대 맥주 회사 오비맥주를, 그리고 2016년에는 세계 2위 브랜드 사브밀러(SABMiller)를 인수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AB인베브 본사는 여전히 이곳 뢰번에 있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성배처럼 생긴 전용 잔, 챌리스에 담긴 황금색 라거가 없었다면 지금의 AB인베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텔라 아르투아 한 잔을 뢰벤 구시청사 옆에서 마시려고 한 것도 바로 그 '시작'을 '고향'에서 느끼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뢰번에서 마시는 스텔라 아르투아는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량한 목 넘김을 즐겨야 하는 페일 라거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깔끔하고 가벼웠다. 성 베드로 성당 앞에서 광장을 오가는 지역 사람들을 보며 스텔라 아르투아를 마신다는 경험이 색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경험은 기억으로 남는다. 아마 이 기억은 한국에서 계속 스텔라 아르투아를 찾게 만들 것이다. 혀로 스며든 기억은 이래서 무섭다.
한때 AB인베브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다는 소문에 뢰번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스텔라 아르투아는 초국적 기업 라거 중 하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영혼이 담긴 맥주다. 뢰번 대학은 반으로 찢겨졌지만 맥주는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고, 맥주는 펜보다 세다. 물론 아주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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