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주옥순 위안부사기청산연대 대표가 지난해 6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부근에서 회원들과 함께 해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일본 응원군이 된 한국 극우세력의 현실은 이들이 극우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극우의 핵심 특징인 자민족 중심주의를 이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들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므로, 그것을 결여한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그 빈자리를 '일본민족 중심주의'로 채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나 동유럽에서 주도권을 잡은 극우세력들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극우세력의 성패는 대중적 기반의 구축 여하에 달려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그런 기반 구축에 결정적임을 감안하면, 한국 극우의 '흥행'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극우의 지지를 받는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2021년 중의원 선거에서 1위·3위 및 33.3% 및 6.1%를 기록했다. 반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기독자유통일당과 우리공화당을 비롯한 11개 극우 정당들은 도합 4.1%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한국이 아닌 일본을 편드는 세력이란 이미지를 떨쳐버리지 못한 것도 결정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부대를 비롯한 한국 극우세력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일본을 편들게 되는 현실적 사정이 있다. 1990년대 초반의 탈냉전과 1997년 이후의 여야 정권교체가 이들의 재정 기반을 약화시킨 것과 무관치 않다.
미군정 이래로 한국 극우는 보수 정권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정권의 심부름을 해주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런 가운데 한국자유총연맹이나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관변단체의 외형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들은 대중의 회비에 의존할 필요도 없었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탈냉전이 도래해 이들의 효용 가치가 낮아지고 이들과 국가의 관계가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2017년의 정권교체는 이들과 국가권력의 관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예전 같은 고정적이고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을 더는 기대하기 힘들게 됐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집권기에 이들이 애물단지 같은 존재로 전락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지난 6월에 극우 유튜버들이 한국자유총연맹 자문위원으로 대거 위촉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극우세력이 관변단체와 결합해 국가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이런 일이 윤석열 정부 하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다음 대선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한국 극우와 국가의 관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로 인해 관변단체들이 극우 진영의 주도권을 잃게 된 현상은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극우세력이 급부상한 현상과 무관치 않다.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도 교회 내에서 인력과 자금을 자체 동원할 수 있는 기독교 극우세력이 크게 부각된 것은 관변단체들이 힘을 쓰기 힘들어진 상황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1990년대 이후로 일본에서도 정권교체가 잦았지만, 1997년에 일본회의(닛폰카이기)라는 거대 극우단체가 출현한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일본 극우는 탈냉전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 그해에 등장한 새역모(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한일 교과서 분쟁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일본 극우의 역량은 탈냉전 이후에도 시들지 않았다.
대중 속에서 자생할 능력이 취약한 한국의 극우세력은 일본의 재정지원에도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 해외 학술회의 참석에 소요되는 경비까지 지원받는 일이 있다. 일본 극우가 한국 극우를 지원하는 이런 현상은 1990년대에 한국 극우는 약해진 반면 일본 극우는 오히려 강해진 데에도 기인한다.
일본 극우의 인적·재정적 기반이 비교적 단단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정권을 잃더라도 극우세력이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극우가 볼 때는 한국보다 일본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비빌 언덕'이다.
한국 극우세력이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 "(기시다 총리를 향해) 미안합니다, 오염수 방류 괜찮습니다"라며 일본의 국익을 우선 추구하는 모습은 이들의 국내 기반이 그만큼 취약해졌음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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