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머피의 법칙. 따뜻한 한마디면 거뜬하게 날릴 수 있다.
김승재
아내나 친구들의 도움에 고무되어 세상을 만나러 기분 좋게 밖으로 향할 때면, 이상하게도 옆 사람이 들고 있는 음료수병이나 휴대폰이 내 손이나 팔에 부딪혀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머피의 법칙은 언제나 예외 없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엄청나게 그걸 뻥튀기해서 자기에게는 항상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나만의 머피의 법칙이 100%일 리도 없고, 내가 못 보는데도 조심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지 우연히 그런 게 아니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기껏 기운을 북돋웠는데, 어렵게 우울과 절망과 싸웠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 남이 참 중요하다.
"에이, 조심하지. 왜 그렇게 덤벙대."
"뭐 하는 거야? 에이, 아까워라."
"내 이럴 줄 알았어. 지나치게 까분다 싶더니만."
조금도 틀린 소리가 아니고 나쁜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근데 내가 너무 소심해서 그런지 이런 소릴 들으면 정말 심하게 위축된다. 어렵게 다졌던 각오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마음속에선 더욱더 깊고도 어두운 기운이 번져간다. 그 사람이 날 미워한다거나 내 행동으로 맘이 상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아이도 아닌데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한다면, 어쩌면 감정이 아이만큼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답을 하고 싶다.
그럴 때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운이 난다.
"괜찮아? 많이 아프겠다."
"이런, 기운이 너무 넘쳤네. 그래, 그렇게라도 기운 내."
"신경 쓰지 마. 난 괜찮아."
별로 힘들지도 않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아이한테 대하듯 말을 했으면 한다. 아이는 제대로 알지 못해서, 경험도 없어서 실수한 거란 걸 잘 알기에 책망하기보다는 격려해 주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장애인도 실수한다는 걸 이해해 줬으면 한다.
나누면 두 배가 되는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나누면 절반이 되는 슬픔과 괴로움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 슬픔과 괴로움을 털어놓고 싶어진다. 아무리 가상의 눈을 동원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남들의 눈을 빌려 그 그림에 덧칠해 봐도 진짜 내 눈으로 보고 싶단 생각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다.
감정에 반하는 말은 노땡큐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내가 직접 찍었던 아이들의 동영상을 들을 때면 너무도 생생한 그림이 그려지지만, 그래도 보고 싶단 생각이 그만큼 더욱더 간절하다. 좋아했던 영화나 뮤지컬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가서 직접 내 눈으로 봤던 멋진 경치 앞에 다시 섰을 때도 그렇다.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푸를 가을 하늘을 상상해도 그렇고, 화려한 군무를 즐기는 오색의 나비처럼 이리저리 공기까지 물들이고 있을 단풍을 그려봐도 다시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단 생각을 떨치기는 어렵다.

▲어쩔 수 없는 그리움. 때론 슬픔으로 때론 아픔으로 찾아오지만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절반에 또 절반으로 가벼워진다.
김승재
그러다 보면 기분 좋게 잘 있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리고 점점 농도를 더해가는 답답하고도 우울한 그 감정을 떨쳐 버리려고, 그래서 절반으로, 다시 절반으로 그걸 나눠보려고 입 밖으로 내뱉을 때가 있다.
"왜 또 그런 소릴 해? 장애인 올림픽 보니까 팔다리가 모두 없어도 수영을 하더라. 넌 그 사람보단 낫잖아?"
"쓸데없는 소리. 그럴수록 속만 상하지. 이젠 잊어버려."
"너무 알려고 하지 마. 봐도 별거 없어. 네 기억 속이 더 멋있을 거야."
역시 틀린 말이 아니고, 날 공격하는 말도 아니다. 근데 상처가 남는다. 더욱 심하게 조여오는 답답함에 더해 괜히 말을 꺼냈다는 후회까지 한몫한다.
"그렇겠다. 정말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렇지? 나도 또 봐도 좋은데, 너는 오죽하겠니."
"에이, 정말 그렇겠다. 네 눈만큼은 아니겠지만 내가 설명해 줄게. 그러니까, 저기..."
조금씩 더해가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든다. 맘으로 느껴지는 공감에 한두 마디 더 하고 나면 어떨 때는 거짓말처럼 맘속을 가득 채웠던 답답함과 우울함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 상태와 비슷한 말과 행동에 더욱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우울할 때 쾌활한 말이나 슬플 때 기쁜 말과 행동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이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연히 인터넷에서 들었던 우울증 환자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딱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네가 감정을 다스려야지."
"너만 생각하니,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모든 건 생각하기에 달린 거야."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네 심정이 어떨지 잘 알아."
"힘내. 너보다 더 안 좋은 사람도 많아."
아무리 맞는 말이더라도 애써 당사자의 감정에 반하는 말은 노땡큐다. 그리고 누군가와 비교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또 다른 책망이요, 정신적 가해에 불과할 뿐 절대 위로가 되지 못한다.
갑자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장애인들이 항상 이렇게 속이 좁다는 게 아니란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다만 평범한 이 세상과 만나는 게 어렵고 힘들어서 그럴 때가 있다는 거다. 그때 남의 말과 태도가 엄청나게 큰 힘도 되고, 높은 벽도 된다는 얘기일 뿐이다.
아, 그런데 굳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꼰대의 말투보다는 공감 어린 따뜻한 말이 더 좋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