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부터 입기 시작한 방진복을 지금도 입고 있어요.
이봉렬
세계적 반도체 기업에 취업한 비결
마이크론은 미국 회사인데 경력직 매니저를 뽑을 때 최소 학력을 정해 놨어요. 대졸자, 즉 학사 학위를 가진 사람만 매니저가 될 수 있어요. 경력직이 아니라 신입사원이 매니저로 진급을 할 때도 학위가 없으면 아무리 오래 일해도 매니저가 될 수 없어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두 번째 다녔던 회사도 미국 반도체 회사인 모토로라였는데 거기도 같았어요. 학위가 없으면 30년을 일해도 끝내 계장이 마지막이었거든요.
그런데 STM은 좀 달라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유럽 회사라 그런지 여기는 그런 제약이 없어요. 경력직을 뽑을 때 경력과 실무 능력을 위주로 보고 학력은 참고 자료 정도로만 이용해요. 신입사원이 매니저로 진급할 때도 학위가 필수요건은 아니고요. 그래서 저처럼 학위는 없지만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 여러 반도체 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매니저로 채용될 수 있었던 거예요.
얼마 전 기사로 쓰기도 했는데 반도체 회사가 최첨단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어요. 반도체 팹에서 일하는 오퍼레이터나 장비엔지니어의 경우는 고졸자나 전문대졸자들이 대부분이고 그 안에서 인원도 제일 많아요. 그러니 경력 있는 반도체 장비엔지니어의 경우는 학사 학위 없는 사람들이 더 많죠. 학사 학위가 채용의 필수 조건이 되는 순간 숙련된 기술의 인재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죠. 회사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운 거예요. 그래서 마이크론도 저 같이 아까운 인재 하나 놓친 거예요.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요)
싱가포르에 살면서 가끔 모르는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꼭 이렇게 묻더라고요.
"몇 학번이세요?"
전 그럼 늘 77학번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네요)까지가 의무교육이었죠. 그러니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은 했다 치고 그냥 그 해를 제 학번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제가 야간전문대학이라도 가야겠다고 맘먹고 입학했던 1990년의 한국 대학진학률이 얼마일 것 같아요? 한국교육개발원 자료를 보니까 33.2%였어요. 열 명 중 셋 정도만 대학에 갔다는 이야기고 넉넉히 잡아도 제 또래가 만나는 사람 둘 중 하나는 대학에 안 갔고, 학번 따윈 없다는 뜻이에요. 고등학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다는 지금(2021년)도 대학 진학률은 73.7%에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물어요. 몇 학번이냐고. 전 이제 상처에 딱지까지 앉았다가 그 딱지 앉은 자국까지 사라진 상태지만 그런 질문이 상처가 되는 사람 아직 많아요. 그런 질문, 실례예요.
이런 질문, 이런 뉴스, 불편해요
말하는 것도 민망하고 듣기에 불편할 수도 있는 이런 학벌 이야기를 떠올린 건 지난 15일 파리바게트 등 SPC그룹에 빵 재료를 납품하는 한 공장에서 23살 여성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면서예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SPC그룹은 노동자 탄압으로 뉴스에 자주 나오는 기업인데 이젠 탄압을 넘어 인명사고까지 발생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수사와 책임자 처벌 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하는 JTBC는 "단독"이라면서 <"대학 대신 공장 간 딸이"… 20대, 소스 배합기에 껴 숨져>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더라고요.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교 대신 빵 공장을 가야했던 23살 여성 노동자가…"로 시작되는 기사는 "어린 딸이 가장 노릇을 하게 된 게 한스럽다"는 유가족의 말로 마무리가 돼요. 전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기사를 볼 때마다 불편해요.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죽었어요. 그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 말고 그 공장자체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해요.
jtbc 보도 화면
앞서 말했듯이 대학 안 가는 사람 많아요. 그게 가정형편 때문일 수도 있고, 공부가 적성이 안 맞아서 일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공장에서 일하는 고졸자가 뉴스에 나오면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에 못간 것으로 표현을 해요. 못간 게 아니라 안간 것일 수 있는 거잖아요.
이번 사건의 경우는 유가족이 말한 대로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못간 게 맞지만 그게 이번 사건의 본질은 아니잖아요. SPC그룹사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이고, 그건 그 피해자가 고졸 여성이건 대졸 관리자건 똑 같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평소 회사에서 안전관리를 얼마나 형편없이 했기에 이런 사고가 났는지를 밝혀야 할 기자들이 안타까운 사연이라는 걸로 사람들 눈길을 끌려고 하는 게 맘에 안 들어요. 대학 안가고 공장 갔다는 사실을 두고 안쓰러워하는 세상 풍조가 전 불편한 거예요.
공고 다녔고 졸업 전에 취직해서 지금까지 반도체 밥만 30년 넘게 먹으며 딸 둘 키워서 독립시켰고 지금까지 남들에게 욕먹을 짓 안하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누가 "대학도 안 나왔어요? 그 때 가정형편이 어려웠나봐요? 어쩌면 좋아…" 이런 식의 말을 하면 얼마나 가소롭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 주저리주저리 했어요. "다들 대학 정도는 기본으로 나온 거 아냐?" 이런 식의 말, 글, 기사는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21세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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