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팹의 일반적인 모습. 고졸 오퍼레이터부터 전문대졸 장비기술 인력, 대졸 공정기술 인력 등 다양한 역할의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곳입니다.
STM
지난 특강에서 반도체 팹에서 일하는 이들이 모두 반드시 석박사급 인재일 필요가 없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반도체 회사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생산을 담당하는 팹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고졸 오퍼레이터부터 전문대졸 장비기술 인력, 대졸 공정기술 인력이 필요한 인력의 대부분입니다. 팹을 어디에 짓든 거기서 직접 일할 인력은 대부분 그 지역에서 충당 가능합니다. 우수인재 유치를 위해 팹을 수도권에 지어야 한다는 건 허구입니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어 소재, 부품, 장비 회사와 협력하는 게 효율적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아닙니다. 반도체 팹은 하나 하나의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어디에 세우더라도 협력업체들은 기꺼이 따라갑니다. 팹 하나가 세워지면 그 지역 일대에 또 하나의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겁니다. 보르네오섬, 시칠리아섬, 애리조나 사막, 아일랜드, 중국 내륙 도시 등 그 어디에 있는 팹도 외딴 곳에 있어서 협력업체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 운영 못하겠단 이야기는 안 합니다.
반도체 팹을 지방으로 보내자
우수 인재 유치라는 말의 허구성도 말씀드렸고, 팹을 아무 데나 지어도 별 문제없다는 것도 말씀드렸으니 이제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팹을 지을 가장 좋은 곳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곳은 바로 영호남의 원자력 발전소 인근 지역입니다.
발전소가 옆에 있으니 안정적인 전기 공급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온배수 방류를 위해 다들 바닷가에 있으니 팹에서 나오는 폐수가 하천과 호수를 거쳐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이 생략되어 만에 하나 있을 지 모르는 환경 오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인구밀집 지역이 아닌 데다 주변이 아파트나 고층건물로 막혀 있지가 않아 가스 누출 등의 사고가 발생해도 대기 중 확산을 통해 농도를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원전 때문에 개발이 덜 된 곳이라 공장 부지 확보나 송수관 설치 등도 용이하고 산업단지 조성도 가능합니다.
원전 근처에 있는 팹에 누가 가려하겠냐는 말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대통령께서 먼저 나서서 원전이 안전하니 더 많이 운영해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반도체 장비 중에도 방사능을 이용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신 철저한 안전장치를 갖추고 사용합니다. 반도체 팹은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클린룸에서 대부분의 일이 이뤄지기 때문에 원전 근처라고 해도 다른 공장에 비해 영향을 훨씬 덜 받을 겁니다. 원전 근처에 반도체 팹을 지으면 팹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점검이 더 철저해지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팹 하나 건설할 때마다 언론들은 전문가의 분석이라며 수십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수십만의 고용창출효과가 있을 거라며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없애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그런 사회·경제적 효과를 이미 포화상태인 수도권이 아니라 이제껏 수도권에서 쓸 사람과 자원을 공급하느라 황폐화되어 버린 지방에 내려 보내자는 말입니다. 원전 때문에 손해만 보고 있는 지역에 이 정도 혜택을 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꼭 원전 옆이 아니어도 됩니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소외됐던 건 지방 어디든 다 마찬가지니까요. 거기는 풀어야 할 규제는 없고 지원은 진작에 필요했던 곳입니다.
▲유럽 최대 반도체 기업인 XFAB과 STM의 반도체 팹 위치. 여러 나라, 여러 지역에 팹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사고나 자연재해로 인한 영향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STM, XFAB 각 홈페이지
회사의 반도체 팹을 모두 한군데 모아두었다가 만에 하나 자연재해나 대형 사고로 인해 모든 팹이 한꺼번에 영향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 팹이 모여 있는 기흥, 화성 단지에 단 하루만 정전이 발생해도 우리나라 경제가 흔들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외국의 반도체 회사들이 팹을 여러 나라 여러 지역에 나눠서 짓는 건 그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기업을 위해서도 앞으로 지을 팹들은 기존의 팹이 있는 곳을 벗어나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 옳습니다.
임기 시작 3개월만에 20%대로 떨어진 지지율 때문에 걱정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서 향후 건설할 팹을 지방으로 보내서 일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이왕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반도체 학과를 증설하기로 한 마당이니 팹이 들어설 지역의 대학교에 관련 학과를 늘리고 지원을 강화하면 지방대학의 경쟁력도 다시 살아날 겁니다. 젊은이들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고,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겁니다. 온 나라가 고루 번영하는 그런 미래가 그려지지 않습니까? 반도체 인력 양성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대통령, 그럼 지지율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기업의 이익만 대변하는 전문가들 이야기만 듣고 설익은 정책을 뭔가에 쫓기듯이 밀어붙이는 모습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 전체에게 어떤 게 더 이익인지 고민하는 그런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