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 체코 Lenka 오른쪽이 우크라이나 Iryna.
최현정
그때 깨달았다. 체코나 우크라이나 같은 주변국들에게 러시아란 존재를 말이다. 이웃 국가로 침략과 교류와 전쟁과 공생으로 만들어진 오랜 원한이 쌓인 관계라는 사실을. 우리가 일본과의 사이에서 짐작하는 그런 관계구나 생각했다.
그런 깨달음 덕인지,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처절한 저항이 조금은 이해된다. 비교 불가능한 군사력이지만, 그들은 숙명적으로 러시아와의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유럽의 빵 바구니라는 드넓은 흑토 지역에서 1000만 인구가 사라진 기근의 원인이기도 했고, 체르노빌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도 이웃 러시아 탓이다. 뼛속 깊은 분노와 원한을 푸틴은 계산하지 못한 듯하다.
러시아 군 탱크를 막아서는 이들이나 자원입대하는 운동선수, 음악가, 댄서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미스터 션샤인> 의병들이 생각났다.
"그 어떤 나라도 당신들의 투쟁을, 이 작은 나라의 슬픔을 알지 못합니다. 조선의 사정이 외국에 알려지는 것도 의미가 있소."
"이 작은 나라 하나 어찌 되든 세상은 알려 하지 않으나, 우리 전해봅시다. 조선의 주권을 향해 나아가는 두려움 없는 걸음의 무게에 대해서."
"당신이 본 것을 세계에 전하여 알려주시오."
고애신과 유진 초이는 영국 기자에게 일제에 맞서는 조선의 투쟁을 세상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의병들을 설득한다. 허름한 복장에 장난감 같은 무기를 들었지만 형형한 눈빛으로 조국을 지키던 그들이 생각났다.
▲실제 의병들의 모습을 재현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극중 의병들
tvn
이리나가 내게 당부했다.
"많은 이들이 이 전쟁이 자신들과는 거리가 멀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해. 하지만 평화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연약한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쉽게 재앙으로 변할 수 있는지 꼭 알았으면 좋겠어. 이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전쟁이기도 해. 푸틴은 위험한 미치광이야. 나는 또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얼마나 단결하며, 승리하고자 하는지 꼭 알려주고 싶어."
그리고 지금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한계가 있어. 푸틴은 매우 잔인한 사람이야. 국제 사회의 제재로 그를 막을 수는 없을 거야. 아마도 더 잔인해질 거야. 그는 일반 러시아 시민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데 관심이 없어. 핵계획을 가동하기 전에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려돼. 부디, 내 예상이 틀리기 바라."
미국에 사는 우크라니아인의 두려움이 미국에 사는 한국인의 절박함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한반도가 고향인 내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24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를 벌이며 전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022.2.2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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