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협력업체 행동 수칙 첫 페이지. 협력업체가 지켜야 할 노동조건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애플
이 문서에는 "노동 인권, 차별 금지, 가혹 행위 금지, 미성년자 노동 금지" 등 전반적인 노동 환경에 관한 내용부터 "근무 시간, 임금 및 복리후생, 결사 및 단체 교섭의 자유" 등 구체적인 노동자의 권리 등을 115페이지에 걸쳐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았습니다.
후보님은 "주 120시간을 바짝 일하고 이후 쉴 수 있어야 한다", "주 52시간제가 비현실적이다"라며 노동 시간을 탄력적으로 늘릴 것을 약속했습니다. 애플은 해당 문서에 "주당 근무 시간은 초과 근무를 포함하여 60시간으로 제한되어야 하며", "모든 초과근무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정규 근무 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놓았습니다.
후보님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조건 하에서 일할 의사가 있는데 그 분들도 일을 못해서 인력 수급에 차질이 많다"며 최저임금제를 "현실을 무시한 제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협력업체는 최저 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하며 법률 및/또는 계약에 따라 필수로 지정된 복리후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애플이 "법정 노동시간을 늘려 달라, 최저임금을 없애 줘라"고 요구하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님이 "노동자들을 위해 기업들이 노동시간을 지키고 최저임금도 잘 준수하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하는 게 옳은 것 같은데,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믿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무튼 애플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저희 회사도 그 문서를 받았고 그 후로 저희 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 이상의 특근을 없앴습니다. 애플의 요구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거래를 할 수가 없으니까요. 애플만 거래하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니라 노동 착취 기업이라는 평판이 나면 다른 회사와도 거래할 수가 없으니 애플의 요구를 계기로 회사의 규정을 노동친화적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이제 저희 회사에서는 6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은 없습니다. 특근비까지 계산하고 싱가포르까지 일하러 온 노동자들은 임금이 줄었지만, 그 때문에 회사에서는 기본급여를 높여 일정 부분 보상을 했습니다. 그럼 회사는 비용이 늘어서 어려움에 처하지 않았냐고요? 2012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저희 회사 주가는 정확히 8배 올랐습니다. 최소한 저희 회사는 직원들 최저임금 맞춰 주는 것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의 특별한 사례라 여기면 안 됩니다. 애플에 납품하는 회사만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묻지 말기 바랍니다. 시대가 이미 바뀌었습니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마저도 이제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 환경에 최소한의 기준을 자발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사람을 그렇게 부려 먹어서는 안 됩니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라는 말을 들어 봤습니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줄여 부르는 건데, 쉽게 말하자면 기업이 노동자, 지역 사회 및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실천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은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라고 해서 사회적 책임에 환경과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포함하여 기업에 대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무역의존도(국내 총생산에서 수출입총액이 차지하는 비율)가 60%가 넘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CSR이든 ESG든 세계가 요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과연 제대로 수출을 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끌어당겨도 모자랄 판에 최저임금 없애고, 52시간제 없애고, 주당 120시간 근무도 허용해서 기업의 이윤만 추구하겠다는 시대역행적 발언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 하는 건가요?
후보님이 이야기 한 대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받고도 일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일주일 120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그렇게 부려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를 하는 겁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을 아직 법으로 규제를 하지 않은 후진국들도 있어서 다국적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규제를 하는 겁니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만든 최소한의 노동규정 보다 더 형편없는 그런 법제도로 이 나라의 노동자를 대하는 분이 대통령 후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후보님께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 반노동자적 발언만 하는 후보님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대통령으로 당선되신다면, 노동문제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후보님의 노동관으로 미뤄 봤을 때 노동자는 과로사하고 기업들은 수출길이 막히는 그런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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