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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정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쯤 아프리카에서 태동한 뒤에, 대략 7만 년 전 그 일부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유럽으로, 아시아로, 아메리카로 퍼져갔다. 아시아 지역으로 방향을 잡은 인류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대략 동남아시아 쪽에서 시베리아 쪽으로, 즉, 남에서 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주해갔다. 박 교수는 이전의 연구들에서 한국인의 유전체는 이 시기 만주 지역으로 먼저 이주해있던 인류 집단과 이후에 남쪽에서 새로 팽창해 올라온 인류 집단이 서로 섞인 형태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번 연구는 그렇게 형성된 집단이 청동기 문화와 함께 한반도로 대거 이주해왔다는 것과, 이전에 정착해 살고 있던 집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섞이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한반도로 청동기 문화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요하와 황하 지역의 집단, 특히 그들의 청동기 시기의 유전체와 가야인들의 유전체가 가장 가깝다는 사실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이 시기 이 집단들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곳으로 대거 이주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인구가 폭증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가 일어났고 이와 함께 문화의 전파가 일어났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 유전체 연구 전망
박 교수는 가야인들이 유전적으로 다양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했다. 가야인들의 혈통이 청동기 문화와 함께 이주해온 집단과 유사하고, 동시에 조몬인과 같은 다른 계열의 혈통을 일부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서로 섞여가는 형태로 정착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인류는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집단들끼리 마주할 때 '전쟁'의 형태로 상대 집단을 '대체'하고 지역을 차지하는 일도 더러 했지만, 서로 융합해 살아가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박 교수는 이 시기 형성된 "한국인"의 유전체 지형은 이후 고려시기를 전후로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고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동질성을 높여갔을 것으로 가정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대 한국인의 유전체 지형은 대략 10세기 전에 그 형성을 마치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한편, 이번 연구에 함께 한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장용준 박사는 한국의 토양이 산성을 띠는 만큼 인골이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발굴되는 경우가 흔치 않고, 발굴하더라도 DNA가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인골을 학문적 접근 외에 조상이자 보존할 문화재로 보는 문화적인 분위기도 있다며 한국인의 고인골 유전체 연구의 어려움 및 필요성을 강조했다.
인류 고고학적 질문을 탐구하는 일에 인골의 DNA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최근 실험 기술은 인골에 남기는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온 만큼, 앞으로 이 같은 연구가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유전체 지형이 모습을 드러낸 후에도 간헐적으로 다른 혈통과의 혼합이 있었는데, 이 같은 새로운 유전자의 유입은 한국인 유전체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다른 문화권과 얼마나 가까운 교류를 했는지, 그렇게 유입된 유전적 자원이 새로운 병원균이나 여러 환경 조건에서 선조들이 살아남는 데에 얼마나 유용한 재료로 쓰였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유전체를 이해하는데 통찰을 제공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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