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디지털이다>의 저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공동설립자입니다. 그를 포함해, 다수 전문가들이 낙관했던 디지털 세계의 미래는 전혀 다른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Gin Kai/Alfred A. Knopf
20여 년이 훌쩍 흐른 현재,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치열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장이 되었지요. 민족주의뿐인가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사방팔방으로 나뉘어 서로 맹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간혹 이성적인 토론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인터넷 공간을 남을 돕는 이타적 도구나 폭력적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대다수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다준다거나, 온라인에서 토론자들이 다른 견해를 지닌 상대와 열린 태도로 대화하리라는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어쩌면 인터넷에 대한 낙관론은 인터넷에 대한 오해보다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와 태도를 오해한 데서 출발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개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보다 '맞다'고 맞장구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합니다. 여기서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려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가요? 같은 이유로, 사람들에게 정보의 선택권을 주면, 내 견해와 충돌하는 정보보다 부합하고 지지하는 정보를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커뮤니케이션학자 다이애나 머츠는 <반대편에 귀 기울이기>라는 책에서 인터넷이 정치양극화의 온상이 된 이유를 '끼리끼리' 심리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누구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정치 진영 간의 갈등과 대결이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런 성향을 부추기고 증폭시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는 정치인, 뉴스매체, 유튜버, 논객에게도 책임이 돌아가야 합니다.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관심유발이지 정확성, 공정성, 균형이 아닙니다. 이목을 끌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민감한 주제를 골라 '우리 편'과 '적' 사이에 명확한 선을 가른 뒤에, 감정적 언어로 상대편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싸움판이 만들어지고, 사람들과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상대를 통쾌하게 '발라'버리면 금상첨화입니다.
이제 기성 정치인까지 '토론 배틀'이라는 말을 쓰더군요. 토론 '배틀'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냐'는 결과이지, 토론 내용이 아닙니다. 승패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흥행인데, 그런 탓에 상대의 뼈를 꺾거나 심장에 칼을 꽂는 스펙터클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됩니다. 토론은 원탁에서 이뤄지지만, '토론 배틀'은 증오와 조롱의 함성이 가득한 원형 경기장을 무대 삼아 벌어집니다. 인터넷에서 논쟁을 즐기는 사람을 검객에 빗대 '논객'이나 '키보드 워리어'라고 부르는 게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전사들은 '팩트'를 강조하는데, 이들이 제시하는 증거를 들여다보면 부분의 진실이나 맥락을 무시한 정보들을 짜 맞춰 놓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보들을 찾아 엮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위기감, 가짜뉴스의 토양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관심유발이지 정확성, 공정성, 균형이 아닙니다.
Colin
다트머스 대학의 브렌든 나이한(Brendan Nyhan) 교수는 '가짜뉴스'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정치학자입니다. 그는 2020년 <워싱턴포스트>에 '허위정보에 대한 5가지 신화'라는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웹사이트에서 허위정보를 대량소비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성향에 따라 매체를 선택하는 것은 분명하나, 대부분은 널리 알려진 매체에서 뉴스를 얻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이용하는 뉴스 사이트 중에서 출처 불분명한 뉴스를 유통시키는 곳은 6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을 주요 뉴스원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보수 성향 집단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물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얻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용자들의 논평이나 주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한은 가짜뉴스에 의존하는 동기를 '소속감'과 '위기감'의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성적 존재로 보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집단을 이뤄 사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인데, 이때 나와 비슷한 대상과 무리를 짓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무리를 이루고 나면, '내편'에 안정감을 느끼는 만큼 상대 집단에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상황이 발생하면, 평상시 믿기 어려운 정보에도 쉽게 현혹됩니다.
"~가 대통령 되면 광화문에 인공기 휘날릴 것"
"~당의 집권 못 막으면 전쟁 날 것"
"우리가 선거에 못 이기면 나라 거덜 날 것"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에이즈 확산"
허위정보가 긴박한 위기감을 유발하며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야 터무니없는 정보가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편'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동일한 재력, 권력, 이해관계를 나누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집단의식이나 소속감마저 허구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사실은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이펠이 오래 전 실험으로 입증한 바 있습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동전 던지기로 편을 갈라도 소속감을 느끼는 게 사람이니까요.
여기에 '상대편'과 긴장을 유발하는 정보가 유포되면 소속감은 쉽게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뀝니다. 그런 점에서, 허구적 소속감과 위기의식을 털어내는 것은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첫 번째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믿기 어려운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한 구절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아무리 악당이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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