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타고 창덕궁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SK텔레콤의 광고 중 한 장면
SK텔레콤 광고 화면 갈무리
싱가포르의 장애인 이야기를 꺼낸 건 SK 텔레콤이 최근 공개한 광고 하나 때문입니다. "창덕 Arirang" 이름의 이 광고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장온유군이 나옵니다.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에 놀러간 온유군은 휠체어 바퀴가 턱에 걸려서 창덕궁 내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친구들이 힘을 모아 휠체어를 옮기려 하지만 쉽지가 않자 온유군은 쓸쓸한 표정으로 "난 안 봐도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이때 SK텔레콤은 5G와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한 "가이드앱"을 소개합니다. 창덕궁에 들어 가지 않아도 들어간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겁니다. SK텔레콤은 "기술은 단 한 명을 위해 오늘도 더 좋은 답을 찾아"간다고 말합니다. 가이드앱으로 창덕궁을 둘러본 아이들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광고는 끝납니다.
그런데 한국의 수많은 온유군에게 필요한 게 과연 가이드앱일까요? 온유군이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에 들어가는 게 "더 좋은 답" 아닐까요? 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휠체어가 넘지 못한 그 턱에 경사판을 설치하고, 올라가지 못할 높은 계단 옆에 이동식 리프트를 설치해서 온유군도 창덕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장애인들의 물리적 접근성을 높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쯤에서 화면을 맨 처음으로 올려서 싱가포르의 사진만 다시 보세요. 버스를 탈 때 운전기사가 경사로를 만들어 보조해주는 걸 제외하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동하고, 쇼핑하고, 식사하고, 운동하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아직 이 수준이 안 된다면 그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지가 부족해서입니다.
▲싱가포르 길거리의 흔한 벤치 모습. 벤치 옆에 장애인용 휠체어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어디든 장애인을 위한 공간과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봉렬
장애인이 바라는 건 간단합니다. 기술의 힘을 빌려 장애인 개개인이 장애를 "극복"할 게 아니라, 이 사회 모든 곳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높여서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닌 사회, 거리에서 공원에서 회사에서 장애인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 구별없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바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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