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최고위직 법관, 검사 등의 변호사 개업 제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19.4.30
연합뉴스
여기서 속내를 털어놨던 판사들은 그나마 사법불신을 해소하려고, 판사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판사들을 싸잡아서 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게시판에서 어느 판사는 "법원이 전관예우의 문제를 직시하고 직면하지 않는 이상 신뢰는 공염불"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정곡을 찌른 한 마디다.
지난 글(
현직 판사의 한탄 "전관은 왜 돈을 많이 벌까요?" http://omn.kr/1olg1)에서 대법원의 전관예우 설문결과를 소개했다. 법조인 절반 이상이 '전관예우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설문 시점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불행히도 '달라졌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제도를 만들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고, 오히려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방법을 동원한다면 로펌이나 대기업에서 눈독을 들이는 전관들의 몸값은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판사나 검사들은 퇴직 후 기대감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크고 작은 '유혹'에 흔들릴 수도 있다.
판사나 검사가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되면 '전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일반 변호사와 몸값을 비교하는 건 물으나마나 한 소리다. 퇴직 전 직급이 높을수록, '좋은 자리'에 많이 간 경력이 있을수록 그에 비례해 몸값은 올라간다. 물론 실력도 없는데 단지 판검사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느 판사는 "판사 시절 다양한 분야의 재판경험과 기록과 쟁점 파악 능력, 판결문 작성 능력 등을 높게 사는 것이지 단순히 전관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관들이) 좋은 조건을 제시받지는 않는다"는 항변을 한 적이 있었다. 일리는 있다.
전관변호사에게 '능력'이란 무엇일까?
하지만, 변호사의 능력이란 서면 작성이나 법정 변론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법원이나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은 어떤 능력보다 강력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 솔직해지자. 만일 당신이 구속될 처지에 몰려 있고, 금전적 여유가 충분하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어떤 변호사를 구할 것인가. 변론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나, 최신 판례와 법리에 해박한 변호사? 아니면 재판부 판사와 함께 일했거나 친분이 있는 변호사?
아마도 후자 쪽일 것이다. 하다 못해 변호사가 담당판사와 동창이거나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어떤 연이라도 닿는다면 다른 변호사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리라. 만일 변호사가 "판사와 절친한 사이"라는 한 마디만 하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웃돈까지 쥐어줄 수도 있다. 하물며 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지낸 베테랑 변호사라면 말해 무엇하랴. 그런 상황을 아프게 토로한 판사가 있었다.
"형사사건 피고인과 그 가족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이고, 그래서 판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판사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사실 비난하기 어려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그러한 기대는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러한 기대에 기대어 사건을 수임하는 전관변호사들이겠죠." (E 판사)
실제로 전관변호사가 아무런 청탁을 하지 않고도, 법원이 양형기준에 따라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여 의뢰인이 구속을 면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의뢰인은 "역시 전관이 최고구나"라고 감탄하면서 변호사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변호사는 마치 자신의 노력인 듯 으쓱해할지도 모른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각종 연줄로 촘촘하게 이어진 한국사회가 빚어낸 비극이다. 이젠 특단의 조치를 취해서라도 더 투명한 법원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쪽 같던 판사, 변호사 개업 앞두더니
▲전관예우
유창재
법정에서 변호사와 당사자들에게 똑같이 대쪽같이 대하던 판사가 있었다. 그는 재판에서 원칙과 어긋난 요구를 할 때는 변호사든 피고인이든 그 누구에게라도 추상같이 호통을 쳤다. 반대로, 동료 판사와 직원들에겐 깍듯한 예의를 갖추고 빈틈없이 일처리를 해서 다들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부턴가 평소와 달리 법정에서 변호사들에게 눈에 띄게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재판순서와 재판날짜를 배려해주고, 증인신청도 다 받아주었다. 의아해하던 내게 어느 직원은 "소문 못 들었어? 그 판사님 개업준비 중이라는데"라고 귀띔해주었다. 몇 달 뒤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변신했다.
일상에선 판사와 직원들에 겸손하고, 업무는 꼼꼼하고, 법정에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던 판사가 변호사가 된 뒤 돈과 권력의 유혹에 빠져서 180도 달라지는 모습도 종종 본다. 안타깝고 씁쓸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최유정 전 부장판사이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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