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4 07:14최종 업데이트 23.12.1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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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COP28 의장인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가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당사국총회)의 28차 두바이 회의(COP28)가 진통 끝에 폐막했다. 당사국총회는 기후변화에 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 이하 '기후변화협약')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최고 결정 기관이다. 1995년부터, 코로나 팬데믹으로 취소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지역별로 순회하며 열리고 있다.

아시아 그룹 순번에 따라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개회 전부터 논란을 안고 시작했다. 지난해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 이어 올해는 두바이, 내년에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대회가 예정돼 있다. 권역별 순번 대회임에도 근접한 이슬람 국가에서 연이어 세 번 열리는 것은 이상적인 모양새는 아니었다.


최근 수년 기후변화의 집중 피해 지역이 저개발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아닌 지역에서 개최되는 것은 주목을 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기후변화의 주 피해 대상은 아니다. 선진국들이 환경 위기에 크게 노출된 저개발 국가의 총회 주관을 지원한다면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협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주관 당사국회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다
 

인도의 환경운동가 리시프리야 칸구잠(12)이 지난 1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회의장에 난입해서 화석 연료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총회를 앞두고 특히 석유 강국 아랍에미리트가 주관하는 기후변화회의가 어떤 모습일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화석연료를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 억제에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의심의 눈초리가 기우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폐막에 즈음해 작성된 합의문 초안에서부터 핵심 사안인 화석 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빠진 것이 알려지면서 각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합의문 초안을 작성한 의장국 아랍에미리트는 사전에 공유된 문서에 들어있던 이 문구 대신 '석유·석탄·가스의 생산·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대신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물론, 기후변화의 직접적 피해 위험 국가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석유수출기구(OPEC)의 요구를 또박또박 받아 쓴 것 같은 초안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 측에서는 협상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으며, 국제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산업계의 로비를 의심하고 있다.

결국 예정된 폐막일을 하루 넘기는 진통 끝에 최종 합의문이 도출되긴 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최종 합의문에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out)'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 대신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라는 모호한 표현이 등장했다. 

이번 총회는 한마디로 석유강국들의 전방위적 입김에 의해 '오염된 기후변화회의'였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실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번에 참가한 회원국 대표들에게 화석연료가 표적이 되는 문구가 담기는 합의는 거부하라는 서한을 공개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COP28 두바이 총회에 대한 우려는 앞서 회기 중에도 불거져 나왔다. 이번 총회의 의장을 맡은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Sultan Ahmed Al Jaber)는 국영 아부다비 석유공사(ADNOC)의 최고경영자다. 한 인물의 직위가 그의 의지에 대한 의심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일련의 행위를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게다가 그는 아랍에미리트 산업기술부 장관을 겸임하면서 기후변화 특사직까지 맡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직책의 겸임이 성공적으로 가능하다면 아랍에미리트는 모범적인 환경정책 수행 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회 즈음에 그가 보여준 언사들은 국제환경회의 의장이라기보다 화석연료산업 로비스트에 가까웠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기후를 바꾸는 여성들'이라는 행사에 참석한 알 자베르는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전 대통령의 '화석연료 퇴출에 앞장설 의향이 없는지'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로 지구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유지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와 과학의 관계는 단순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관련 기사: 
환경의 저주... 윤석열 대통령은 여기에 답해 보십시오https://omn.kr/25eb2) 1992년 만들어진 '기후변화협약'은 기후변화에 관여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극도의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협약 문서는 오히려 화석연료와 지구온난화 관계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의 '근거 없음'을 내포하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의 의미, 그리고 가능성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지난 5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기후변화협약'은 인간의 산업활동이 기후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에 준하는 협약을 맺어 모든 나라(당사국)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54개국이 서명한 이래 당사국 총회를 28차례 거치는 동안 내용이 수정되고 추가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많은 회의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당사국 총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는 산업화에 따른 대기오염에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주도적 노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들이 협약 내용을 이행하기 어려운 산업 조건과 재원능력을 가질 때, 환경정책이 이들의 빈곤 퇴치에 모순되지 않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결과가 지금의 협약 내용이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3차 당사국총회(COP3)는 기존 협약에서 제시한 탄소배출량 안정화 계획이 불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른 대응으로 열렸다. 당시 만들어진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부속서 1(Annex I) 범주 국가들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토의정서 성과 가운데 하나는 '교토 메커니즘'이라 불리는 일련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해 당사국 간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선진국 '갑'이 개도국 '을'의 배출감축 계획을 도와 자국의 추가 배출권을 얻는다든가, 목표 미달성 국가와 초과달성 국가 간에 배출권을 거래하는 등의 방식이 그것이다.

이처럼 국가 단위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전지구적 공동대응으로 해결하도록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은 지구환경계획의 구체적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교토 메커니즘을 통해 당사국총회는 환경정책이 경제정책과 시너지를 이룰 수 있고 온실가스 감축이 수익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물론 교토의정서에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국제법의 특성상, 조약 탈퇴를 하는 국가에 대해 제약할 방법이 없다. 최대 탄소배출국가인 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은 의무규정에 반발해 의정서에 대한 비준 자체를 하지 않았다. 에너지가 기간 산업의 주축을 이루는 캐나다 역시 2011년 보수파 스티븐 하퍼 정권 하에서 협약을 탈퇴하고 만다.

교토의정서 이후 기후변화협약의 가장 큰 분기점은 2015년 파리에서 열린 COP21 총회다. 교토의정서의 강제적 규범 원칙이 당사국 이탈을 불러 일으키는 단점이 있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 대회에서 합의된 것이 '파리협정'이다. 법적 구속력보다 자발적 목표 설정이 교토의정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2015년 당시는 이미 대체에너지 분야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해서, 새 경제성장의 동력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따라서 환경정책이 탄소배출 감축과 같은 소극적 대응뿐 아니라 대체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적극적 대응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탄소배출 감축이 비용 지출만이 아니라 투자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인류가 얻은 것도 파리협정이 탄생한 배경이 됐다. 물론 기존의 탄소배출 감축 계획이 모두 성과 미달이 되고 있다는 위기의식 또한 당사국들의 자발적 참여를 견인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파리협정에 근거해 온실가스배출 감축에 합의했다(미국은 트럼프 정권에서 파리협정을 탈퇴했다가 바이든 정권 들어서 다시 복귀했다).

역설적으로 이번 두바이 COP28에서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이 과거와 다른 이유로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비치기도 했다. 앞서 말한 의장국 아랍에미리트가 제안한 합의문 초안이 너무 빈약하다는 이유였다.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합의문은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대한 '사망진단서'라는 것이다.

과연 COP28 두바이 총회는 실패로 기록될 것인가. 의장국 아랍에미리트의 실망스러운 행보와 대조적으로 기후변화협약 역사의 꾸준하고 구체적인 진보와, '탄소배출대국'들의 변화된 경각심은 향후 당사국총회의 전망을 그나마 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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