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국법회2023년 6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시국법회 2차 대구 야단법석’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발언을 하는 행운 스님.
행운스님
합기도 관장이 스님이 된 까닭
행운 스님은 거침이 없다. 정권 비판은 물론, 불교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왔다. 총무원장 직선제 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나 조계종단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가 재판을 통해 원상회복한 사례가 그의 강직한 성품을 잘 말해준다. 이런 까닭에 그에게 강성 이미지가 있지만, 출가 후 행적을 보면 공부하는 학승의 면모가 짙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출가하게 된 과정을 들어보았다.
"출가하기 전에 전북 고창에서 합기도 관장을 하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던 때였는데, 저는 토요일만큼은 아이들에게 주먹질하는 걸 가르치기보다는 강사를 모셔와 에어로빅을 한다든가 스님을 모셔서 정신적으로 유익한 강의를 듣는 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때 스님들로부터 도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고, 친해진 것이 제가 출가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고창 선운사에서 태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7년 계를 받았어요."
행운 스님은 출가한 후 승가대에 가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한다. 그리고 승가대를 졸업하자 1992년 훌쩍 미얀마로 떠나게 된다. 미얀마에서 공부하고 온 스님으로부터 위파사나(insight, 통찰이라는 의미)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간 것이다. 미얀마에 가서 무엇을 배웠을까.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미얀마에서 수행하고 온 스님들과 교류하면서 이것이 위파사나 수행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위파사나 수행법은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수행법은 경전에 근거해서 하는 것으로 앉는 수행과 걷는 수행을 겸해서 합니다. 1시간 동안 앉아서 집중력을 개발하고 1시간을 걸으면서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하루에 14시간씩 합니다. 자신의 몸의 호흡을 관찰하고,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번뇌 망상 등을 관찰하고, 이를 극복해 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위파사나 수행을 위해 미얀마로 떠난 행운 스님은 이어서 미국 일본 대만 등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불교 체험을 하게 된다. 스님의 구도 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미얀마에서 가서 하루 14시간씩 집중적으로 위파사나 수행을 했는데, 1년 반 정도 되니까 진이 빠지고 체력이 달려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얀마에서 수행할 때 영어로 대화하고, 질문하고, 교재도 봐야 했기 때문에 영어도 익힐 겸 미국에 간 것입니다. 미국에선 워싱턴에 있는 '라오스 절'에서는 태국식 염불을 배웠고, '스리랑카 절'에서는 스리랑카식 염불을 배웠어요.
3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는 일본과 대만으로 갔어요. 일본에선 1년간 시즈오카에 머물면서 일본어를 배웠고, 그곳이 마침 녹차로 유명한 곳이어서 녹차에 관해서도 공부를 좀 했습니다. 대만에서도 1년 정도 살면서 대만사범대학에 중국어를 배우러 다녔고요. 이때 한 학기 동안 전각을 배웠습니다. 원래 전각은 돌에다 자기 이름이나 호를 파서 작품에 도장처럼 찍는 것입니다만, 저는 글씨보다는 그림을 전각으로 파는 공부를 많이 했어요. 이렇게 여러 나라를 드나들면서도 중간중간에 미얀마에 가서 위파사나 수행을 계속 공부했습니다.
사실 불교 경전에 있는 내용을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거든요.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죠. 이렇게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수행을 하다 보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어서 끄트머리까지는 못 가더라도 처음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좀 이해하게 된 것이 해외 생활을 통해 얻은 수확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