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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7일) 오후 3시. 뙤약볕이 내려쬐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 파리광장 앞에서 독일 교민들이 뭉쳤다. 서울의 2만5000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30여명이 모인 소박한 모임이었지만, 이들도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정원을 바로 잡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실제 시국선언에 서명한 독일 교민들은 총 138명이다).

이날 최고기온은 영상 34도. 독일인들도 부채를 들고 더위를 식혀야 하는 날씨였다. 게다가 베를린의 경우 북위 52도에 놓인 지역이라, 오후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일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울과 같은 야간집회가 사실상 어렵다. 또한 타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을 배려하여 잡은 시간이 오후 3시. 더군다나 집회가 허용된 시간은 오후 5시까지였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을 쪼개서 전국 각지에서 달려왔다. 더운 날씨에도 그들은 현 한국의 정치상황을 독일인들에게 알리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우선 재독 한국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베를린리포트'에서 시국선언을 주도하신 서혜경(48) 씨는 금요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오펜바흐(Offenbach)에서 548km를 달려서 베를린 집회에 참석하셨다. 아래가 서혜경 씨의 서두 말씀.

"저는 신문에 제보를 한 경험이 없었던 데다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 언론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국정원 댓글사건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서 너무 실망했습니다. 국정조사가 시작되었지만 지지부진합니다. 언론, 검찰, 재판부, 입법부의 조사도 지지부진하고요. 이들이 조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누가 지켜야 합니까? 저는 총체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 가슴이 아파 개인적으로 여러분들께 묻고 싶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국민들이 모두 진실을 알 때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녀는 네 자녀의 어머니이며, 평범한 약사이다. 시위 혹은 시국선언을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가 베를린리포트에서 이를 준비한 이유는 국민들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진실이 묻혀가는 모습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 독일 동포 시국선언을 주도하시고 준비하신 서혜경(48)씨 그녀는 네 자녀의 어머니이며, 평범한 약사이다. 시위 혹은 시국선언을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가 베를린리포트에서 이를 준비한 이유는 국민들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진실이 묻혀가는 모습을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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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독일어로 된 시국선언문을 유정숙 박사님이 낭독하신 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제창하였다. 다음은 각각 개인이 자유발언을 하였는데, 남녀노소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저는 독일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국정원 사건으로 인해 국민은 분열되고 남북갈등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선거 때 국정원이 개입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제가 독일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베를린 유학생입니다. 저는 베를린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었지요. 하지만, 그곳은 인적이 뜸한 지역입니다. 고민하던 찰나 베를린리포트에서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같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정권에서 언론을 억압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리고 부당한 사건은 시민들이 당당히 알리는 용기가 필요하지요.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 국민들이 되찾읍시다."

"베를린 생활 25년차의 평범한 시민이자 주부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이 보는 팩트TV, 고발뉴스, 망치뉴스, 국민TV 등을 통해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눈에 띄었던 분은 20대 독일 청년 장 피에르(Jean-Pierre)씨. 한국 문화 및 정치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다. 그도 역시 앞에서 당당히 자유발언을 했다.

"저는 남북이 다시 화해해서 독일처럼 서로 왕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현재 일어난 국정원 댓글 사태에 대항하여 한국 국민들은 거리로 나가야 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자유발언 및 언론은 정부 권력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지만, 이 상황을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오늘부터 독일과 한국이 다 함께 이에 저항합시다. 대한민국!"

독일인들이 생각하는 국정원 사태

여기에 관심 있게 바라보는 독일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받아본 독일인들은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50~60대로 보이는 독일 분은 시리아, 터키 및 브라질 시위사태에 대해서 깊이 숙지하고 계셨다. 또한 알렉산더 광장으로 가서 미국의 불법도청 및 독일-미국 간의 정찰기 거래 스캔들 규탄대회에 참석한다고 언급하셨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구조에 대해서는 전무하다고. 대신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심하게 비판하셨다. 사실 북한 정치 상황은 독일 언론에서 다루는 단골 메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독일의 주요 방송국도 우리나라 지상파를 주로 참조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지상파가 촛불집회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고 있어, 주요기사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 또한 미국 국가정보부 도청 및 정찰기 스캔들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다만 슈피겔지와 3sat라는 방송에서 이를 간략하게나마 다루긴 했다.

시위 참가자 중에는 독일인도 있었다. 성함은 유르겐 페겔러(Dr. Jürgen Fegeler)씨. 그는 국정원 사태의 독일어 요약본을 나눠주며,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 중 관심을 보인 두 청년이 있었는데, 야세민 프로이스(Yasemine Preuß)와 케어스틴 나에페(Kerstin Naefe)씨인데, 둘 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특히 야세민씨는 아리랑 TV와 K-Pop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번 7월부터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수강하고 있다.

왼쪽의 두 젊은 여성은 야세민 프로이스, 케어스틴 나에페 씨. 오른쪽 흰 옷을 입으신 분은 홍보담당 유르겐 페겔러 박사
▲ 독일인들에게도 홍보를... 왼쪽의 두 젊은 여성은 야세민 프로이스, 케어스틴 나에페 씨. 오른쪽 흰 옷을 입으신 분은 홍보담당 유르겐 페겔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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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태에 대해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자, 독일 언론에서 언급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전단지를 읽어보고 나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고, 한국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가기관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장 피에르씨의 경우 기타연주를 했던 이용혁(26)씨를 통해 서로 탄뎀 파트너(Tandem Partner: 다른 언어를 서로 가르쳐주는 언어 교환공부 파트너)로 만나면서 한국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한국 정치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일 언론과 비교해서 한국 언론은 어떠한가라고 물어보니, 지상파 방송은 현 정부에 대한 비판 기능을 상실했고, 시민들의 자유의견은 방송이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언급했다.

독일 원로 교민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

한글 시국선언문 낭독이 끝나고, 독일인들에게 홍보하는 도중 유정숙 박사(60)와 인터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유신 시절 당시 정부 반대시위에 참가하다가 정보부에 잡혀가 조사받았었다. 이번 국정원 사건을 보고 옛 기억으로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유신시절 반독재시위에 참여했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브레멘의 '여성의 집(Frauenhausbewegung)'에서 여성인권보장에 힘쓰고 있다.
▲ 독일어 선언문을 낭독한 유정숙 박사(60) 그녀는 유신시절 반독재시위에 참여했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브레멘의 '여성의 집(Frauenhausbewegung)'에서 여성인권보장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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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정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름만 바뀐 정보부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안타까웠습니다. 게다가 국정원이 개입해서 적은 표차로 이겼지 않습니까? 국정원은 부인합니다만 대통령의 직속기관이지요. 물론 독일도 총리 직속기관으로 동일합니다. 그런데 직속기관의 장으로서 책임을 안 진다면 그럼 뭐 하러 대통령을 한다는 겁니까?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여서 피를 흘린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살리고, 친일파를 청산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우여곡절의 시절을 보낸 유 박사는 1985년에 보쿰 대학의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독일 에큐메니컬 재단에서 민주 운동가에 대한 지원이 있어서, 학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 독일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6월 항쟁, 노태우 대통령 방독 때는 독일 유학생들이 본에 모여서 시위를 하셨단다.

"중앙정보부의 역사를 이어가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한국의 정치문화가 땅에 떨어져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미안한 것도 많아요. 우리 세대의 문제를 물려준 것도 사실이거든요. 물론 윗세대들까지 더 올라가지만 이들만 탓할 수 없지요. 사회가 바르지 않으면, 불평등과 같은 문제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이를 바르게 하기 위해 용기를 내십시오."

독일 교민 138명을 대표해 시국선언합니다.
 독일 교민 138명을 대표해 시국선언합니다.
ⓒ 이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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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국선언, #독일,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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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독일에서 통신원 생활하고, 필리핀, 요르단에서 지내다 현재는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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