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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듯한 날씨가 계절을 여름으로 되돌려놓은 듯 하더니만,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가을비가 겨울을 재촉하듯, 계절을 앞당겼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맑고 푸르른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이고 밤 공기의 유쾌함도 맑고 가벼운 향기를 발산합니다. 울릉도를 포함한 지방에선 폭설소식도 있지만, 연일 계속될 화창한 날씨가 좋습니다.

한편, 태풍이나 폭우 등 큰 피해의 폭풍우 한번 없이, 지난 여름부터 깔끔하기만 했던 날씨 덕분에, 올 가을의 벼 수확과 가을 과일들의 결실, 그리고 가을 채소들까지 유례없는 대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좋아하거나 웃을 수만은 없는 사실은, 이런 풍년의 결실이 경기의 불황과 맞물리면서 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졌다는 가슴아픈 현실과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입니다.

심지어 농가수확의 현장에서는 각종 채소나 과일들을 그냥 갈아업거나 베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튼실하고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해놓고도 수확하지 못하는 농부들의 가슴아픈 현실이, 우리 소비자들까지도 참 암울하게 만드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소 우울하게 표현된 가을 풍경화로 이 기분을 함께 달래보려고 합니다.

자연주의 화가, 테오도르 루소가 사랑한 퐁텐블로 숲의 늦가을

미술사에 있어서 '자연주의(Naturalism)'는, 자연과 전원 생활을 사랑했던 화가들이 파리 근교에 있는 퐁텐블로(Fontainebleau)란 이름의 숲 어귀에 있던 바르비종(Barbizon) 마을에 모여 머물러 살며 풍경을 주로 그렸기에 '바르비죵파(Barbizon School)'라고도 불리웠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의 성향을 말합니다. 이는 후에 사실주의적인 근대 풍경화로 탄생합니다.

다시 정리하면, '바르비종파(Barbizon School)'란 19세기 중엽, 직접 야외에 나가 대자연 속에서 풍경화를 그렸던, 프랑스에서 활동한 근대 풍경화가의 집단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르비종은 프랑스 중북부 파리분지 중앙부에 있는 일드프랑스주(Iil de France), 센에마른의 퐁텐블로 숲 근처에 위치해 있는 마을의 이름입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바르비종은 시골에 있는 작은 마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당시의 파리에 전염병인 콜레라가 유행합니다. 이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파리를 떠나 가족들과 함께 이 곳, 바르비종으로 이사온 두 화가가 있었습니다. 즉 피에르 에띠앙 테오도르 루소(Pierre Etienne Theodore Rousseau, 프랑스, 1812-1867)와 장 프랑수와 밀레(Jean-François Millet, 프랑스, 1814-1875)에 의해, 바르비종은 근대 미술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바르비종파의 근원지로 그 운명이 바뀝니다.

오늘은, 그 바르비종(Barbizon) 마을 근교,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의 우울한 풍경을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는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 French, 1812-1867)의 가을 풍경그림 6점을 모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래 작품들은 반드시 모두 클릭하여 큰 그림으로 감상하시고, 컴의 첫화면이나 누리방(블로그)의 배경그림으로도 활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다음 감상하시면 더 실감나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던 루소

루소에 대한 약력을 간략하게나마, 먼저 소개합니다. 루소는 1812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4세 때부터 친척인 포 드 생마르탱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혼자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베끼는 방법으로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1820년대에 들어선 당시부터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기발한 발상이었으며,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통에서 벗어난 그의 화풍은 살롱전(the Salon)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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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츠(Don Kurtz)가 제공한 루소의 초상 .
ⓒ Don Ku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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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신고전주의 전통에 속해 있었던 스승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가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리처드 파크스 보닝턴(Richard Parkes Bonington, 영국, 1802-1828)이나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영국, 1776-1837)과 같은 영국 화가들의 작품을 광범위하게 연구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계발하기도 하였습니다.

1933년 퐁텐블로에 방문한 루소는 바르비종의 계곡에 정착하여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 곳에서 작업하고 있던 자연주의 화가들, 장 프랑스와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와 쥘 뒤프레(Jules Dupré, 프랑스, 1811-1899),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 찰레 프랑스와 도비니(Charles-François Daubigny, 프랑스, 1817-1878) 등과 교류하며 작품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1848년의 영국혁명 이후, 살롱에서도 프랑스 풍경화에 있어서 루소를 중요한 화가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1855년에 있었던 세계 박람회(the Universal Exposition)에 출품되었던 그의 작품이 알려지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으며, 1867년에는 그 박람회에 미술 심사원 의장으로 초청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해 12월 12일, 루소는 마침내 그가 살던 바르비종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과 작품들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충분히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화가라 할 수 있습니다.

바르비종의 동양적인 여유로움과 평화를 사랑했던 루소

이 가운데 앞에서 소개한 적도 있는 코로의 풍경화는 은회색의 부드러운 색조속에 평화로운, 마치 추억의 베일에 싸인 듯 시정높은 자연의 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한편 밀레는 코로에 비해 한층 더 사실주의적인 화가로 농민생활을 전원풍경과 함께 조화롭게 담아냈습니다. 밀레의 그림은 어떤 가식도 없거니와, 깊은 인간적인 공감과 종교적인 경건함이 베어 있습니다. 이 기회에 앞에서 소개했던 두 화가들의 그림들도 함께 비교해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루소의 그림과 초기 풍경화는 자연을 거칠고 불규칙하며 난폭한 힘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은 프랑스의 유명한 낭만파(Romanticism) 화가와 작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고요하면서도 이상적인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풍경화라는 평가도 받았으며, 잘 짜여진 직물같은 구도와 섬세한 붓질은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전조가 되기도 합니다.

위 코로나 밀레의 그림에 비하면 루소의 작품은 퐁텐블로 숲 어귀의 풍경을 계절에 따른 빛의 변화와 그 변화의 오묘한 색채를 섬세하면서도 정감있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우주 속 어머니의 대지 안에 들어와 있는 듯, 태아로 되돌아가 어머니의 양수에 들어와 있는 듯, 동양적인 여유로움과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테오도르 루소 그림의 특징을 들자면, 위에서도 볼 수 있는 숲 풍경, 특히 퐁텐블로 숲 풍경이나 농촌의 아름다운 정경을 주 소재로 담아내고 있으며, 코로와 마찬가지로 그의 화폭 안에서는 자연이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자연의 살아 생동하는 느낌을 부드러운 빛과 평온한 색채로 표현하였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아래 그림에서도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Oil on panel, 1860,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바위에 난 떡갈나무(The Oak in the Rocks) Oil on panel, 1860,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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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panel, 1857,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숲 안쪽에서 바라본 풍경(Forest Interior) Oil on panel, 1857,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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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paper, 1848-50,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퐁텐블로 숲 어귀(Edge of the Forest of Fontainebleau) Oil on paper, 1848-50,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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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대 이후, 서유럽의 풍경화 전통은 종교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세 미술에 있어서 에덴 동산이나 갈릴리 바다와 같은 성서의 주제는, 엉성하기는 하여도 배경에 최소한의 풍경을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15세기부터 화가들은 개인적인 연구의 목적으로 야외에서 직접 자연을 스케치하였으나, 18세기 말까지만해도 대부분의 작품들이 작업실에서 완성되었습니다.

화가들은 이렇게 풍경화를 통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환경의 물리적인 모습을 기념하고 찬미해왔습니다. 풍경화는 도시의 산물이었으나, 사람들은 실내에서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풍경화를 구입하며, 가볼 수 없는 곳도 가본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풍경화가들은 신의 창조를 모방해 그림으로 그린 장소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야외에 직접 나가 숲과 나무에 떨어지는 빛의 조화를 묘사

특히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사계절의 순환과 계절에 관련된 야외활동을 그림으로 그리는 시각적인 전통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오랫동안 회화에서 계절은 뚜렷한 의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봄은 "새와 꽃, 사랑의 계절"이었으며, 여름은 "더위와 수영, 숙성과 완숙의 시기"였습니다. 가을은 "포도 덩굴과 결실, 그리고 쇠락의 시기"인 반면, 겨울은 "추위와 눈, 얼음 지치기의 계절이자, 죽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특히 위 루소의 세 작품은 화폭 전체에 빽빽한 숲의 나무들과 빛의 조화를 묘사하고 있어서, 감상하는 독자(관객)로 하여금 실제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 깊고 평안한 느낌을 줍니다. 날이 더 추워지면서 약한 바람도 살을 에는 칼바람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루소의 이런 숲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왠지 고요하고 더 평온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다소 우울하면서도 무척 푸근한 풍경들입니다.

미세한 빛의 명암과 격정적인 열정이 느껴지는 붓질이 신비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양을 미세하면서도 작고 큰 여러 점으로 묘사한 표현법이 고독한 천재, 앙리 에드몽 크로스(Henri  E  Edmond Cross, 프랑스, 1856-1910)의 점묘법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림입니다. 이 기회에 앞에서 소개했던 그의 그림들을 비교하여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Oil on cradled panel,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퐁텐블로 숲(Forest at Fontainebleau) Oil on cradled panel,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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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panel,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휴식처(Coucher De Soleil) Oil on panel,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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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paper, 1848-50,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퐁텐블로 숲 어귀(Edge of the Forest of Fontainebleau) Oil on paper, 1848-50,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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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비종파는 프랑스 근대 풍경화가들의 단체로,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이며 오늘 그림의 주인공인 루소와 종교화가로두 불리는 밀레가 그 중심의 축을 이루었습니다. 루소와 밀레는 바르비종파 풍경화가들의 지도자였습니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딴 바르비종 미술학교를 이끌었으며, 자연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이에 근거한 풍경화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바르비종 마을에는 오늘날까지도 수 많은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화실과 화랑이 남아있으며 거리 곳곳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과 관광객, 주말을 맞아 이 곳을 찾는 파리 시민들로 북적입니다. 바르비종파가 활동했던 당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지만, 사랑했던 화가들이 모여들었던 곳인 만큼 마을 곳곳에는 아직까지도 자연과 전원생활의 여유로운 매력이 남아 있습니다.

쇠락의 시기, 결실을 마무리짓는 가을 풍경화

숲과 연못, 커다란 바위들을 조화롭게 포착해낸, 위와 같은 드라마틱한 풍경을 보면 바르비종 파 화가들이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와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그리며 느꼈을 기쁨을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황혼녘, 퐁텐블로 숲 어귀의 풍경들이 스산하기보다는 포근하고 무척 평화로워보입니다. 울타리도 방패막도 없는 숲은 뭇 동물들의 안식처처럼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뒷배경이 되는 하늘을 2/3 가량 넓고 충분하게 공간을 나누어 구성하였으며, 나무와 사람, 소의 주인공들을 그 공간 안에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깊이있는 아늑함 속에 들어와 있는 평안한 느낌을 제공합니다. 황금빛을 비롯하여 갈색과 암녹색의 그림자가 진 검은 명암까지 단일 계통의 흑백 명암을 보는 것처럼 통일된 색채를 조화롭게 활용하여 안정감을 더하였습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숲의 낮은 습지에서 소들이 시냇물을 마시며 갈증을 달래는 모습이나 황금빛 찬란한 노을을 배경으로 묵묵히 밭을 갈고있는 농부와 소의 모습은 마치 한 가족처럼 다정해 보입니다. 또한 위 풍경들은 마치 황금빛 노을을 통해 다시 살아난 듯 보입니다. 이렇게 루소는 매우 고요하고 풍요로운 자연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처럼 빛나는 전원풍경은 본질적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상과 같이 루소는 단순한 풍경이 아닌 살아 숨쉬는 자연의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루소는 위 그림들을 통하여 밀레의 그림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경건하고도 종교적인 서정을 담아냈으며, 비물질적, 정신적인 세계나 신의 세계를 물질적인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관객)의 마음을 먼저 바르비종으로 불러들여 저절로 고개 숙이게 만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르비종, #퐁텐블로, #풍경화, #자연주의 ,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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