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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비만 그들의 기아> 책표지
 <우리의 비만 그들의 기아> 책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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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하루 세 번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이다. 전라도에서는 '끄니'로 쓴다. 멋대로 어원 분석을 해본다.

먼저 '끼니'. '낀+이'로 보면 어떨까. '끼어 있는 사이사이 먹는 일'이라는 뜻풀이가 가능하다. 다음은 '끄니'. '끊+이'로 나눌 수 있겠다. '중간중간 끊어서 먹는 일'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대여섯 시간씩 사이를 끊어 두고 먹으니 그럴 듯하다.

끼어 있는 사이사이든 중간중간 끊어서 먹든 매 끼니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런저런 이유로 한두 끼 걸러 본 사람은 안다. 그때 이는 짜증(?)과 고통(!)이 얼마나 사람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지.

한두 끼 거르는 일은 그나마 양반이다. 끼니 사이사이가 길게 끊긴 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결식 인구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에도 적지 않다. 결식아동(1일 1회 이상 끼니를 거르는 18세 미만의 자) 수가 얼마나 될까. 개념 특성상 정확한 통계를 찾기는 어렵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체로 최소 15만 명 전후로 나온다. 방학 중 결식아동 수는 훌쩍 늘어나 대략 30~50만 명으로 잡힌다.

한편에선 굶주림, 다른 한편에선 비만

굶주림을 끼니처럼 겪으면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기아 인구다. 기아 인구는 전 세계 9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100명 중 약 16명꼴이다. 상당한 숫자다.

통계적으로 세계 인구는 1인당 필요량 이상의 식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식량 생산도 인구보다 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전 지구적인 수확량은 전 지구인의 칼로리 공급에 필요한 것보다 2분의 1이나 많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결식과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개발도상국 인구의 약 75퍼센트에게 식량문제는 먹을거리 부족과 관련된다.

그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식량문제로 고심한다. 잘 사는 서구 선진국들의 비만문제다. 이 나라들에서는 매일 세계의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식량이 내버려지거나 썩히고 있다고 한다. 식량의 최대 50퍼센트, 양으로 2000만 톤이나 된다.

한편에선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에선 너무 많이 먹어 비만으로 힘들어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전 세계적인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까. <그들의 비만 우리의 기아>가 다루는 문제들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파트너십 안에서 혁신적인 식량 정책을 실행하고, 의무를 더 효율적으로 이행하고, 지속적인 협력을 펼쳐나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세계 식량안보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레시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식량안보는 복합적인 사회 시스템의 일부분입니다. 그 시스템 안에서 많은 정치적·경제적·생태적·사회적 요소들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식량문제를 위해 국가적·국제적 주체가 어떻게 해서 공동 목표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11쪽)

기아문제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영양 부족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손실은 두말이 필요 없다. 저자들에 따르면 기아로 인한 영양 결핍은 유전되기도 한다. 저체중 출생아가 대표적인 예다. 개발도상국 신생아의 평균 16퍼센트가 출생체중이 2500그램 미만의 저체중아다. 아시아는 그 비율이 18퍼센트로 가장 높다.

기아와 영양부족의 원인은 다양하다. 눈길을 끄는 점은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밀, 쌀, 옥수수)의 47퍼센트만 직접적인 영양원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52퍼센트는 연료나, 육류를 얻기 위한 곡물사료용으로 활용된다. 사람 '먹이'가 자동차 연료구와 가축 입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인구 성장도 식량문제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독일 세계인구재단에 따르면, 2024년경 세계 인구는 80억 명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한다. 2050년경에 약 95억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렇게 되면 소득 증가를 통한 식량 수요 증가와 식습관 변화 때문에 현재보다 70퍼센트 이상의 식량과 사료가 필요해질 것이라고 한다.

식량문제 해법,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식량문제의 해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기업식 집약농업과 소농의 조방농업. 전자는 주로 북아메리카·중남미·유럽에 있다. 면적 2헥타르 이하로 이루어지는 후자는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분포한다.

저자들은 소농농업의 잠재력에 주목한다. 집약농은 고비용 및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문제 때문에 갈수록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 소농농업은 안전하고, 제반 조건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국제기관과 학자들이 최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무엇보다 소농농업에 희망찬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농농업은 단기적으로는 수확이 적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정의를 실현할 뿐 아니라 토지, 물, 공기, 에너지 같은 자연자원과 농업 생물다양성을 보호합니다. 자본과 원료가 많이 필요한 기업식 농업은 기후변화를 감안해도 장기적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됩니다.

저자들은 소농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첫째, 유전기술 대신 생물다양성을 중시해야 한다. 미래 농업의 토대로서 다양한 식물·동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이른바 '농업 생물다양성'이다. 소농들이, 증식할 수 없는 종자를 계속 구입해야 하는 문제로 종자대기업에 종속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둘째, 도시 농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도시 농업은 관행 농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밭'은 옮겨다니므로(플라스틱 용기나 흙 자루에서 키워지는 작물들을 떠올려 보자) 경작지가 필요하지 않다. 토지 소유와도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저자들은 도시 농업이 빈곤하고 수입이 빈약한 도시 가계에게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며, 기아 퇴치에도 점점 더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마지막으로 농촌 가계의 소득 증대가 있어야 한다. 저자들은 농촌 가계가 농사(family farming)로 먹고산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많은 가계가 점점 더 다양한 소득원을 개척하고 있어서다. 소득 다양화를 위한 국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책에는 식량문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잘 분석되어 있다. 독자들은 기아와 영양 부족이 전 세계적으로 복잡한 시스템의 자장권 아래서 심화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저자들이 식량문제를 '식량안보'니 '영양안보'니 하는 말로 확대해 다루는 배경이다. 국제적·국가적 정책 개입이나 협력을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이 '식량권'이다. 저자들은 식량권이 입법화되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22개국이 헌법에 식량권을 명시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식량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저자들은 식량권의 세계적인 이행을 위해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도 꼼꼼하게 제시해 놓았다. ▲ 건강한 식품과 균형 잡힌 식사 ▲ 재활용(리사이클링) 생활화 ▲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과일과 채소 ▲ 식단에서 고기와 어류 비중 줄이기 ▲ 유기 농산물 이용 ▲ 공정무역에 가치 부여하기 등이다.

정부의 쌀 시장 개방(관세화) 방침으로 농촌 들녘이 시끄럽다. 애써 기른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관세화의 명분으로 경제적 효율성과 이득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쌀 시장 개방이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한다.

식량안보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식량은 무기다. 총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식량(굶주림)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89.2퍼센트다. 하지만 식량 자급률은 47.2퍼센트, 곡물 자급률은 23.1퍼센트에 불과하다. 식량안보지수도 세계 최하위권이다.

식량안보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갈등과 격차를 낳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오래된 난제"라는 식량문제가 우리 뒷덜미를 낚아챌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 없다. 식량문제의 모든 것을 차분히 짚어주는 이 책을 읽으며 '끼니'와 '밥'을 향한 시선을 돌아보자. 생각을 정리하고, 우리 자신의 식생활을 돌아보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의 비만 그들의 기아>(리오바 바인게르트너·클라우디아 트렌트만 지음, 유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4. 7. 11. / 270쪽 / 14,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우리의 비만 그들의 기아

리오바 바인게르트너 외 지음, 유영미 옮김, 문학동네(2014)


태그:#<우리의 비반 그들의 기아>, #리오바 바인게르트너 외, #유영미 옮김, #문학동네, #식량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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