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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70여 개의 댓글"이라던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 개입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다.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은 '트위터'라는 넓은 망을 이용해 대대적인 선거개입 활동을 벌였다. 지난해 9월 1일부터 12월 12일까지 3개월여의 짧은 기간 동안 국정원 직원들은 402개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5만 5689개(재전송 RT 포함)의 글을 쏟아냈다. 게시글에는 문재인·안철수 대선 후보들을 원색적으로 비방하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트위터 댓글 활동' 등의 혐의가 반영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이를 위해 2237쪽에 달하는 '범죄 일람표'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범죄일람표를 입수한 민주당은 5만 5689건에 달하는 트위터 내용을 공개했다. 국정원의 트위터 활용 행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민주당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사이버팀(SNS 담당)은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어떻게 5만 5600개에 달하는 트위터 글을 유포할 수 있었을까. <오마이뉴스>는 '생산자' 39개 트위터 계정과 '유포자' 363개 트위터 계정으로 구분된 국정원발 트위터 생산·확대 흐름을 재구성했다.

국정원이 지난 대선 국면에서 트위터를 활용해 여론전을 펼친 흐름도
 국정원이 지난 대선 국면에서 트위터를 활용해 여론전을 펼친 흐름도
ⓒ 진선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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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개 트위터 계정이 5만 5600건 글 유포

<오마이뉴스>가 민주당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이 국정원 직원의 것으로 파악한 402개의 트위터 계정 중 '콘텐츠 생산' 역할을 담당한 계정은 총 39개다. 나머지 계정 363개는 생산된 콘텐츠를 퍼나르며 리트윗하거나 봇 프로그램을 가동한 계정이다.

민주당 국정원대선개입 진상조사특위가 지난 9월 검찰 수사과정을 파악한 결과, 검찰은 국정원 트위터 계정 중 13개 '대장' 계정을 1차로 확보했다. 이 같이 수집된 대장 계정은 총 39개로, 적극적인 '콘텐츠 생산자' 역할을 담당했다. 생산자들은 하루에 40~50건의 글을 반복적으로 올렸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nudlenudle(이종성), hansolypark, wisdbsk(진유나), latome991, taesan4(신사의 품격), qhdle, redgaori, mwjdwn (ㅡ정주), go_eunbee (고은비), wldmsgus (지은현) 등의 계정이다.

검찰은 이 같은 '콘텐츠 생산' 담당 트위터 계정을 총 8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민주당은 각각의 그룹에 속한 트위터 계정들이 특정 패턴을 보이면서 활동했고, 이를 기준으로 그룹을 나눴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대장 계정'인 트위터 아이디 'wlsdbsk'는 지난 해 11월 "IAEA 사무총장 '한국과 같이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원전을 활용하는 건 현명하다'고 호평"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같은 글을 올리기 5일 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원장님 지시 말씀'을 통해 "IAEA 사무총장이 '한국과 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가 원전 활용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표현한 걸 홍보할 것"이라고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이 인용한 발언을 한 사람은 IAEA가 아닌 IEA(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이었다. '지시 말씀'의 틀린 부분까지 그대로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트위터 아이디 'nudlenudle'의 경우, "국민 중 스스로 인질이 되길 원하는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불안해서 금강산에 갈 사람이 몇 명 있겠냐구요! 지랄을 해요 지랄을!!"이라며 금강산 관광 재개 필요성을 강조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난했다. 이 같은 '생산자' 계정 39개는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거나 박근혜 후보를 지지·찬양하는 글을 올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39개 '생산자' 계정+363개 '유포자' 계정... "생산보다는 유포에 초점"

생산자가 있다면, 유포자는 따로 있었다. 리트윗을 담당한 계정이나 봇 프로그램을 가동한 계정이 그것이다. 검찰은 402개 트위터 계정 가운데 363개가 이 같은 '리트윗·봇'을 담당했다고 파악했으며, 각각의 그룹을 12개로 나눠 분류했다. 민주당은 각각의 그룹끼리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 활동을 공유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민주당 국정원 특위는 "국정원 계정들은 처음 가입 후 매력적인 캐릭터 사진을 프로필로 올리고 '선팔'을 통해 팔로워를 확대해 갔고, 이후 봇으로 전환해 무차별적으로 트윗을 확산시켰다"고 밝혔다. 또, "리트윗과 봇 프로그램은 5분, 10분 단위로 하루에 수백 번의 리트윗을 통해 수천만의 트위터 사용자들에게 무차별로 글을 확산시켰다"고 덧붙였다. '대장계정'이 생산한 똑같은 글을 1초도 안 돼 바로 동시에 리트윗하는 그룹도 있었다.

이 같은 봇 프로그램이 사용된 정황은 검찰이 작성한 '범죄 일람표' 곳곳에서 드러난다. 범죄 일람표에 따르면, 지난 해 9월 2일 16시 29분 24초부터 16시 29분 38초까지 14초 동안 "이 대통령 만난 박근혜 '지금부터 100일간 범국민특별안전확립기간 정해야'" 글이 23건 올라왔다. 각기 다른 트위터 계정을 통해 1초에 최대 2건씩 같은 글이 동시 다발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또, 지난 해 9월 3일 18시 26분 59초부터 18시 27분 00초까지 단 1초 동안 "민주당 울리는 안철수 '오빤 철수 스타일'"이라는 글이 각기 다른 계정으로 12건 올라오기도 했다. 봇 프로그램을 이용한 대량 유포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 국정원 사건 수사를 담당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트윗 글 확산 프로그램을 이용했냐'는 질문에 "이용한 걸로 알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이 트위터를 활용한 행태를 보면 생산보다는 유포에 초점을 맞췄음을 알 수 있다"며 "국정원이 RT와 봇 프로그램을 통해 SNS 상 여론 왜곡을 어떻게 해 왔는지 그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를 분석해 '추천·반대'를 통해 화면을 조작한 것처럼 트위터 안에서도 RT나 봇 프로그램을 활용해 기존 글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트위터에 글을 하나만 써도 500만, 600만 트위터 이용자에게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만큼 이를 집중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지난 3월부터 트위터를 활용한 엄청난 범죄 행위가 있음을 지적해 왔지만 수사가 진척되지 않았다"며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증언처럼, 외압 등이 계속돼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태그:#국정원,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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