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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오전 9시 30분부터 국립무형유산원 회의실에서는 제3차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최성자 위원장을 포함한 총 7명의 위원들이 모여 양유전, 이의식, 최종관씨 등 신청자(후보자) 3명의 완성작품을 육안으로 감식했다. 앞서 열린 2차 회의(3월 8일)에서 미완성 작품을 완성한 뒤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를 지정 예고하자고 의결한 데 따른 절차였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서는 몇몇 위원들이 점수편차와 조사단(심사위원) 편파 구성 등을 문제삼고 나섰다. 문제제기의 핵심은 일부 신청자들 사이의 점수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었다. 이에 4명의 위원들이 지정예고 보류를 요구했다. 분과위원회는 이들의 문제제기가 타당하다고 판단해 지정예고를 보류했다. 하지만 한 달 후인 6월 26일 다시 열린 소위원회는 이러한 결정을 뒤집고 이의식씨를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 예고할 것을 권고했다.

어떻게 한 달 만에 '지정예고 보류'가 '지정예고 권고'로 바뀌었을까? 여기에 '홍익대'라는 특정 학맥의 힘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특정 학맥의 중심에는 홍익대 미술대학 목조형가구학과 동문회인 '홍림회'가 있다는 지적이다.

홍익대 미술대학 목조형가구학과 동문회 '홍림회'.
 홍익대 미술대학 목조형가구학과 동문회 '홍림회'.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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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4명 가운데 3명이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사제 지간

이번에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를 지정예고하는 과정에는 세 개의 조직이 관여했다. 서명조사와 공방조사, 기량심사를 맡은 '조사위원회', 지정예고 여부를 결정하는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와 '소위원회'가 그것이다.

먼저 지난해 12월 12일 구성된 조사위원회에는 박형철, 임승택, 곽우섭, 이종헌 등 4명의 조사자(심사위원)들이 참여했다. 박형철 위원은 홍익대 명예교수, 임승택 위원은 전북대 예술대 인테리어 디자인학과 교수, 곽우섭 위원은 광주대 문화예술대 인테리어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종헌 위원은 북경 중앙미술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옻칠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위원은 4명의 조사자 가운데 유일하게 옻칠공예 전문가다.

그런데 조사자 4명 가운데 3명이 홍익대 사제지간이자 '홍림회'출신이다. 즉 박형철(65학번), 임승택(85학번), 곽우섭(91학번) 위원은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임승택, 곽우섭 위원은 박형철 위원의 제자다. 이들은 모두 칠공예와 직접 관련없는 목공예 전문가다. 다만 박형철 위원과 임승택 위원이 각각 경남·경기도 나전칠기 지도위원과 한국옻칠 공예대전 심사위원을 지낸 바 있다.

게다가 현재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가 지난해 11월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열린 '임승택 옻칠공예전'에 도움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단이 공방조사(12월 17일부터 18일까지)를 벌이기 약 보름 전이었다.

임 위원은 옷칠공예전 팸플릿에서 "전시가 이루어지기까지 제품개발에 많은 도움을 주신 옻칠장 이의식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지난 2010년 11월에 열린 '임승택 스킨팀버전'에서도 그는 이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히 두 사람은 지난 2012년 남원시와 전북대가 출범시킨 '남원지역연고산업육성단'을 통해서도 산학연계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는 임승택 위원과 이씨가 상당히 긴밀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조사자 4명 가운데 3명이 홍익대 사제지간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전시회와 산학연계활동 등 임 위원과 이씨의 긴밀한 관계가 '제척사유'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심의에 관한 규정' 제7조(조사단 구성) 2항 4호와 5호에는 "조사자가 해당사항에 관하여 용역을 수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직접 관여한 경우"와 "그 밖에 조사대상자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조사에서 제척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입수한 무형문화재 분과위원회 회의록(5월 24일)에 따르면, 함한희 위원도 "같은 지역(전북)에 두 사람(임승택 위원과 이의식씨)이 있다는 지역성을 고려하지 않고 심사위원을 배정했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라며 "애당초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조사단 구성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편파성은 특정 신청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문화재청이 윤관석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채화칠장 지정조사 심사표 및 세부내역'을 보면, 홍익대 출신 사제지간인 A, B, D가 이의식씨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자 A, B, D는 배점이 높은 전승능력 항목의 '공정재현능력'(7.28점)과 '작품의 완성도'(5.04점)에서 이씨에게 모두 만점을 안겼다. 반면 가장 전문가적인 조사를 벌인 조사자 C는 이씨에게 각각 2.18점과 1.51점이라는 아주 낮은 점수를 매겼다. 조사자 C는 조사자 가운데 유일하게 옷칠전문가인 이종헌 위원이다.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 채점표. 홍익대 사제기간인 조사다 A, B, D는 배점이 높은 '공정재현능력'과 '작품의 완성도' 항목에서 이의식씨에게 만점을 주었다.
 채화칠장 인간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이의식씨 채점표. 홍익대 사제기간인 조사다 A, B, D는 배점이 높은 '공정재현능력'과 '작품의 완성도' 항목에서 이의식씨에게 만점을 주었다.
ⓒ 윤관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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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식씨 지정예고 권고한 소위원회 7명 중 5명도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다음은 채화칠장 인간문화재 지정예고 여부를 결정하는 무형문화재 분과위원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분과위원회는 지난 5월 24일 신청자 세 명의 완성품을 감식한 뒤 지정예고 여부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최성자 위원장 대리를 포함해 김영운, 김운미, 박형철, 이삼길, 전경옥, 함한희 등 7명이 참석했는데, 김운미, 김영운, 전경욱, 함한희 등 4명의 위원이 점수편차와 조사단 편파 구성 등을 이유로 지정예고를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가장 강력하게 이의식씨를 지정예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사는 홍익대 출신의 박형철 위원이었다. 박 위원은 일부 위원들이 점수 편차를 문제삼자 "점수 차이가 조금 심하게 났다는데 그것은 각자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심사위원들) 개인적으로 '이 분이 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감이 있지 않겠나?"라고 합리화했다.

4명의 위원들이 지정예고 보류를 주장하자 박 위원은 "조금 문제가 있더라도 심사나간 심사위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뜻에서 그냥 통과시키자"라며 "보류해서 후속조치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쉽지 않고 일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이의식씨 지정예고를 강하게 권유했다.

결국 분과위원회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점수편차와 조사단 편파 구성 등의 문제를 검토한 뒤 지정예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소위원회는 지난 6월 26일 회의를 열어 "점수편차와 조사단 구성, 조사과정 등에서 문제는 없었다"며 "조사결과를 신뢰하여 기량이 가장 우수한 이의식을 보유자로 인정예고할 것을 권고"했다.

분과위원회의 문제제기를 뒤집어버린 소위원회는 김군선(86학번), 김정필, 김지건(68학번), 박형철(65학번), 유해철(71학번), 최공호(85학번), 한장원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7명 가운데 5명(김군선, 김지건, 박형철, 유해철, 최공호)이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출신('홍림회')으로 채워졌다.

특히 최공호 위원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은 이의식씨가 지난 2009년부터 강사를 지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씨와 긴밀한 관계인 임승택 위원과 최 위원은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동기다. '박형철(스승)-임승택·최공호(제자·동기)-이의식(대학·지역)'으로 이어지는 그물망 인맥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의식씨를 1위로 선정한 조사단과, 분과위원회의 문제제기를 뒤집고 이씨의 지정예고를 권고한 소위원회를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출신들이 주도한 것이다. 따라서 '홍익대 파워'가 채화칠 인간문화재 지정예고 과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박형철 "사제지간, 문제될 것 없다"... 문화재청 "제척사항 해당 안돼"

윤관석 의원은 "조사단 구성, 평가과정, 심의과정에서 나타난 법적, 제도적, 형식적 문제는 그동안 문화재청이 인간문화재를 선정하는 과정이 얼마나 허술하고, 특정인맥에 의존했는지 보여주는 심각한 사태다"라며 "조사위원 구성시 필수사항인 제척사유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살하고 심사를 진행하고, 인정예고까지 추진한 문화재청장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형철 위원은 지난 5월 24일 제3차 분과위원회 회의에서 "그 두 분(임승택-곽우섭 위원)이 제 제자였다"라며 "제가 60대까지는 동료들하고 심사했는데 70대가 넘으니까 제자들하고 가끔 심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심사에서나 제자들 한두 분과 깉이 심사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라며 "하지만 그것(사제지간)만으로 (인간문화재가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지난 8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도 "목칠 계통은 홍익대 졸업생들이 많아서 어딜 가나 동창들이 많고, 교수도 많다"며 "그래서 심사위원들이 사제기간인 경우가 많은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문화재청도 <오마이뉴스>에 보낸 공식답변서에서 "3인의 출신 대학은 같지만 현재 재직중인 대학이 각각 달라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심의에 관한 규정' 제7조의 제척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공정한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조사 전에 조사위원들로부터 위촉동의서와 서약서를 제출받았다"고 해명했다.


태그:#채화칠장 인간문화재, #홍익대, #홍림회, #문화재청, #이의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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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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