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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선돌의 시원스러운 경치
 영월 선돌의 시원스러운 경치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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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 중 누구나 한 번씩 고비를 겪는다. 새내기 시절 달라진 환경에 적응을 못해 방황하는 친구들도 있고, 취업을 앞두고 '멘붕'하는 친구들도 있다. 내 고비는 2학년을 마칠 무렵 찾아왔다. 겉으로 보면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평균보다 훨씬 활발한 학교생활이었다. 즐겁고 알찼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내면의 공허함이 그즈음 절정에 달했던 것 같다.

남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홀로 서울생활은 팍팍했다. 좀 덜 건조하게 살고 싶었다. 전공 아닌 다른 책도 좀 읽고, 과제 아닌 다른 글도 좀 쓰고,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좀 하고 싶었다. 해야 하는 일을 잘 해서 인정받는 것도 좋았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뭔지 궁금했다. 그래서 휴학을 결심했고,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갔다.

잘 쉬었다. 원하던 대로 쓸데없는 짓도 많이 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영화를 보았고 자전거를 타고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녔으며 홍차를 마시고 잡문을 썼다. 당장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하고 나서 인증서를 받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학점에 반영되는 것도 아닌 그 쓸데없는 일들이 무척 즐거웠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 쓸데없는 일들 가운데 정점이 여행이었다. 누가 떠나자고 한 것도 떠나라고 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떠났다. 그 즈음 읽은 에세이 <위풍당당 개청춘>에는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 호어스트에 대한 한 대목이 소개돼 있었다.

호어스트는 새로 산 연필심이 닳아 없어지려면 몇 번 줄을 그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직접 해보기 시작한다. 1만7239개째 줄을 그었을 때, 마음 속의 목소리가 말을 건다.

"어이, 호어스트, 자네 왠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참! 그런가? 근데 그럼 안 되나? 어차피 내 시간인데."
오, 이 카타르시스란!
- 유재인, <위풍당당 개청춘> 177p.

떠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내 사연은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낭비하고 싶어서'라고 요약해도 좋을 것이다.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내 시간인데 뭐 어때!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서울생활은 숨이 막혔다. 마침 6월, 여름 내일로 시즌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무작정 표를 끊었다. 계획은 나중 일이었다.

내 고향 대천 바다에서 시작한 힐링 여행

황혼녘의 대천 해수욕장
 황혼녘의 대천 해수욕장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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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정지는 내가 태어난 고향인 대천으로 정했다. 일곱 살 때까지 대천에 살았고, 어릴 적 사진첩을 보면 대천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이제는 연고도 없고 갈 일도 없는 도시지만 내가 태어난 곳이라는 생각에 애착이 간다. 워낙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는 터라, 대천 해수욕장은 첫 여행지로 손색이 없었다.

스무 살이 넘어 혼자 찾아간 대천 바다는 평화로웠다. 개장 전 해수욕장의 너른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염없이 파도소리를 들었다. 따사로운 초여름 햇살 아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황혼의 바다는 신비했다. 사진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내가 이 광경을 본 적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유년이지만 내가 그 시기를 이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보냈다는 게 기뻤다.

스물한 살 여자 혼자 전국을 일주하다

그렇게 얼렁뚱땅 시작한 여행이 여름 내내 계속됐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묘미를 알아버리고 나자 중독처럼 내일로 티켓을 한 번 두 번 더 끊게 됐고 결국 5주에 걸쳐 기차로 전국을 일주했다.

여행 경비는 순전히 스스로 마련했다. 모아둔 장학금,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연재해 받는 원고료, 주말 아르바이트 등. 내일로 티켓만 있으면 교통비가 별로 안 들었고 티켓을 발권한 기차역에서 무료 숙박 등의 혜택을 주는 내일로 플러스 활용, 당일치기, 그 도시에 사는 친구를 불러내 빌붙기(!) 등의 기술을 시전해서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정선 민둥산역의 역무체험
 정선 민둥산역의 역무체험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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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이야 내일로 여행이 대중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레일러가 흔치 않아서 역무원과 지역 주민의 관심을 꽤 받았다. 특히 여자애 혼자서 밀짚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다보면 호기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내일로 플러스 숙소에서는 가난한 여행자들을 무료로 재워줬고, 친절한 역무원님들이 차를 태워 주거나 밥을 사 주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내일로 티켓이 아니라면 역무원과 말 한 마디 나눌 필요 없이 자동발매기에서 표를 사 기차에 올라타면 그만이다.

하지만 당시 내일로 티켓은 직접 역창구에 가거나 기차역에 전화를 해야만 살 수 있었다. 어쩌면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건 티켓 구매 과정의 불편이 아니라 역무원들의 얼굴에 담긴 미소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내일로 여행자만이 받을 수 있는 특혜였다.

제천 역전시장에서 만났던 아주머니·아저씨들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날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기 전 역전시장에 들렀다. 잔당 1000원짜리 칡막걸리를 먹고 싶어서였다. 다 큰 처녀가 혼자 막걸리 잔을 홀짝거리는 모습이 청승맞게 보였던지(난 단지 막걸리가 먹고 싶었을 뿐인데!) 옆 테이블에서 막걸리를 드시던 아주머니·아저씨들이 말을 걸어오셨고, 나는 그분들과 합석해 가게 문이 닫을 때까지 막걸리를 마셨다.

아저씨들은 왜 혼자 다니냐, 외롭지는 않느냐며 한국사람 특유의 정감 어린 걱정들을 쏟아놓으셨다. 곧이어 젊은 날 천안에서 서울까지 4박5일 만에 걸어갔댔나, 하는 식의 무용담을 풀어놨고 가게 주인 할아버지까지 합세해 6·25 전쟁 때 이야기까지 해주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아저씨 한 분은 막걸리 기운으로 붉어진 얼굴로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야 혀… 사고는 언제 어떻게 날지 모르는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우리 아들이 한 서른쯤 됐을 건데, 살아 있었으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겄지?"

'레일러 박솔희'를 키운 건 팔 할이 여행

정말이지 오늘의 나를 만든 건 팔 할이 여행이다. 여행 그 자체에서도 세상의 귀한 가치들을 무수히 배웠고, 이후 내일로 기차여행 가이드북 <청춘, 내일로>를 내면서 더 많은 여행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을 얻었다. 기사를 쓰다 보니 또다시 여행이 그리워진다. 그렇게 많은 여행을 했지만 아직도 여행이 그립다.

추석이다. 내가 고향 대천을 찾아 혼자 여행을 시작했던 충청도 본가에 내려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많은 분들이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았을 것이다. 바쁜 일상 속 여행 떠날 여유가 없더라도, 고향 다녀오는 길을 하나의 여행 코스로 생각한다면 밀리는 고속도로조차 즐거운 여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주 부석사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안고
 영주 부석사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안고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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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1020 참여형 미디어 펀미디어에도 실렸습니다. http://cafe.naver.com/rumorxfile/833186



태그:#기차여행, #박솔희, #청춘내일로, #내일로, #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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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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