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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한 신진 패션 디자이너에게 제보를 받았습니다. 한 대형 의류 쇼핑몰의 디자인 도용 실태를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동대문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베끼기 행태는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불법 여부를 떠나 디자인 도용을 공공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도 문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른바 '시장 의류업계'의 디자인 도용 실태를 짚습니다. 1편에선 이번 제보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2편에선 직접 동대문 새벽시장을 찾아 도매업체들의 속내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롯데 피트인 동대문점에 있는 스크류볼 매장. 이 건물 5층에는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30여개가 입점해 있다.
 롯데 피트인 동대문점에 있는 스크류볼 매장. 이 건물 5층에는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30여개가 입점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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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잘 나가는 패션 브랜드는 다 모였다는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지난 8월 28일 오후 이 건물 2층 한 여성의류 브랜드 매장에 전시된 옷들 가운데 독특한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배꼽 위쪽까지만 내려오는 흰색 여성 상의로 과감한 옆트임과 검정색 밴드가 특징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지하철로 불과 네 정거장 떨어진 롯데 피트인 동대문점 5층에 있는 한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에도 비슷한 제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고급스러운 원단과 지퍼를 썼을 뿐 겉모습과 크기까지 판박이였다. 흔한 디자인도 아니어서도 누가 보더라도 한쪽이 다른 쪽을 베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격 차도 컸다. 앞 제품이 3만9000원인 반면 뒷 제품은 현재 6만7000원으로 할인되긴 했지만 정가는 9만9000원으로 2배가 넘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베낀 걸까?

여성의류 쇼핑몰 1위 대 신생 브랜드, '디자인 도용' 갈등

전자는 현재 회원수만 100만 명이 넘고 인터넷에서 브랜드 여성의류 쇼핑몰 1위(랭키닷컴 9월 3일 기준)를 달리고 있는 '스타일난다'이고 후자는 문을 연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인 '스크류볼'이다.

언뜻 후자가 전자를 베낀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스크류볼에서 이 제품을 대표 상품으로 내놓은 건 지난 3월이고, 스타일난다는 지난 8월 초부터 인터넷과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직접 보니까 더 화가 나네요."

지난 8월 29일 동대문 직영 매장에서 만난 박하영 스크류볼 대표는 기자가 이날 스타일난다 매장에서 직접 가져온 실물을 보고는 첫눈에 "우리 걸 베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박 대표의 화를 더욱 돋운 건 이런 '짝퉁'을 한 달 내내 인터넷과 매장에서 방치한 스타일난다 쪽 태도였다.

박 대표는 지난 8월 2일 온라인에서 이 제품을 처음 발견하자마자 바로 스타일난다 쪽에 디자인 도용 제품이니 당장 내려달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스타일난다에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제품이 아니라 동대문 도매업체에서 납품 받았다면서도 박 대표에게 디자인 등록과 같이 저작권을 입증할 수 있는 '보고서'를 요구했다. 박 대표는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이제 막 문을 연 신생업체여서 디자인 등록 같은 건 생각도 못했고, 나중에 알아 보니 변리사 대행 비용까지 1건당 수백만 원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이 옷 100벌 정도 팔아서 얻은 매출이 1000만 원 정도인데 남는 돈이 얼마나 되겠어요. 대형 업체면 모를까 우리 같은 작은 업체는 감당할 수 없죠."       

스타일난다에서 판매된 짝퉁 제품(왼쪽)과 스크류볼에서 직접 디자인한 제품.
 스타일난다에서 판매된 짝퉁 제품(왼쪽)과 스크류볼에서 직접 디자인한 제품.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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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류 인터넷쇼핑몰 '스타일난다'에서 지난 8월에 판매된 디자인 도용 제품. 동대문 도매업체에서 스크류볼 제품 디자인을 베껴 납품한 제품으로, 9월 4일 현재 판매 중단된 상태다.
 여성의류 인터넷쇼핑몰 '스타일난다'에서 지난 8월에 판매된 디자인 도용 제품. 동대문 도매업체에서 스크류볼 제품 디자인을 베껴 납품한 제품으로, 9월 4일 현재 판매 중단된 상태다.
ⓒ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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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유명 브랜드였으면 바로 내렸을 것"- 스크류볼 "대형업체 횡포"

스타일난다는 박 대표 항의에도 해당 제품을 인터넷 쇼핑몰과 홍대와 명동 두 오프라인 매장에서 계속 판매하다 8월 말 <오마이뉴스> 취재가 시작된 뒤에야 제품을 내리고 박 대표에게 사과했다.

스타일난다는 오히려 자신들도 '도용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스타일난다를 운영하는 ㈜난다 관계자는 지난 8월 29일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우리도 동대문 납품업체에서 그 제품을 가져다 판매만 했을 뿐 디자인 도용 사실은 알지 못했다"면서 "우리도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실제 난다에선 자체 제작한 제품과 외부 납품받은 제품을 구분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스크류볼 쪽 항의에도 해당 제품을 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꼭 디자인 등록 서류가 아니어도 해당 제품을 자체 제작했다는 걸 입증할 근거 자료를 요구했는데 그쪽에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면서 "유명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잘 알려진 곳에서 연락 왔으면 바로 내렸겠지만 브랜드도, 디자이너인지도 모르는데 덜컥 내릴 수 있느냐"고 밝혔다.

이에 박하영 대표는 "당시 담당자는 저작권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단순한 근거 자료 정도만 요구했으면 그동안 가만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디자인 저작권에 관해서도 박 대표는 "의류산업 특성상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가지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는데 일일이 저작권을 설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짝퉁' 판매 후 실질적 피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6개월 동안 1~2개 유통채널을 통해 100여 장을 판매했지만 스타일난다에서 저가 제품을 판매한 뒤 판매량이 부쩍 줄었다는 것이다.

반면 스타일난다는 인터넷에서 해당 제품이 전혀 판매되지 않아 도매업체에 주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쇼핑몰 제품 Q&A엔 대금을 입금했고 제품을 발송했다는 댓글이 달려있었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직접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스타일난다는 이미 지난해 인터넷 쇼핑몰 회원이 100만 명을 돌파했고 하루 방문자수가 25만 명이 넘는 업계 선두 업체다.

박 대표는 "제품이 안 팔리는 것보다 더 화가 나는 건 우리 첫 제품이고 더 좋은 소재로 만들었는데 수십만 명이 넘는 스타일난다 회원들은 그쪽 제품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라면서 "가을 신상품부터는 디자인 등록을 할 계획이지만 뒤태만 조금 바꿔도 문제가 되지 않는 등 허점투성이"라고 꼬집었다.

동대문-남대문 디자인 도용은 '관행'? "패션산업 발전 가로막아"

스크류볼에서 디자인한 제품(위쪽 사진 상단, 아랫쪽 사진 왼쪽)과 디자인 도용 제품(윗쪽 사진 하단, 아랫쪽 사진 오른쪽). 원단, 자크 등 재질만 다를 뿐 겉모양만 봐서 구분하기 쉽지않다.
 스크류볼에서 디자인한 제품(위쪽 사진 상단, 아랫쪽 사진 왼쪽)과 디자인 도용 제품(윗쪽 사진 하단, 아랫쪽 사진 오른쪽). 원단, 자크 등 재질만 다를 뿐 겉모양만 봐서 구분하기 쉽지않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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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시장 의류' 업계는 크게 여성복 중심의 '동대문'과 아동복 중심의 '남대문'으로 나뉜다. 도매업체들이 각각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에 주로 몰려있는 탓이다. 특히 지난 2004년 오픈마켓에서 출발해 10년 만에 연매출 350억 원, 종업원 100명이 넘는 여성의류 전문 쇼핑몰로 성장한 난다는 동대문에선 거의 전설에 가깝다.

사실 국내 의류 업계에서 디자인 도용 문제는 특정 업체만 거론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실제 저작권 침해 소송까지 이어지는 건 손에 꼽을 정도고 문제가 되면 제품 판매를 중단하는 선에서 끝나거나,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난다에서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면서 "타 업체에서 우리 제품 디자인을 도용한 사례도 많다"고 항변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상품 기획과 제작, 유통까지 아우르는 한 SPA업체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중견 여성의류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C사도 디자인 도용에 맞서 소송을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대문 도매업체에서 그대로 베낀 제품을 유통시킨 한 여성의류 인터넷쇼핑몰에 직접 항의해 제품을 내렸고 또 다른 쇼핑몰 역시 <오마이뉴스> 확인 과정에서 해당 제품을 인터넷에서 삭제했다. 또 모 유명 여성의류 브랜드업체도 C사 제품 디자인과 패턴을 베낀 가을 신상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대문에서 아동복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황아무개씨는 "시장 의류업계에게 디자인 베끼기는 비일비재하고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면서 "왜 베꼈느냐고 항의해도 제품을 내리지 않다가 항의가 심하거나 내용 증명을 보낸다고 하면 마지못해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대형 유통업체와 소형 도매업체간 알력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황씨는 "유통업체가 갑을 관계처럼 우위에 있다 보니 도매업체에서 항의해 봤자 별수 없다는 걸 알고 더 세게 나오고 도매업체도 자칫 유통업체에 밉보여 납품이 끊길까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변 디자이너들 가운데 그동안 알고도 문제제기를 못했다며 환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쓸데없는 데 왜 힘 빼느냐, 거긴 너무 대형이고 소형은 (언론이) 잘 안 돕는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박하영 대표가 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결심했을 때도 주변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고 한다.

"자체 제작한 게 아니면 아니면 책임 없는 건가요. 디자인 도용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면 누가 디자인을 연구하겠어요. 런칭 초반이라고 그냥 넘어가면 저도 제도적 허점을 묵인하는 셈이 돼요. 난다도 패션 업계에선 대기업이나 다름없어요. 이렇게 큰 업체가 한번 문제가 되면 앞으로 이런 잘못된 관행도 줄어들지 않겠어요."


태그:#디자인 도용, #여성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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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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