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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던 대학은 어디로 간 것일까. 최근 대학이 보여준 일련의 모습에선 대학의 학문적 양심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모습 뿐. 대표적인 곳이 재단법인 영남학원 소속의 영남대와 영남이공대다. 이곳 두 명의 교수가 '영남대 재산 환수를 통한 재단정상화 시민대책위'에 참여하고, 학교 측의 박정희 미화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지켜온 강단을 내려와야 했다.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는 정년퇴임 후 관례적으로 추대되는 명예교수에서 배제됐다. 임정철 영남이공대 교수에 대해서는 파면 절차가 진행 중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사회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와의 만남을 통해 전해준 학교의 행태는 더욱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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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름을 '박정희 대학교'로?

영남이공대의 박정희 사랑은 절절했다. 임정철 교수의 말에 따르면 설립자라는 명목으로 총장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걸려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로 들어오는 진입로에 20~30m 간격으로 박정희 사진을 전시했다. 2011년에는 대학 명칭을 '박정희 대학교'로 바꾸려는 시도도 했다고 한다. "학교 명칭 변경에 관해 교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아예 예시를 '박정희 대학교'라고 써두었다. 그래도 설문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니 재조사를 했고 임시전체교수회의를 열어 분위기를 그 쪽으로 몰고 가더라. 결국 '박정희 대학교'를 후보 1위로 재단에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다행히 재단에서 반려하여 무산됐다"고 임 교수는 당시를 회고했다.

영남대는 박정희리더십연구소와 새마을정책대학원을 설립하면서 '박정희 정신'을 기렸다.

학교 측이 이토록 박정희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박근혜 대통령은 학교와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했는데도 말이다. 정지창 전 교수는 박 대통령의 태도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비판했다. 본인이 직접 영남학원의 이사를 맡은 것은 아니지만 7명의 이사 중 4명을 추천함으로써 영남학원의 이사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 결국 관계없다는 말과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영남학원에 대해 실질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런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학교측에서 '알아서 긴다'는 것이다.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대학.. 대학의 기업화도 한 몫"

안타깝게도 대학의 이런 행태는 비단 영남대와 영남이공대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대는 희망버스에 탔다는 이유로 김세균 교수를 명예교수 대상에서 제외했었고, 한양대 대학원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특임교수로 임용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이도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은 <이털남>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이 권력과 유착해 권력의 이데올로기 기구로 전락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학이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 전 교수는 '일제시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역사적으로 대학이 자주성을 지닐 만한 시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대학의 기업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최근 재벌들이 대학을 인수해 자신들의 계열사 중 하나로 생각하면서 대학을 점점 기업과 동일시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명예교수에서 탈락된 사유를 물으니 학교당국자가 '정 교수는 학교 정책을 비판하고 정통성을 부인하는데 기업에서 사원이 자기 회사의 정책이나 정통성에 문제제기를 한다면 그 사원을 회사에서 가만 내버려 두겠냐'고 얘기하더라. 이처럼 대학 책임자라는 사람도 대학을 기업과 동일시한다."

"교육자라면 긴 안목으로 양심 지켜야"

개인이 모여 집단의 소리를 낼 때 그 파급력은 배가 되기 마련이다. 정치권력의 힘이 미치고, 기업 마인드가 횡행해도 대학 내 구성원의 문제의식이 집단화되면 제어는 가능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임정철 교수와 정지창 전 교수는 교수의 양심을 강조한다.

"교육자라면 적어도 장기적인 역사인식을 가지고 양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있는 많은 분들이 당장의 정치권력에 줄을 대야 대학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한 발짝 물러나서 긴 안목으로 바라봐야 한다."

두 교수의 이런 강조는 대학 구성원들의 침묵과 굴종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대학이 박정희 미화에 나서도, 알아서 기는 행태를 보여도 교수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학생들은 취업의 부담감에 젊은 양심과 패기를 저당잡혔다는 것. 교수는 직장인화 되고 학생은 학원생화 됐다는 주장이다.

두 교수에 대한 학교측의 '박해'가 대학의 위기를 상징하는 징표라면, 대학 구성원들의 침묵은 대학의 위기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태그:#이털남, #박정희, #영남학원, #박근혜 ,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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