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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2일 1박 2일간 (사)슬로푸드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청년 로컬푸드 탐방'에 다녀왔습니다. 청년 로컬푸드 탐방은 올해 5월에서 9월까지 총 아홉 차례에 걸쳐 전국의 로컬푸드 현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5월 제주를 시작으로 충북, 경기, 전북, 충남, 강원 등 각 지역별로 1박 2일 프로그램이 진행중입니다.

그중 세 번째로 진행된 이번 '배움술 기행단'은 서울 경복궁 '막걸리 학교'에서 시작해 파주, 일산 등 경기 지역 로컬푸드를 탐방했습니다. 6월 1일 토요일 아침, 경복궁 옆에 자리한 '막걸리 학교'에서 첫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막걸리 학교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프로그램 중 하나로,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아 '오프라인 학교(?)'까지 만들고 정기적인 강좌와 전통술 빚기 수업이 열리는 곳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여행 작가이자 술 문화 칼럼니스트인 허시명씨가 맡고 있고요. 경복궁 동쪽 동십자각 바로 앞 건물 3층에 위치한 막걸리 학교 교실은 경복궁 안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이었습니다.

막걸리 학교에서 술빚는 시간. 주먹에 힘을 주고 쓱쓱 힘차게 치댑니다.
 막걸리 학교에서 술빚는 시간. 주먹에 힘을 주고 쓱쓱 힘차게 치댑니다.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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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아홉 시 반에 서른 명 가량의 탐방 단원들이 막걸리학교에 모였습니다. 애초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인지라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주로 이십대 후반의 직장인들이 많고, 대학 재학생도 대여섯 명 정도 됩니다.

고두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네

허시명 교장 선생님의 맛깔나는 전통 술 문화 강의도 듣고, 각자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 생애 첫 술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교장 선생님의 주문에 따라, 다들 내밀한 개인적인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허물없이 친해지는 시간이었지요.

강의를 듣는 동안 뒤편 부엌에서는 솥에 올려놓은 찹쌀 고두밥이 구수하게 익었습니다. 물에 담그지 않고 증기로만 쪄낸 고두밥은 어찌나 찰지고 맛있던지요. 하지만 술을 담가야 하니 야금야금 더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남겨둡니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점심은 바로 아래층에 자리한 '전주비빔밥'에서 먹었습니다. 외국인 방문이 많은 관광지인 만큼 비빔밥 맛이 끝내줍니다.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아 배추 특유의 산미가 진하게 올라오는 배추김치와 정갈한 계란찜 등 간소한 반찬을 곁들인 비빔밥 상차림에서는 품격마저 느껴집니다.

솥에 김을 올려 쪄낸 찹쌀 고두밥. 고두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솥에 김을 올려 쪄낸 찹쌀 고두밥. 고두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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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술 빚는 시간. 잘 익은 고두밥을 조별로 나누고, 밀 누룩을 빻아 넣고 깨끗이 씻은 손으로 열심히 치댑니다. 많이 치댈수록 술맛이 좋다고 하니 다들 손놀림이 바쁩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경험인지라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 역시 분주합니다.

20여 분 쯤 지났을까요. 슬슬 손목이 아파올 무렵 술을 담글 항아리가 등장했습니다. 곤죽이 된 술밥을 항아리에 담습니다. 또 카메라 셔터가 철컥 철컥. 모두 함께 정성껏 빚은 술은 항아리에서 잘 익어갈 겁니다. 2주 뒤 뽀오얀 막걸리가 되어 우리를 만날 때까지.

내 손으로 직접 빚은 술, 어떤 맛일까

보통 이렇게 빚은 술은 상온에서 일주일쯤 발효시켜 거릅니다. 날짜가 더 늦으면 초산 발효가 진행되어 먹지 못하는 수가 있답니다. 항아리를 열었을 때 술 대신 식초가 나온다는 말씀이지요. 거른 술은 냉장고에 보관하고 일주일 안에 다 마시는 것이 좋답니다. 더 오래두면 역시 초산 발효가 진행되어 맛이 시어지니까요.

막걸리 학교에서 담근 술은 2주일 뒤인 14일에 시간 되는 사람들이 다시 만나서 걸렀습니다. 학교 측에서 꼼꼼히 냉장 보관해주셔서 술맛은 최고였답니다.

막걸리 학교 일정을 마치고 오후 4시에 파주 헤이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대절된 버스를 타고 헤이리 쌈지농부에 도착한 시각이 5시. 멋진 카페와 관광 시설이 즐비한 헤이리 예술인 마을에 자리 잡은 '쌈지농부'는 숙박·교육 시설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내부에 두 개의 주방과 옥상 텃밭까지 있는 참 예쁜 곳이었습니다.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는 온돌방, 대형 스크린에 영화 상영이 가능한 층층 계단방, 고가의 미술품이 전시된 하늘방 등 예술가의 손길로 세심하게 꾸며진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해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디자인된 건물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파주 헤이리 예술인 마을에 위치한 '농부로부터' 매장. '쌈지 농부'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유기농 매장이 있습니다.
 파주 헤이리 예술인 마을에 위치한 '농부로부터' 매장. '쌈지 농부'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유기농 매장이 있습니다.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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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균 회장님을 만나 뵙고 '농사와 예술'을 주제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천 회장님은 '쌈지'라는 순 우리말 브랜드를 런칭하고 가방, 신발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입니다.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인사동 쌈지길,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쌈지 농부 등 다양한 사업을 벌여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지요.

작업 공간을 구하기 어려운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스튜디오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등 남모르는 선행도 많이 베푸신 분입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락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쌈사페) 역시 이름을 알릴 기회가 없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을 발굴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농사는 예술이다"

단발머리에 야구모자, 햇볕에 그을린 얼굴은 딱 밭일을 하다 방금 나온 농부의 모습이었습니다. 머리가 길어서인지 자유로운 예술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지금은 쌈지 그룹 사업에서 손을 떼고 농사를 짓고 있는 천 회장님. 그가 가장 하고 싶은 한마디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농사는 예술이다."

예술에 매료되어 평생 일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길을 추구하고 걸어왔는데, 이제 보니 농사를 짓는 일이야말로 가장 멋진 예술이더라는 겁니다.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채소 잎들을 만지고 돌볼 때면 흡사 자연과 더불어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든답니다.

저녁 식사는 쌈지농부에서 운영하는 '농부로부터'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근처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쌈채소와 나물 반찬에 구운 생선을 곁들인 소박한 밥상입니다. 아삭한 쌈채소가 싱싱합니다. 이윽고 저녁 술자리. 파주에서 생산된 지역 막걸리를 놓고,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어갔습니다.

 천호균 회장님의 강의를 듣고 소감을 나누는 '배움술 기행단' 참가자들
 천호균 회장님의 강의를 듣고 소감을 나누는 '배움술 기행단' 참가자들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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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은 어제 장을 봐온 재료로 직접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참가자 중 유일한 주부인 김근례 선생님께서 일일 셰프로 수고해주셨지요. 애호박과 두부, 양파를 넣은 가정식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아침에 텃밭에서 뜯어온 쌈채소에 쌈장을 찍어 구수한 누룽지탕과 유정란 계란 프라이, 남해안 돌김과 함께 맛있는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 후에는 고양 탁주 합동제조장을 방문해 공장을 견학하고, 올해 팔순인 사장님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시는 배다리 막걸리 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달콤한 배다리 막걸리 시음도 빼놓을 수 없었죠. 선친으로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아 평생 탁주 제조업을 해왔다는 사장님의 유일한 사업 철학은 '정직'이라고 합니다. 정직하게 만들지 않은 술은 맛에서 금방 그것이 드러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고요. 평생 한 길을 걸어온 늙은 상인의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였습니다.

평생 양조장 운영한 팔순 사장님, 단 하나의 철학은 '정직'

점심은 DMZ 내에 위치한 장단콩 마을에서 먹었습니다. 파주 장단콩 마을은 DMZ 청정 지역에서 나는 품질이 우수한 콩으로 유명합니다. 어깨에 큰 총을 멘 군인의 검문을 받고 철조망을 통과해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렸습니다. 이 길을 계속 달리면 개성이 나온다는 말에 어째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순두부찌개와 두부조림으로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 옆에는 백 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널따란 장독대가 있습니다. 아이 키만 한 항아리에는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이 가득합니다. 근처 매장에서는 이 지역 콩으로 만든 된장, 간장, 고추장을 비롯해 북한산 도토리술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40도가 넘는 도토리술의 맛이 궁금했습니다.

마지막 방문지인 고양 '산머루 와인' 와이너리에서는 경사진 언덕 지형을 이용한 대형 와인 발효 탱크와 지하 저장고를 견학했습니다. 벽돌을 쌓아 만든 동굴 속 와이너리에는 오크 통과 와인 병들이 가득합니다. 지하의 서늘한 기온을 이용해 와인을 저장하는 것입니다. 냉방을 하지 않았는데도 팔에 오싹 소름이 돋을 만큼 추웠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진 지하 저장고의 규모가 상당합니다. 마치 유럽의 어느 와이너리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산머루 농원' 와이너리 방문 후 사장님과 기념사진 찰칵.
 '산머루 농원' 와이너리 방문 후 사장님과 기념사진 찰칵.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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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는 일종의 야생 포도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포도는 머루를 오랜 세월에 걸쳐 개량한 품종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머루 와인은 포도로 만든 와인의 원조인 셈입니다. 판매장으로 가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와인과 주스를 시음했습니다. 단맛이 나는 스위트 와인이 일반적으로 더 인기가 있지만, 사실은 단맛이 적은 드라이 와인이 숙성 기간이 더 긴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좀 더 깊은 맛이 나는 드라이 와인이 맘에 들더군요. 가격은 한 병에 2만8천원으로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여행의 피로 탓인지 세상모르고 한숨 자고 났더니 어느새 합정역에 도착해 있습니다. "빠이 빠이". 이틀간의 여정을 함께 한 정든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운 몇몇 친구들은 뒤풀이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연락처를 공유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한길을 걸어온 외고집장이들의 이야기에는 늘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길에서 만난 사장님들의 이야기, 용기와 도전 정신을 갖고 새로운 경험을 향해 지원한 젊은이들과의 만남, 무엇보다 몸과 마음을 노곤하게 위로해주는 좋은 술이 있어서 더욱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태그:#로컬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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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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