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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총장이 자신의 퇴진 압력 배경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서 전 총장은 3일 발간한 자서전 <한국 교육에 남기는 마지막 충언>(21세기북스)에서 지난 2011년 12월 오명 카이스트 이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이 나가라고 하면 이제 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 사임 발표를 하세요"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서 전 총장은 이미 지난해 10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오명 이사장이 대통령의 이름을 팔았는지 모르겠지만, 제 퇴진이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관련기사 : 서남표 총장 "이사장이 '퇴진은 MB의 뜻'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12월 20일 이아무개 교육과학기술부 국장이 카이스트 한 관계자에게 "오명 이사장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뵙고 온 뒤에 총장 퇴진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한 대화녹음파일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관련기사 : "오명 이사장, MB 만나고 와서 서남표 퇴진 검토 지시").

서 전 총장은 지난해 7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카이스트 총장을 그만두면 책을 쓰려고 한다"라며 "제 뒤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내보내려고 했는지, 못살게 굴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책을 쓸 계획이다"라고 자서전 출간을 예고했다(관련기사 : "이사장 뒤에서 나를 쫓아내려는 세력 있다").   

"MB가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의 공식 자서전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의 공식 자서전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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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전 총장은 자신의 공식 자서전에서 지난 2011년 12월 20일 카이스트 정기이사회를 회고했다. 이사회가 열리기 5분 전에 오명 이사장이 서 전 총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총장께서는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여기에 오신 겁니다.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하면 이제 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 사임 발표를 하세요."

서남표 전 총장의 퇴진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주장이다. 서 전 총장은 자서전에서 "당시 대통령께서 직접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면서 "하지만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은 법률이 정하는 이사장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서남표 전 총장쪽에서 작성한 '오명 이사장 및 교과부의 서남표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 기록' 문건에 따르면, 오 이사장은 지난 2011년 4월부터 2012년 7월까지 18회에 걸쳐 '대통령과 청와대, 총리' 등을 언급하면서 서 총장의 퇴진을 압박했다. 지난 2010 10월 서 전 총장에게 우호적인 정문술 카이스트 이사장이 물러나고 오명 이사장이 새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후부터 지속적인 퇴진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명 이사장은 일년에 두 번 열리는 정기이사회와는 별도로 거의 한 달 반 내지는 두 달에 한 번씩 임시이사회를 소집했다. 총장에게 사표 써오라는 것이 실질적인 주요 안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체로 이사장이 이사회 개최 한 달 전쯤에 공지를 하는데, 그때부터 마치 사전에 서로 합의가 된 것처럼 교수협의회의 주도로 총장 반대 성명서가 발표되거나 데모가 일어나기 시작했다."(313쪽)

하지만 오명 이사장은 지난 2012년 10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서 총장이 청와대와 대통령을 함부로 팔고 나녀서 지난해에 주의를 한번 줬다"며 "하지만 그 이후 서 총장에게 청와대와 대통령을 거론한 적이 없다"고 서 전 총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오 이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구속중) 전 국회의원과 사돈지간이다. 

"오명 이사장, 연임 저지에 실패한 교과부의 또다른 카드?"

하지만 서남표 전 총장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신성장동력기획단장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내는 등 이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MB 압력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와 관련, 서남표 전 총장쪽에서도 서 전 총장의 퇴진 압력 배경에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특정학맥'을 가진 세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한 측근 인사는 "서남표 죽이기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청와대 등에 포진한 경기도-서울대(KS)라인의 기득권 지키기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서 전 총장도 자서전에서 "오명 이사장은 나의 연임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교과부의 또다른 카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내가 연임에 도전하기로 결정하고 난 직후인 (2010년) 6월부터 급격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그 즈음 교과부에서 '서 총장 연임 불가' 방침을 확고하게 정했다는 말이 여러 채널을 통해 들려왔다. 2010년 6월 26일자 <동아일보> 사설에는 '지난날 외국인 총장을 몰아낸 일부 인사가 이번에는 특정학교 학맥의 총리, 교과부 장관까지 동원해 서 총장을 축축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271쪽)

서남표 전 총장은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통제 불가능한 인사였다는 것이 맞다"라며 "자꾸 '라인을 거스르고' '정부관료들에게 굽신거리지도 않을 뿐더러' '최상위층의 정책결정권자들을 직접 만나 담판 짓는' 행동들이, 주무부처 내 실세 관료들의 심기를 불편케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실세 관료들'이 느낀 그 불편함의 배경으로 카이스트 이사회 구조 개선을 들었다.

"부임 초만 하더라도 이사회가 말만 이사회였지 정부 의견에 대한 거수기 노릇만 하는 기구였을 뿐이다. 그들은 실질적인 학교 발전에 큰 관심이 없었다."(271쪽)

"그들에게서 카이스트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욕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명예직으로 앉아 있다는 인상만 받았을 뿐이다. 일부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었지만, 정부의 입장에 순응하는 경우가 주류라서 정부 방침이 이사회의 결정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305쪽)

"그런 식의 이사회 운영과 이사들의 태도에 실망한 나는 진정으로 학교를 위할 만한 인물들, 가령 자신의 기부가 제대로 성과를 내는지에 관심을 가진 거액의 기부자들이나 기관 운영에 전문성을 가진 분들, 또는 세계적 연구대학의 흐름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이사로 영입했다. 그분들의 특징은 정부의 입김이나 여타의 외압이 먹히지 않을 만큼 뚜렷한 주관과 경영철학의 소유자들이라는 점이다. 과거처럼 미리 정책방향이나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하달하는 식의 구조가 흔들릴 지경이었으니, 정부로서도 부담을 느낄 만했다."(272쪽)

서남표 전 총장은 "정관에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아서 제대로 이사장 구실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권력 앞에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기 때문에 못할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자살학생의 가족 중 그 누구도 나와 학교를 탓하는 사람 없어"

또한 서남표 전 총장은 자서전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사태에도 말문을 열었다. 카이스트에서는 지난 2011년과 2012년 총 5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연달아 자살했다. 이는 카이스트 내부에 머물던 '서남표 퇴진론'이 학교 밖으로까지 확대된 결정적 계기였다.

서 전 총장은 "내가 일평생 겪은 일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면서도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어떤 소명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합리적 이성의 작동에 의한 분별심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아주 광포한 여론몰이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정말로 그들은 어느 꽃다운 죽음들에 너무 슬펐던 것일까? 그런 나머지 '서남표'라는 제물로 희생제의를 올리려 한 것인가?"(241쪽)

당시 언론 등에서는 자살사태의 원인으로 100% 영어 강의나 차등 등록금제(언론에서는 '징벌적 등록금제'로 표현했다) 등 '서남표식 대학개혁정책'을 지목했다. 하지만 서 전 총장은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카이스트라는 기관의 장으로서 내가 시행한 정책의 결함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면 나는 그 즉시 옷을 벗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이른 학생의 가족 중 그 누구도 나와 학교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로 100% 영어 강의나 차등 등록금제가 문제였다면 유가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나 학교 관계자를 추궁했을 것이다."(241쪽)

서 전 총장은 "전문가들의 조언으로는 그 당시 유족에게서 들은 사건의 실상을 언론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거라고 한다"라며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학생 본인과 유족의 입장을 생각할 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서 전 총장의 한 측근인사는 "자살한 4명의 학생 중 한 명은 유서를 남겼는데 총장의 정책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며 "하지만 부모가 원치 않아서 유서를 공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남표식 개혁정책 때문에 학생들이 자살했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득권 수호의 의지에서 나온 '불편'의 표현은 아닌지"

특히 서남표 전 총장은 카이스트 교수사회에도 쓴소리를 내놓았다. 그는 교수들이 영년직 심사 강화와 학과장 중심제도 등에 반발한 것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영년직 심사 강화와 학과장 중심제도 등을 통해 카이스트 교수사회의 철밥통 지배구조를 바꾸려고 하자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며 이후에는 결국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직도 '철밥통' 문화가 가시지 않은 교수사회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눌러앉아 학문보다는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심각한 폐해를 끼칠 여지가 많다. 부정적인 집단이 수십 년간 학내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우리를 아찔하게 만든다."(294-295쪽)

"나를 힐난했다는 이들에게 나는 이 자리에서 되묻고 싶다. 당신의 외침이 개선과 진보를 위한 '불평'인지 아니면 타성과 기득권 수호의 의지에서 나온 '불편'의 표현인지를."(207쪽)

서 전 총장은 "'스납 조닝'(Snob Zoning)은 외부와의 연관을 끊고 '자기들끼라만' 잘 살겠다는 행동양태를 가리킨다"며 "한국사회에서 이런 '구역 나눔'의 세태가 최대한 빨리 근절되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서 전 총장은 "과학고 졸업장이 과학을 선망하는 아이들의 목표가 아니라 '성적지상주의 사회의 존재증명서'로 변질됐다"며 "우리 아이들이 자부심과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구분할 줄 아는 인성을 갖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앞으로 과학고나 영재학교를 더 많이 만든다는데, 이 성공지상주의 사회에서 점점 더 특수계급만 양산해내지 않을까 싶은 염려를 감출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 전 총장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과학기술 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지식을 융합해서 시대의 흐름에 앞서 나가길 바란다"라며 "자기 앞에 놓인 텍스트에만 매몰되지 말고 문명의 흐름, 문화의 변화, 산업의 발전과 같은 콘텍스트를 접목해서 남보다 빨리 변화를 읽고 선도적 시스템을 발명해내는 인재가 됐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태그:#서남표, #오명, #이명박, #한국교육에 남기는 마지막 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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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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