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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도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1956)

"사람은 굶어도 닭은 굶길 수 없다... 우리네 사는 게 다 난리"

수영 부부가 서강 언덕에 자리를 잡은 후 맨 처음 시작한 일은 돼지를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이사해 들어간 집은 이웃집들과 백여 미터나 떨어져 있는 외딴집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돼지 같은 가축을 길러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요.

하지만 돼지를 산 시점이 맞지 않았습니다. 돼지는 봄에 사서 기른 후 살이 투실투실 오르는 가을에 팔아야 수지가 맞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런 주기를 맞추지 않으면 돼지를 기른 고생값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수영의 아내 현경이 돼지 한 마리를 사온 것은 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수영 부부는 한겨울 동안 먹이를 길어 나르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지만, 이듬해 봄에 돼지를 팔고 남은 수익금은 코딱지만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수영 부부는 돼지는 단념하고 닭을 본격적으로 기르기로 합니다. 훗날 수영은 스스로 자신이 닭띠여서 닭이 싫지 않았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닭에 대한 애착이 나름대로 제법 있었던 것이지요. 돼지와 함께 사서 기른 닭 열 마리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하루에 알을 8, 9개나 낳아준 것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수영 부부는 양계를 위해 나름대로 단단히 준비를 합니다. 수영이 일본책을 파는 서점으로 가서 양계 관련 책들을 사 가지고 오기도 하고, 아내 현경은 인근의 양계장을 찾아가 병아리나 사료를 구하는 경로나 기를 때 주의할 점 등을 묻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병아리 100마리를 사 건넌방에 풀어놓습니다. 수영의 전기에서 유명한(실상 수영이 생활의 방편으로 양계를 한 일은,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는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독특한 사실입니다) 양계 이력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양계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1964년에 쓴 <양계 변명>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나날이 늘어나는 사료의 공급을 하는 일이 병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인제 석 달만 더 고생합시다. 닭이 알만 낳게 되면 당신도 그 지긋지긋한 원고료벌이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돼요. 조금만 더 고생하세요" 하는 여편네의 격려말에 나는 용기백배해서 지지한 원고를 또 씁니다. 그러나 원고료가 제때에 그렇게 잘 들어옵니까. 사료가 끊어졌다, 돈이 없다, 원고료는 며칠 더 기다리란다, 닭은 꾹꾹거린다, 사람은 굶어도 닭은 굶길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여편네가 돈을 융통하러 나간다… 이런 소란은 끊일 사이가 없습니다. 난리이지요. 우리네 사는 게 다 난리인 것처럼 난리이지요. (<김수영 전집 2> '산문' 43쪽>

수영은 심지어 "양계는 저주받은 사람의 직업"(<전집 2> 43쪽)이라는 말까지 합니다. 양계가, 원고료벌이와 함께 "인간의 마지막 가는 직업"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생활을 위한 불가피한 방편으로 시작한 번역일과 닭 기르기가 수영을 단단하게 옥죄는 상황을 느낄 수 있을는지요.

시를 '반역'했지만,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이 애틋

이 시에서 화자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1연 2행)고 고백합니다. 날카로운 감성과 예민함으로 섬광과도 같은 진리의 순간을 보아야 하는 시인이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3연 2행)했으니 "시와는 반역된 생활"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지요. 그래서 화자는 그 자신의 삶을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4연 2행)로 규정합니다.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6연 1, 2행) 하며 자조하기도 하지요.

사실 수영은 양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를 쓰는 일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닭은 높은 습도나 잦은 기온 변화 등에 아주 예민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수영은 한시도 닭장 앞을 떠날 수 없었지요. 그러면서도 늘어나는 닭들을 위한 사료비를 위해 번역 작업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수영이 그전부터 다니던 <평화신문>을 그만둔 것도 양계와 번역일에 좀더 충실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럴수록 시인으로서의 삶은 수영에게서 멀어져만 했습니다. 예의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은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수영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구름의 파수병"(8연 5행)에 빗대고 있습니다. "시를 반역한 죄"(8연 2행)를 가진 이 '파수병'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메마른 산정"(8연 3행)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아무런 "꿈도 없이"(8연 4행) 구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덧없이 흘러가버리는 그 구름을 말이지요. 그런데 '나'는 그런 구름을 덧없이 지켜보고 서 있어야 하는 '파수병'입니다.

생활의 불가피한 방편으로 닭을 기르고, 그 닭을 기르기 위해 번역을 해야 하는 수영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시인이 시가 아니라 양계며 번역에 매달리는 일은 분명 문제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수영이 자신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파수병'에 빗댄 것이 의미심장하게 보입니다. 무언가를 경계하여 지키는 파수꾼에게는 날카로운 눈매가 필요합니다. 정신줄을 놓을 겨를이 없지요.

파수꾼은 구경꾼과 달리 자신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소명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도 있습니다. 시를 '반역'했지만,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7연 3행)이라며 그 자신을 채찍질하는 수영의 모습이 애틋해지는 이유입니다.


태그:#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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