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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홈플러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노조설립과 연장근무 미지급 수당 청구소송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홈플러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노조설립과 연장근무 미지급 수당 청구소송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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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플러스가 되는 착한 홈플러스'.

'착함'을 강조한 홈플러스의 소개말이다. 텔레비전 광고도 밝고 경쾌한 분위기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출연자들이나 김연아 선수가 흥겨운 음악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종종 매장의 직원들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출연하기도 한다. 홈플러스가 유난히 '착함'과 '밝음'을 강조하는 건 고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함일 것이다. 이런 경향은 홈플러스뿐 아니라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마트들이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은 그 뼛속까지 착하지는 못했다. 최근 이마트가 직원들을 사찰하고 노동조합의 설립을 원천적으로 막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도급관계를 통한 불법파견까지 드러났다.

뒤이어 홈플러스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5일 서울남부고용노동청에 설립신고를 한 홈플러스노동조합은 설립필증이 나온 직후 바로 연장근무수당 미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관행적으로 연장근무를 시키면서 수당은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 창립 이후 14년 동안 이어진 홈플러스주식회사의 '무노조경영'이 무너짐과 동시에 '착함' 뒤에 숨어 있던 어두움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는 이마트 사태에 이어 서비스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홈플러스 경영진은 삼성출신들, '무노조 경영'에 조직은 군대 분위기"

김기완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 인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향후 노조 활동계획에 대해 "첫 사업으로 불법적은 연장근무를 중단시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며 "부당노동행위는 즉시 근절하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완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 인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향후 노조 활동계획에 대해 "첫 사업으로 불법적은 연장근무를 중단시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며 "부당노동행위는 즉시 근절하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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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전,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노조설립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김기완(37) 홈플러스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3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노조를 설립하게 된 김 위원장은 이날 약간 피곤한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28일로 예정돼 있던 설립필증 교부 날에 맞춰 설립 사실을 알릴 계획이었지만 27일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앞당기게 됐다"며 "홈페이지도 갑작스럽게 열게 됐고, 여기저기서 오는 문의·격려 전화와 밀려드는 노조가입서를 처리하느라 며칠동안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상태였다. 기자회견과 인터뷰에 이어 바로 출근하고 야근까지 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그 때문인지 업무용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흰색 와이셔츠에 홈플러스 조끼를 입은 그는 왼쪽 가슴에 '홈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 김기완'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홈플러스의 현실은 1980년대 군대와 비슷하다"며 "상명하복에,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소송을 제기한 연장근무수당과 관련해 "불법인지 알면서도 그동안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온 것"이라며 "회사가 이를 인정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집단소송을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는 직영사원을 중심으로 노조를 꾸렸지만, 앞으로 협력사원들의 권익도 대변하는 구조로 바꾸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노동조합 건설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이마트가 그동안 극악한 방식으로 노무 관리를 해왔다는 뉴스가 나왔다. 홈플러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회사 쪽에 노조를 설립한다는 비밀을 지키는 게 정말 힘들었다. 노조를 만들려면 그걸 비밀로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수십 명이 함께 노조를 세우기로 약속을 하고 비밀리에 노동조합 설립 총회를 거쳐 서울 남부지청에 설립 신고를 하게 됐다."

- 최근 이마트에서 직원을 사찰하고 노조설립을 원천적으로 막아왔음이 드러났다. 노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게 됐을 거 같은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일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백이면 백 이마트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거기는 노조가 생기고 그런 문제가 폭로되는데, 우리는 아무도 안 나서나?', 이런 얘기를 거의 한 달 정도 모일 때마다 엄청나게 이야기했다. 이마트의 노무 시스템을 보면서 '홈플러스도 이렇게 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이마트 보도로 노조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도 높아졌고 도움이 많이 됐다."

- 얼마 전까지 삼성이 홈플러스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노조설립 과정의 어려움이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
"홈플러스주식회사는 그 전에 '삼성테스코주식회사'였다. 삼성물산이 유통업계에 진출하기 위해 영국의 유통업체 테스코와 함께 만든 업체다. 2011년에 지분 정리를 해서 현재는 테스코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삼성 출신의 인사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 내부 분위기도 당연히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흡사했다. 조직 분위기도 1980년대 군대 같다. 상명하복에, 회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이의를 제기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다."

- 홈플러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시선에서는 그런 문화를 생각하기 어렵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말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나?
"우리는 지금 2013년에 산다. 그런데 회사의 고위 임원이 점포를 방문한다고 하면 전 직원이 매장 청소에 동원된다. 군대에서 부대장이 온다고 하면 난리 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 때문에 페인트칠을 다시 할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3일 동안 수세미로 닦았다. 이런 일이 한 달에 한두 번씩 있다. 휴일인 사람도 사복을 입고 나와 청소를 한다. 강제로 출근하는 거다. 또 정시 퇴근은 상상할 수도 없다. 1~2시간 업무를 연장하는 건 관행적으로 당연한 거고, 4~6시간까지도 더 일한다. 행사를 교체하는 날이나 명절 같은 기간에는 밤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당연히 연장근무 수당은 못 받는다."

- 노조 설립과 동시에 연장근무수당 청구소송을 냈는데.
"이 문제는 전 직원이 해결을 갈망하는 사안이다. 연장 근무가 일상적으로 있지만 회사는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노조를 함께 준비하는 두 분이 4개월 전부터 '야근시계'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출퇴근을 기록했다. 그 기록과 실제로 지급되는 임금을 비교해 법률 자문을 구했고, 그걸 바탕으로 임금 청구를 했다. 두 사람 이름으로 진행됐지만 사실 전체 직원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측에서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노동조합 설립을 계기로 당장 잘못된 관행을 중단시키고 그동안 미지급된 근무수당을 지급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회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향후에 집단소송을 준비할 계획이다. 단순 민사 소송뿐 아니라 고소, 고발도 적극적으로 제기할 생각이다."

"노조설립 3일 만에 300명 조합원 가입"

김기완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
 김기완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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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설립 사실이 노조가 발표하기 전 언론을 통해 먼저 나왔다. 현장의 반응은 어떤가?

"노조 가입과 사측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제보가 폭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본래는 노조 설립필증을 확보한 이후에 설립을 공개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려 했지만 이틀 전 갑자기 기사가 나가면서 준비 중이던 홈페이지도 갑작스럽게 오픈하게 됐다. 그런데 첫날부터 가입의사가 쏟아졌다. 전국에 지역 구분 없이 연락이 온다. 설립 사실이 알려진 지 3일째인 현재 300명은 충분히 넘었을 게다. 실시간으로 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집계는 다시 해봐야 할 수 있다."

-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연락하는 직원들은 뭐라고 말하던가?
"'어떻게 노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도 해봤다'는 분이 있었다. 노조 설립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가워서, 고마워서 바로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격려전화와 문자가 정말 많이 오고 있다. '생겨도 진작 생겼어야 한다'거나 '힘들 수 있겠지만 잘 해보자'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노조 설립필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입원서를 비밀리에 받아야 했다. 어떤 여성노동자는 그 큰 매장에서 가장 구석진 곳, CCTV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곳을 찾아 가입서를 작성하고, 그걸 또 꼬깃꼬깃 접어서 아무도 몰래 내 주머니에 넣어줬다. 화장실에 숨어 가입서를 쓴 분도 있다. 그분들의 마음은 앞장서 노조를 만든 직원들의 마음과 똑같다. 그럴 때마다 힘이 난다."

- 노조 설립 소식이 알려진 뒤 근무나 환경의 변화는 없었나?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매번 시켜오던 청소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늘 몇 시간씩 연장근무를 했는데 지금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시에 퇴근하라고 한다. 현장에서는 직영사원·비직영사원·정규직·비정규직 할 거 없이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불법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문제를 삼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온 것들이다. 당장 문제가 될 사안들은 바로 시정에 들어가는 게 맞다."

- 이마트처럼 노조 설립 과정에서 회사의 방해나 위협을 느낀 적은 없나?
"함께 설립을 준비했던 동료들과 철저하게 비밀로 해야지만 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비밀이 잘 지켜졌다. 그 때문에 회사의 압박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다만 개별적으로 있던 분들이 연장근무 문제와 같은 정당한 항의를 했다가 계약이 파기 되는 일들은 자주 있었다. 이마트는 조합설립 전부터 위원장을 해고하고 강제발령을 냈다.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나 희생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마트 사태를 계기로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 조합원들도 '힘든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켜주겠다, 힘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걸 믿고 한발 한발 나갈 생각이다."

- 그렇다면 노조 설립에 대한 회사의 공식적인 반응은 없는 상태인가?
"모든 현장에서 회사 쪽으로부터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노조에 대해 아무 입장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조금 전에 처음 들어온 제보가 있긴 하다. 점포에서 악질로 소문난 주임이 자기 부서원을 불러서 노조에 가입했는지 묻고, '절대 가입하지 마라, 가입하면 네 자식까지 취직 안 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사자를 만나서 확인해볼 생각이다. 사실이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고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노조 설립 후에 처음 접수된 회사 쪽 반응이지만 공식적인 건 아니라고 판단하고, 중간 관리자의 과잉충성이라고 보고 있다. 회사 차원으로는 노동조합을 부정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추이를 지켜보겠지만 노조를 빠르게 인정하고 정상정인 관계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서비스 노동자들 '감정노동' 보호하겠다"

김기완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25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서 노동조합 설립 신고필증을 우여곡절 끝에 교부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김기완 홈플러스 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25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서 노동조합 설립 신고필증을 우여곡절 끝에 교부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 홈플러스 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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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원장은 매장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

"현재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제 자신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올해로 3년 차인데 무기계약서를 쓰기 전까지 회사와 다섯 번 계약서를 썼다. 6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한다. 그걸 쓸 때마다 불안에 시달렸다. 회사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다. 그래서 상급자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하고 시키는 일이 부당하다고 해도 참고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대다수 직원이 나와 비슷하다. 한 점포에서 1000명이 일을 하면 홈플러스가 실제 고용관계를 맺고 임금을 지급하는 직원은 200명 남짓이다. 그 가운데 40명 정도가 정규직이고 나머지가 비정규직이다. 나머지 800명은 도급이다. 이분들은 고용구조가 정말 복잡하다. 협력직원은 담당직원의 전화 한 통에 해고되거나 근무지가 바뀐다. 현재는 직영직원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출범하지만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협력업체 직원들의 권익도 대변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낼 생각이다."

- 향후 노조의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나?
"첫 사업으로 불법적은 연장근무를 중단시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상급관리자의 비인간적인 행위, 업무와 무관한 청소에 동원, 각종 불법과 비에 대한 제보가 많다. 부당노동행위는 즉시 근절하고 법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관련된 더 많은 증거를 노동조합으로 알려주면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이후에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서비스노동자들의 고통을 덜 수 있는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감정과 무관하게 항상 웃어야 할 것을 강요받는다. 간혹 고객과 마찰이 생길 수 있는데, 그때 회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자기 회사의 노동자가 폭행을 당해도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방관하고 회피한다. 오히려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무릎을 꿇으라는 말도 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의 방어권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사업을 바로 진행할 계획이다. 만약 고객이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른다면 즉시 응대를 중단하고 매장 최고책임자가 고객을 응대해야 한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노동자는 휴식이 보장돼야 한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연이 정말 많다. 관련한 수기 공모 등을 통해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릴 수 있는 사업을 준비하겠다."

- 끝으로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조에 적극적으로 가입해주시는 조합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여전히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노조가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법이 보장한 권리를 지킬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입해도 된다고 약속드린다."


태그:#홈플러스, #이마트, #홈플러스 노동조합, #김기완,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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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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